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작은 철새는 ‘목숨 걸고’ 잔다

조홍섭 2019. 09. 05
조회수 7636 추천수 0
머리 날개 밑에 파묻고 숙면, 포식자 반응 늦어

m1.jpg » 갈대 위에서 잠에 빠진 굴뚝새.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작은 철새는 밤 동안 머리를 날개 밑에 박고 잠을 깊이 잔다. 게티이미지뱅크

휘파람새, 개개비, 방울새 같은 작은 철새는 봄·가을 힘겨운 장거리 이동을 한다. 수백 ㎞ 바다를 건너 섬에 내린 새들은 물과 먹이로 배를 채우고 잠에 빠진다.

중간 기착지에 내린 철새는 몸의 상태에 따라 잠자는 모습이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밤중에 몸 상태가 나쁜 새는 머리를 날개 밑에 파묻고 자, 에너지를 절약하지만 커지는 포식자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드레아 페레티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19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철새들이 안전이냐, 에너지 소비 감축이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상황에 몰린다”고 밝혔다.

m2.jpg » 잠자는 새의 적외선 사진을 보면, 눈과 부리 부위에서 열 손실이 가장 크다(왼쪽). 머리를 날래 밑에 감추면 열 손실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오른쪽). 테레티 외 (2019)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교신저자인 레오니다 푸사니 빈 대학교 교수는 “기진맥진한 새가 머리를 날개 밑에 묻고 잠들면, 깊은 잠에 빠져 에너지 소비는 줄지만, 포식자에 잡아먹힐 위험은 커진다. 반대로, 건강상태가 좋은 새는 머리를 묻지 않고 잠들어 에너지는 좀 손해 보더라도 더 안전하게 밤을 보낸다”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참새목(연작류) 소형 철새들이 지중해를 건너는 중간 기착지인 이탈리아 폰자 섬에서 철새들의 수면 행동을 조사했다. 낮에 활동하는 연작류는 기상조건이 낫고 포식자 위험이 적은 밤에 이동한다.

m3.jpg » 서해 소청도에서 2016년 처음 발견된 한국 미기록종 조류 회색머리노랑딱새. 소청도는 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잇는 세계적 철새 이동 경로의 복판에 위치한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작은 철새에게 장거리 이동은 목숨을 건 모험이다. 특히, 봄철 번식지로 이동할 때는 좋은 번식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중간 기착지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들르는 기착지 수를 줄이면 좋겠지만,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하려면 줄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상승기류를 타고 활공비행을 하는 대형 조류는 잠깐씩 눈을 붙일 수 있지만(▶관련 기사: 하루 42분 수면, 10일 논스톱 비행 군함새 미스터리), 쉬지 않고 날개를 쳐야 하는 연작류는 그것도 불가능하다.

m4.jpg » 몸 건강상태에 따른 이동 기착지 잠자리 행태 차이. 건강한 개체(왼쪽)는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잤으며 신진대사가 빨랐고 열 방출이 많았으며 경계심이 강했다. 상태가 좋지 않은 개체(오른쪽)는 머리를 날개 밑에 숨기고 대사율이 낮았으며 열 방출이 적고 경계심이 약했다. 테레티 외 (2019)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연구자들은 휘파람새를 그물로 포획해 혈액을 채취하고 적외선 카메라로 수면 행태를 조사했다. 몸 크기, 지방 축적량, 근육 무게 등에 비춰 몸 상태가 좋은 새는 밤에 머리를 꼿꼿이 든 상태로 잤다.

반대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새는 머리를 날개 밑에 숨긴 채 잤다. 겨울철 추위에 대응해 보이는 동작이다. 연구자들은 “새들의 눈 부위와 부리는 열 손실이 가장 많은 부위”라고 밝혔다. 이런 상태에서는 열 손실이 적을 뿐 아니라 새의 심장박동과 신진대사도 줄었다.

머리를 날개 밑에 묻고 자는 새는 포식자에 잡아먹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연구자들은 나뭇잎을 부스러뜨리는, 포식자가 접근할 때 내는 것과 비슷한 소리를 냈을 때 새들의 반응 속도로 비교했다. 귀를 날개 밑에 묻고 자는 새는 위험을 훨씬 늦게 알아차렸다. 주 저자인 페레티는 “새들이 이런 자세로 자면서 실제로 경계를 늦추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m5.jpg » 2009년 전남 신안군 홍도 철새연구센터에서 발견한 희귀한 나그네새 푸른바다직박구리. 이동과정에 홍도에 기착한 개체다. 국립공원연구원 제공.

연구자들은 “건강상태가 좋은 새는 먹이를 많이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낮에 종종 잠을 잤고, 대신 밤에는 더 부산하고 포식자 경계를 놓지 않았다”며 “대조적으로 건강이 나쁜 새는 먹이 때문에 낮에 덜 자고 밤에 더 잤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포식자가 활동하고 기온이 높은 낮 동안에는 굳이 안전을 무릅쓰고 에너지를 보전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낮에는 몸 상태가 나쁜 새들도 고개를 들고 잠들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긴다리딱새.jpg » 2003년 대흑산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동중인 긴다리딱새. 박종길,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이번 연구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철새의 중간 기착지인 지중해 섬에서 이뤄졌다. 우리나라에도 서해 소청도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의 핵심 중간 기착지이다. 가을에는 북방 철새가 중국 산둥반도를 거쳐 남쪽으로 이동하고, 봄에는 같은 경로로 북상하는 길목인 이곳에 국가철새연구센터가 올해 문을 열어 활동을 시작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erretti et al., Sleeping Unsafely Tucked in to Conserve Energy in a Nocturnal Migratory Songbird, Current Biology 29, 2766–2772, https://doi.org/10.1016/j.cub.2019.07.02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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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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