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손이 네 후손이냐’…파초일엽의 수난사

조홍섭 2019.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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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20년 만에 자생 확인했지만 원 표본 대조 필요  

01.jpg » 제주도 섶섬의 복원된 파초일엽 자생지. 꼬리고사릿과 양치식물인 파초일엽은 중국, 일본, 대만 등에 분포하는 동북아 고유종으로 섶섬이 북쪽 끄트머리 분포지여서 학술 가치가 크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물 가운데 하나이지만, 반세기 동안 멸종과 복원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은 양치식물이 있다. 바로 파초일엽이다.

꼬리고사릿과의 아열대 식물인 파초일엽은 길이 1.2m에 이르는 이름처럼 시원하게 큰 잎과 진한 초록빛 광택, 잎 뒤에 줄줄이 붙은 포자가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리나라에선 제주 서귀포에서 450m 떨어진 무인도인 섶섬(삼도)에만 분포한다.

파초일엽은 일찌감치 보호대상이었지만 곧 사라져 수십 년 동안의 탐색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멸종이 선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수십 년 동안 근거가 불분명한 ‘복원’이 계속돼 자생 개체인지를 놓고 논란이 일었다.

02.jpg » 복원 20년 만에 자연적으로 포자가 날아가 증식한 섶섬의 어린 파초일엽.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2000년부터 문화재 당국은 한 제주 주민이 섶섬에서 가져와 증식해 온 파초일엽을 자생종으로 판단해 본격적인 증식과 복원에 나섰다. 2011년부터는 일반인의 섶섬 출입을 금지했다.

문화재청은 14일 “섶섬 복원 20년 만에 파초일엽에서 최초로 자연 발생한 어린 개체 300여 포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1960년대부터 시도된 수많은 복원 시도에서도 어린 개체가 저절로 돋아 확산한 예는 없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한국 적색목록에 ‘위기종’으로 분류되는 파초일엽은 이제 세계적 분포지 가운데 가장 북쪽인 섶섬에서 완전히 복원된 걸까.

일제 때부터 ‘절멸 우려’

03.jpg » 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천연기념물 대장은 섶섬의 파초일엽 자생지가 심각하게 훼손돼 사라질 위기라는 전년도 조사결과를 적어 놓았다.

1922년 섶섬에 파초일엽이 자생한다는 사실을 처음 보고한 이는 일본인 식물학자 모리였다.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천연기념물 대장’은 파초일엽의 자생지 현황을 “쇼와 9년(1934년) 8월 14일 조사결과 (파초일엽을) 마구 캐내 어린 개체 20여 포기밖에 남지 않았다”며 “절멸이 우려된다”고 적었다. 일제가 천연기념물 제도를 도입해 1933년부터 시행했으니, 파초일엽은 보호종이 되자마자 멸종위기에 몰린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식물학자 박만규가 1949년 도감에 처음 기재했고, 1954년 김윤식 고려대 교수팀은 처음으로 섶섬에서 이 식물을 확인했다. 김 교수는 “사람 손이 닿기 힘든 절벽 위에서 다섯 개체를 확인했다”고 1998년 문화관광부 보고서에서 밝혔다. 

04.jpg » 서귀포 남쪽 450m에 있는 섶섬. 상록활엽수와 양치식물이 우거져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그러나 이후의 조사에서 더는 관찰할 수 없었다. 그는 파초일엽이 사라진 이유를 “관상 가치와 희귀성으로 일부 몰지각한 화훼 및 원예 종사자와 일반인이 눈에 띄는 대로 캐간 데다, 해방 후에는 인근 주민이 섶섬의 나무를 목재나 땔감으로 무분별하게 벌채해 파초일엽의 생육환경이 많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구잡이 복원, 비운의 시작

1962년 정부는 섶섬을 천연기념물 제18호로 지정했지만, 이미 이 식물은 거의 멸종 상태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는데 정작 자생지에 파초일엽이 없다는 사실은 엄청난 행정적 압력으로 작용했다. 1966년부터 1990년 사이 여섯 차례에 걸쳐 자생지 조사가 벌어졌다. 박만규·이영노 교수 등 식물분류학자들이 총동원돼 파초일엽 수색에 나섰지만 성과가 없었다. 마침내 환경부는 1996년 ‘환경백서’에 “파초일엽이 자생지에서 멸종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문제는 자생지 수색과 동시에 무분별한 복원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1960∼1970년대엔 섶섬에서 가져온 파초일엽 1∼3개체를 주민이나 전문가, 제주도 공보실 등이 섬에 심었고, 1980년대엔 제주도청과 한국자연보존협회가 일본, 대만, 원산지 불명의 시중 온실 재배종 등 수백 포기를 복원했다.

멸종한 식물 복원은 그 지역 개체인지 엄밀하게 판단한 뒤 하는 것이 원칙이다. 선병윤 전북대 명예교수(식물분류학)는 “식물은 이동성이 적어 지역마다 유전적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사라졌다 수십 년 뒤 자연 복원되기도 하기 때문에 복원은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민이 간직한 ‘보물’

05.jpg » 파초일엽은 파초처럼 크고 넓은 잎에 포자가 깃털처럼 달린 이국적인 모습이어서 손을 많이 탔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환경부와 문화재관리국의 1996년 합동조사는 자생 파초일엽을 찾으려는 마지막 시도였지만 심은 것이 분명한 10여 포기를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다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1998년 김윤식 교수팀이 제주도 일대를 탐문 조사하던 중 섶섬 건너편인 보목동 주민 한훈지씨가 1960년대에 섶섬에서 가져나온 파초일엽을 증식하는 데 성공해 100여 포기를 온실에서 기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연구 등을 토대로 한씨의 파초일엽이 마구잡이 복원 이전에 섶섬에 자생하던 개체라고 결론 내렸다.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김주환 가천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한씨의 파초일엽 가운데 30∼40년 이상 된 것이 있어 섶섬에서 온 것으로 판단했다”며 “한씨는 쉽지 않은 포자 발아 기술을 개발해 증식에도 성공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2000년 이후 파초일엽을 양묘장에서 본격적으로 증식할 때 한씨의 개체만 썼는지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등 불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김 교수는 “현재 섶섬에서 번식하는 파초일엽이 애초 자생하던 개체인지는 당시 표본과 대조해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파리 자연사박물관에 ‘진본’

애초 1998년 문화관광부의 ‘자생종 판별연구’에서 한씨 재배 개체를 자생종으로 판단했던 핵심적 근거인 분자유전학 연구도 재검토할 필요가 제기된다. 이병윤 국립생물자원관 생물자원연구부장은 “당시 판별연구에서 사용한 유전자분석 기법은 당시에는 최신 기법이었지만 재현성이 떨어져 요즘에는 쓰이지 않는다”며 “최신 유전자 기술을 이용해 기원을 밝혀볼 만하다”고 말했다.

자생종 여부를 따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발견했을 때 확보한 표본이다. 그러나 김윤식 교수가 1954년 채집한 파초일엽 표본은 그사이 유실됐다. 국립수목원에는 제주도가 1960년 섶섬에서 채집한 표본과 1968년 이창복·조무연 박사가 채집한 표본이 각 1점 보관돼 있다. 

이미 이식이 이뤄지던 시기여서 이들 표본의 자생 개체 여부가 불확실하다면 마지막으로 기댈 표본이 있다. 선병윤 교수는 “1902∼1915년 제주도 선교사였던 에밀 타케 신부가 채집한 파초일엽 표본을 프랑스 파리 자연사박물관 표본실에서 확인한 바 있다”며 “이 표본을 이용하면 자생종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06.jpg » 최근 자연 증식 개체가 발견된 섶섬의 파초일엽 복원지 모습. 이들이 과연 애초 이 섬의 자생 개체인지가 확인돼야 진정한 자연 유산의 가치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자생 여부 판단과 별개로 모처럼 후계를 본 섶섬의 파초일엽을 잘 보전하는 일은 중요하다. 지난해 섶섬 자생지를 정밀 조사한 손지원 국립문화재연구소 박사(산림생태학)는 “복원 20년 만에 어린 개체가 다수 발견됐다는 것은 자연적인 확산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섶섬에서 허용된 낚시와 스쿠버 등에 의한 훼손 가능성을 막고 허술한 안내판을 개선하는 등 보전 조처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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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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