수련 놀이터에서 신나는 원앙가족의 여름나기
남양주 홍릉 연지 뒤덮은 수련, 원앙에겐 풍부한 먹이터이자 은신처
» 수련 사이에서 헤엄치는 원앙 새끼.
조선 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올해로 10년째다. 조선 왕릉은 역사적인 사실도 많이 간직하고 있지만, 생태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도 하다. 9년 전 김포 장릉 연못에서 원앙과의 만남이 조선 왕릉에 대한 생태적 접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7월 4일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릉 연지에서 원앙이 새끼를 데리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련 꽃이 피는 연못에서 원앙 가족이 놀고 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다. 이른 아침 홍릉으로 달려갔다.
» 홍릉 전경.
» 홍릉 연지가 수련으로 뒤덮여 있다.
홍릉은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왕후의 능이다. 홍릉 연지는 고종황제가 홍릉을 새로 조성할 때 작은 연못을 연지로 크게 확장하여 공사한 것으로, 일반적인 조선왕릉의 네모난 연지가 아닌 원형 연지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원형 형식의 연못에 원형 섬이 있다. 연지 둘레엔 바닥으로부터 1.9m 높이의 석축이 쌓여있고, 원형 섬에도 석축으로 둘레를 만들었다. 하늘을 상징하는 형태라 한다. 약 211.75㎡(700평) 정도 아담하고 군더더기 없는 모양이다.
» 수련잎 위에서 원앙 형제들이 모인 모습이 다정하다.
» 수련이 있는 연지엔 원앙 새끼가 자라는데 필요한 먹이가 풍부하다.
연지에 수련이 가득하다. 원앙 새끼들이 수련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수련 잎이 흔들릴 때 찬찬히 살펴보면 원앙을 찾을 수 있다. 어미를 따라다니는 새끼 네 마리가 보인다. 태어난 지 일주일은 넘은 것 같다. 어미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법 씩씩하게 수련 위를 비집고 걸어 다닌다.
새끼는 본능적으로 먹을거리를 찾을 줄 안다. 작은 곤충을 사냥하고 수련 잎을 뜯어먹기도 한다. 생잎은 먹지 않는다. 노랗게 시든 잎이 얇아서 억세지 않고 검은 갈색으로 물러져 부드럽다. 뜯어먹기에 제격이다. 아마도 숙성된 김치 같을지 모른다.
» 누렇게 무른 수련 잎을 뜯어먹는다. 본능적으로 먹을거리를 잘 알고 있다.
» 수련 잎을 따기 위해 원앙 새끼가 잎을 세차게 흔들었다.
» 수련 잎이 떨어졌다. 이제 먹기만 하면 된다.
원앙은 새끼가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어미가 땅으로 날아가 새끼 원앙들을 구슬려 어렵게 둥지 위에서 뛰어내리게 한다. 원앙 새끼들은 아주 높은 곳에서 나무 밖으로 뛰어내린 뒤 어미를 따라 근처 물가로 간다.
원앙 새끼의 바깥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홍릉 연지는 어미의 보호를 받으며 원앙 새끼가 날아오를 수 있을 때까지 지낼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원앙 가족은 이곳을 선택했다.
» 앞서가는 원앙 새끼를 뒤따라 가는 어미.
» 어미 곁에서 먹이를 찾는 원앙 새끼.
원앙새끼들은 털이 젖어 체온이 내려가면 연지 석축 위로 올라와 솜털을 말리며 휴식한다. 그리곤 다시 내려가 수련 위를 걷거나 물 위에서 수영하며 사냥을 하며 하루를 보낸다. 약 2시간마다 휴식을 취해 체온 유지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다니는 길목이 정해져 있고, 이동 동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린 원앙이지만 본능이 시키는 대로 어김없이 행동한다. 새로운 모험은 위협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목욕하는 어린 원앙, 무더운 날씨다.
» 어미 원앙도 마찬가지다.
» 어미 원앙과 함께 깃털을 손질하려고 새끼들도 석축위에 올라 휴식한다.
목욕탕을 비롯해 깃털을 말리고 쉬는 자리, 잠자리, 연못을 둘러싼 석축엔 감쪽같이 숨을 수 있는 피난처 공간도 마련 되어있다. 물에서 살지만 목욕을 하며 깃털을 고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솜털이 많은 어린 원앙도 어미가 가르쳐준 대로 솜털을 고르고 다듬는다.
젖은 솜털의 방수성을 높이기 위해 고르고 털을 보송보송하게 말린다. 원앙의 일상이 대충대충인 줄 알았는데 철저한 계획과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고 최대한 이용하는 꼼꼼하고 빈틈없는 전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어린 원앙 앞가슴 솜털이 몸에 달라붙었다. 방수효과가 떨어졌다.
» 재빨리 수련잎 위로 올라와 물기를 털고 말리는 어린 원앙. 아직은 몸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다.
잠 수(睡)에 연꽃 연(蓮)을 쓰는 수련은 아침 9시경이면 꽃봉오리가 활짝 피지만 오후 3시가 되면 꽃잎이 오므라든다. 잠자는 연이기 때문에 수련이라 불린다. 수련은 원앙 가족에게 먹이와 숨을 수 있는 장소도 제공한다.
물론 수련 잎은 연지 전체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징검다리 구실도 한다. 이미 연지는 원앙 차지다. 어린 원앙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니 원앙새끼가 연지 밖으로 날아 나갈 때까지 이곳에서 생활할 심산이다.
» 수련 꽃에 달라붙은 곤충을 사냥하는 어린 원앙.
» 수련 잎을 타고 이동하는 원앙 형제.
원앙 어미와 새끼들은 사람들이 해코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마음대로 놀고 있다. 손에 잡힐 듯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도 여유롭다. 연못은 원앙의 육아장소로 완벽하지만 천적은 야행성 맹금류다. 7월 5일 전날처럼 별다른 일 없이 원앙 가족이 잘 놀고 있다.
주변에선 청설모가 이리저리 나무 위를 오르내린다. 별안간 청설모 한 마리가 연못가 석축을 타고 거꾸로 서서 수면을 내려다본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오늘따라 토종잉어들도 수면 위로 등을 보이며 바쁘게 돌아다닌다. 파랑새도 쏜살같이 내려와 수면을 차고 물을 먹고 솟아오른다.
» 수련 잎에서 내려온 어린 원앙이 물을 만나자 달음질친다.
» 물을 먹으러 온 것도 아니다. 청설모가 석축에 붙어 한참을 기다리는 행동이 수상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