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비의 집짓기 무한도전, 45일째 하루 150번 흙나르기 왕복

김성호 2012. 04. 19
조회수 27928 추천수 0

 밤 되면 주인인 딱따구리가 돌아와 진흙벽 허물어
 낮-밤 바꿔가며 ‘둥지 전쟁’, 최후 승자는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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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비가 딱따구리의 둥지에 진흙을 발라 열심히 입구를 좁히고 있습니다.

 

어느 덧 4월이 그 한가운데마저 넘어섰습니다. 이제 바람이 차갑다는 말은 옛 이야기가 되었으며, 벌써 숲속에 두런두런 서 있는 아름드리 산벚나무는 산들거리는 바람에도 꽃비를 넉넉히 뿌려줍니다.

 

요즈음의 봄소식은 하루에 큰 산 하나를 넘어 올라옵니다. 어제는 저 아랫마을이 옅은 녹색으로 변하더니 오늘은 바로 앞마을이 그러합니다. 꽃은 시간을 다투듯 피고 또 집니다.

 

꽃은 다투어 피고 지고, 하루에 큰 산 하나씩 넘어 올라오는 봄소식 

 

매화와 산수유가 피다 지더니 개나리와 목련이 그 뒤를 이었으며, 목련이 지는 것을 아쉬워할 틈도 주지 않고 조팝나무와 박태기나무도 꽃망울을 열었습니다.

 

잎눈도 새록새록 터지고 있습니다. 아주 작은 잎이라도 다 큰 잎의 모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기특하며, 하루에 꼭 전 날의 크기만큼 쑥쑥 크는 것도 그저 신통하기만 합니다.

 

계절은 참으로 좋은데 세상살이는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하는 일과 뜻하는 것이 마음과는 따로 놀아 지칠 때가 많습니다. 사는 것에, 더구나 살아지는 것에 조금 지치는 봄날이면 홀로 찾아가는 곳이 있습니다. 동고비의 둥지입니다.

 

부지런하기로 또한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로 동고비를 따를 자는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둥지를 지을 때 보이는 동고비의 모습은 ‘지치지 않은 열심’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고비는 아주 특별한 재주가 두 가지 있습니다. 우선 나무타기의 지존입니다. 나무를 탄다기보다는 나무에서 달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습니다.

 

나무타기의 지존이자 성실과 열심의 종결자  

 

위로 오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래로 내려올 때는 뒷걸음을 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달릴 정도입니다. 상하 전천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재주가 있습니다. 딱따구리의 둥지 입구에 진흙을 발라 제 몸에 맞게 좁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입니다.

 

2주 전이었으니 4월 초였습니다. 동고비는 딱따구리의 둥지에 대한 리모델링을 마쳤을 것으로 예상하였습니다. 시기적으로 그렇습니다. 다른 동고비 둥지들도 그렇고요.

 

그런데 아직도 진흙을 붙이기에 정신이 없는 동고비 한 쌍을 만났습니다. 다른 동고비들은 둥지를 완성한 시기인지라 조금 이상하였으나 그저 사정이 있었겠거니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열심히 진흙을 나르는 모습을 보며 조금 나른해진 자신을 추스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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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비는 한참 둥지를 지을 때 하루에 150번 정도 콩알 크기의 진흙을 나릅니다.

 

진흙을 날라 둥지를 좁히는 일은 암컷이 담당합니다. 수컷은 둥지를 짓는 암컷에 대한 경계를 맡습니다. 그날 하루에 동고비 암컷은 콩알 크기의 진흙을 150번 정도 날라 둥지를 좁혔습니다.

 

해가 뜨며 진흙을 나르기 시작하여 해가 질 때 일정을 마쳤으니 대략 12시간을 일했습니다. 계곡 주변에서 진흙을 뭉쳐 날아와 둥지에 붙이며 다지고 또 가져오기를 반복합니다.

 

암컷은 대략 50분 정도 일하고 10분을 쉽니다. 50분 동안 10번 조금 넘게 진흙을 가져와 둥지에 붙이고 다집니다. 진흙을 가져와 잠시도 쉬지 않고 부리를 움직여 둥지에 붙이고 다시 나서는데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꼴입니다.

 

암컷은 집 짓고 수컷은 경계 서며 50분 일하고 10분 쉬고 

 

지켜보는 내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니 동고비는 어떨까 싶습니다. 게다가 진흙을 가져오는 곳에서 둥지까지의 거리는 약 50미터였습니다. 왕복하면 100미터고 150번을 오갔으니 그 하루에 동고비 암컷은 총 15킬로미터를 온 힘을 다하여 비행한 것이 됩니다.

 

온몸이 진흙 범벅이어서 초췌하기 이를 데 없지만 덕분에 딱따구리 둥지는 동고비의 둥지로 변했습니다. 다음 날은 둥지를 다듬는 일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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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가 어느 정도 좁혀졌습니다. 해가 질 무렵이면 동고비는 둥지 짓는 일을 멈추고 숲으로 사라집니다.

 

다음 날 아침이 동이 텄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붙여놓은 진흙은 다 떨어져 나갔고 다시 어제 아침의 상황이 되어있는 게 아닙니까. 침입자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동고비입니다. 깔끔하게 새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날도 동고비 암컷은 150번 정도 진흙을 날라 입구를 또 좁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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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둥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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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비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무너져 내린 둥지에 다시 진흙을 발라 좁힙니다.

 

그리고 오늘 15일째를 맞습니다. 어젯밤 역시 어두움이 내리기 직전까지 사력을 다해 좁힌 둥지는 깜깜한 밤에 역시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동고비는 또 다시 진흙을 붙였습니다.

 

어둠 깊어 잠자러 집에 온 딱따구리는 또 얼마나 황당할까 

 

침입자는 침입자가 아니라 둥지의 주인인 청딱따구리 수컷이었습니다. 아프게도 동고비는 청딱따구리의 잠자리 둥지를 좁히고 있습니다. 황당하기는 동고비나 청딱따구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종일 입구를 좁혀 놓았는데 다음 날 아침에 와보면 둥지는 언제나 무너져있는 것이고, 어두움이 깊어 잠을 자러오면 둥지는 어김없이 진흙으로 좁혀져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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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고비의 고단한 하루가 저뭅니다. 동고비가 12 시간의 일과를 마친 뒤 숲으로 사라지고 어두움이 내리자 청딱따구리가 나타납니다. 자신의 잠자리 입구를 막아놓은 진흙을 떼어내는 들어가는 데에는 채 1분이 다 걸리지 않습니다.

 

동고비가 12시간에 걸쳐 사력을 다해 좁힌 둥지를 청딱따구리가 허무는 데에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내가 본 것은 보름이었지만 아마도 3월 초부터 이런 일은 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대략 45일을 동고비는 이러고 있으며, 앞으로 언제까지 이처럼 무모한 일을 지속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미련하고 무모한 끝없는 도전 때문에 동고비는 종을 보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둥지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 둥지 그 이후는 더 관찰한 뒤 알려드리겠습니다.

 

글·사진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학교 생물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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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이메일 : genexp@cho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phil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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