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마뱀은 왜 독이빨로 서로 싸워도 무사할까

조홍섭 2019. 08. 09
조회수 12302 추천수 1
인도네시아 코모도왕도마뱀 게놈 해독…혈액 응고 조절 등 진화

k1.jpg » 코모도왕도마뱀의 침에는 혈압을 급격히 낮춰 먹이 동물에 쇼크를 일으키는 독이 들어있다. 그러나 왕도마뱀은 이를 회피하는 혈액 응고 조절 유전자가 있다. 왕도마뱀의 독은 혈전 방지에 응용될 전망이다. 브라이언 프라이 제공.

코모도왕도마뱀은 여러모로 특별한 동물이다. 길이 3m 무게 100㎏까지 자라는 세계 최대 도마뱀으로, 사슴과 멧돼지 등 대형 포유류를 사냥하고 사람 습격도 마다치 않는다.

후각 기능이 매우 뛰어나 12㎞ 밖에서도 먹이 냄새를 맡으며, 시속 20㎞로 달릴 만큼 빠르면서 지구력도 강해 사냥감이 쓰러질 때까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사냥 때는 톱니 달린 이와 날카로운 발톱 말고도 생화학 무기도 동원한다. 이 도마뱀은 잠복해 있다 다가온 동물의 다리나 배를 문 뒤 놓아주는데, 물린 동물은 도망가면서 차츰 기력을 잃고 피를 흘리며 죽는다.

이 때문에 코모도왕도마뱀이 질질 흘리는 끈적한 침 속에는 치명적 세균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침 속의 화학물질이 피가 굳는 것을 가로막고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먹이 동물이 과다출혈과 저혈압 쇼크로 죽는다고 설명한다(▶관련 기사: 길이 3m 무게 100㎏ 도마뱀은 독사).

k2.jpg » 짝짓기, 먹이, 영역을 둘러싼 코모도왕도마뱀 사이의 싸움이 매우 잦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서는 상처가 치명적이지 않다. 다나디 수트지안토,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파충류이면서 포유류 포식자처럼 지구력과 힘을 내는 비결은 뭘까. 또 침 속에 치명적 ‘독’이 들어있다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수컷들은 어떻게 무사한 걸까. 이런 비밀을 밝혀줄 단서가 들어있는 코모도왕도마뱀의 유전체(게놈)가 해독됐다.

애비게일 린드 미국 글래드스턴 연구소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 및 진화’ 8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코모도왕도마뱀의 게놈을 고해상도로 해독해 높은 에너지 대사, 심혈관의 항상성 유지, 뛰어난 냄새 감지, 지혈 등 독특한 생리적 기능이 특별히 진화했음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린드 박사는 “이 도마뱀의 유전체에서 세포가 에너지를 만들고 이용하는 것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유산소운동 능력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화했다”며 “이런 변화 덕분에 왕도마뱀은 포유류에 필적하는 대사능력을 보인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k3.jpg » 코모도왕도마뱀이 포유동물에 필적한 생리 기능을 보이는 비결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신진대사를 늘리고 심폐기능을 향상하는 적응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마크 두몽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코모도왕도마뱀은 심폐기능도 독특하게 진화해, 급격한 혈압상승이 가능해졌다. 연구자들은 “그 덕분에 이 도마뱀은 섬과 섬 사이를 장거리 헤엄치고, 장기간 사냥과 수컷끼리의 격렬한 싸움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이런 형태의 진화는 긴 목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고혈압이 필수적인 기린에서도 발견된다고 논문은 덧붙였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짝짓기뿐 아니라 먹이와 영역을 둘러싸고도 싸움이 잦아 상처가 없는 개체가 드물 정도다. 먹이 동물에 치명적인 저혈압 유발물질이 들어있는 침에 노출되고도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게놈 분석 결과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이 도마뱀의 유전체에서 혈액 응고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선택되었음을 확인했다. 싸움 도중 상처를 통해 침 속 저혈압 유발물질이 들어오더라도 그 효과를 상쇄할 혈액 응고 기능이 있는 도마뱀만 살아남은 결과이다. 

코모도왕도마뱀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올라있으며,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 5곳에 약 3000여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bigail L. Lind et al, Genome of the Komodo dragon reveals adaptations in the cardiovascular and chemosensory systems of monitor lizards, Nature Ecology & Evolution, Vol 3, August 2019, 1241–1252, https://doi.org/10.1038/s41559-019-0945-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개구리 사냥하는 거미, 나뭇잎 엮어 덫으로 사용개구리 사냥하는 거미, 나뭇잎 엮어 덫으로 사용

    조홍섭 | 2021. 01. 11

    농발거미 나뭇잎 2장 엮어 은신처 겸 덫으로…세계적으로도 개구리는 거미 단골 먹이 푹푹 찌는 열대우림에서 나뭇잎이 드리운 그늘은 나무 개구리에게 더위와 포식자를 피해 한숨 돌릴 매력적인 장소이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에서 크고 빠른 사냥꾼인...

  • 개 가축화, ‘단백질 중독’ 피하려 남는 살코기 주다 시작?개 가축화, ‘단백질 중독’ 피하려 남는 살코기 주다 시작?

    조홍섭 | 2021. 01. 08

    사냥감 살코기의 45%는 남아돌아…데려온 애완용 새끼 늑대 먹였을 것 .개는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일찍 가축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늑대가 가축이 됐는지는 오랜 논란거리다.개의 골격이 발견된 가장 오랜 구석기 유적은 1만4...

  • 새를 닮은 포유류, 오리너구리의 비밀새를 닮은 포유류, 오리너구리의 비밀

    조홍섭 | 2021. 01. 08

    젖샘 있으면서 알 노른자도 만들어…지금은 사라진 고대 포유류 흔적 1799년 영국 박물관 학예사 조지 쇼는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내온 이상한 동물 표본을 받았다. 오리 주둥이에 비버 꼬리와 수달의 발을 지닌 이 동물을 쇼는 진기한 ...

  • 말의 몸통 지닌 ‘키작은’ 기린 발견, 유전 다양성 감소 탓?말의 몸통 지닌 ‘키작은’ 기린 발견, 유전 다양성 감소 탓?

    조홍섭 | 2021. 01. 07

    우간다와 나미비아서 각 1마리 확인…동물원, 가축선 흔해도 야생 드물어 .아프리카 우간다와 나미비아에서 돌연변이로 인한 골격발육 이상으로 추정되는 왜소증 기린이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왜소증은 근친교배가 이뤄지는 가축에서 흔히 발견되지만 야생...

  • 스타 동물 자이언트판다 그늘서 반달곰 운다스타 동물 자이언트판다 그늘서 반달곰 운다

    조홍섭 | 2021. 01. 06

    판다 좋아하는 고산 중심 보호구역…반달곰, 사향노루 보호 못 받아 급감 자이언트판다나 호랑이처럼 카리스마 있고 넓은 영역에서 사는 동물을 우산종 또는 깃대종이라고 한다. 이 동물만 보전하면 그 지역에 함께 사는 다른 많은 동물도 보전되는 ...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