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합강습지는 세종시의 미래

조홍섭 2019.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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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경제성보다 생태적 결을 살려야

ㅅ17.jpg » 갈대밭으로 장관을 이루는 장남 평야.

세종시는 갓 태어난 도시이다. 신도심은 옛 연기군 땅을 완전히 복토하고 새로 들어앉았다. 성토된 후 과거는 모두 땅에 묻혔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여덟 남매를 낳아 키워 내보냈던 고향 집도 사라졌고, 염 조기 머리에 이고 팔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던 월산 소나무 동산도, 송사리 잡던 방축천 도랑도 얼굴이 달라졌다. 학교 가던 길에 노랗게 물들던 양화리 은행나무 길도 사라졌고, 엄마 모신 야산의 산소도 사라졌다. 기억만 살아있다. 

ㅅ1.jpg » 기억 속에만 살아있는 월산리 소나무 동산.

ㅅ2.jpg » 세종시 다른 곳으로 옮겨진 소나무.

한마디로 과거와 현재의 모든 것을 ‘포맷’한 상태다. 천 년 대지 위에 숨 쉬던 감성도, 추억하는 역사의 시공간과 위치도 모두 백지화하고, 심시티 게임을 하듯 건물 척척 올려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ㅅ3.jpg » 파헤쳐진 양화초등학교 화단 자리. 

ㅅ4.jpg » 성토된 연기면 세종리.

때문에 세종시는 백 년 미래를 설계할 때 과거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정체성 형성을 모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은 가급적 속도와 경제적 가치를 우선하지 않고, 환경 생태적인 결이 녹아들도록 해야 한다. 이런 기본적인 생각을 담아 세종 시민들을 대상으로 세종시의 강길과 산길을 알리는 일을 7년째 꾸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ㅅ5.jpg » 세종시 강길 산길 탐방 모습.

처음부터 탐방을 함께했던 필자는 세종시에 거주하지 않지만, 세종시는 과거 연기군 시절부터 애정을 쏟았던 지역이다. 14년 전 연기군의 금강에 관심을 갖게 된 곳은 그 당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합강습지였다. 

합강습지는 먹이 공급처인 장남 평야와 대평 뜰, 육상생태계의 보고인 전월산, 금강의 제1지류인 미호천과 연결되는 다양한 생태계로 이뤄진다. 금강과 미호천 합수부의 강폭은 대단히 넓어서, 물을 담아내는 물그릇 구실을 하는 동시에 다양한 동식물을 키워내는 생명의 자궁 역할을 했다. 

여름철 홍수가 지나면 엄청난 양의 모래톱이 마치 사막을 연상케 할 만큼 높고 넓었다. 그 모래톱에서 다양한 새와 야생동물의 발자국을 확인했고, 수많은 재첩도 보았다. 

ㅅ6.jpg » 합강습지의 모래사막
.
ㅅ7.jpg » 모래사막을 걷는 어린이들.

겨울철 합강습지를 가장 많이 찾던 큰기러기들은 장남 뜰과 대평 뜰 등에서 추수한 나락을 먹었고, 하중도는 이들의 좋은 은신처 및 휴식처가 되었다. 모래밭의 하얀 눈벌판에 수천 마리의 큰기러기 떼와 30여 마리의 큰고니가 앉아 쉬고, 붉은배새매와 흰꼬리수리가 상공을 비행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ㅅ.jpg » 4대강 사업 이전의 합강습지 모래밭.

당시 볼품없는 렌즈와 값싼 스코프가 전부였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새들의 몸짓과 그들의 존재 하나만으로 앵글 속 모습에 행복했다. 새들이 군락을 이뤄 어떻게 내려앉는지, 어떤 행태로 먹이활동을 하는지, 다른 새들과 어떻게 어울리는지, 몇 년에 걸친 내 눈의 확인과 기록으로 새들을 이해하게 된 세월이었다. 합강습지의 사진은 세종보가 세워져 합강습지가 잠길 위기에 처했을 때, 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요긴하게 쓰였다. 

ㅅ9.jpg » 합강습지를 찾은 큰기러기떼. 2006년 12월 촬영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합강습지는 많은 면적이 잠기고 말았다. 준설로 강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됐다. 뚝 떼어먹다 버린 듯 남겨놓은 모래톱은 육상화가 지속되면서 버드나무 정글 숲이 되었다. 모래톱이 사라짐과 동시에 새들도 더는 합강습지를 찾지 않았다.  

ㅅ11.jpg » 4대강 사업 당시의 합강리 모습.

ㅅ12.jpg » 준설과 세종보로 인해 육상화가 시작되는 합강습지.

‘세종시 강길 산길 탐방’은 조치원 원도심을 중심으로 시작했다. 가깝게는 소읍을 관통하는 조천과 멀게는 황포돛배가 올라오던 금강의 부강까지 포괄했다. 당시 참여자 대부분은 조치원읍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점차 원주민과 신도시 주민들의 비율이 섞이더니, 2019년에는 아예 신도심 참가자들이 90%를 넘었다. 

어른 위주이던 참가자 구성이 가족 단위로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는 젊은 주부들은 주변의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쳐줄 것들에 열정이 있었고, 이런 경향은 새로 정주하는 세종 신도시 주민들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알게 했다.

ㅅ13.jpg » 가족 단위로 참가가 많은 세종시 강길 산길 탐방.

젊은 가족 단위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세종시가 젊은 도시라는 것을 의미한다. 늙어가는 도시가 아니기에 미래가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의미가 크다. 부동산 가격이 높은 세종을 만들기보다는, 생태적인 도시로 만들어 미래세대가 잘 누릴 수 있는 도시, 좋은 고향을 만들어줘 후손에게 당당한 도시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ㅅ14.jpg » 세종시 장남 평야.

ㅅ15.jpg » 금개구리가 지킨 세종시 장남 평야.

세종시는 녹지율 60%의 명품 생태도시를 꿈꾸고 있다. 따라서 교육에서도 합강습지의 중요성과 가치를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에는 그곳을 지키려 애썼다면, 이제는 강이 회복되면서 스스로 살아나는 생명의 공간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최근 정부의 4대강 보 정책이 바뀌면서 보 수문이 조금씩 열리자, 합강습지에도 대량의 모래가 퇴적되면서 모래 동산을 이루기 시작했다. 미호천이 금강과 만나는 월산교 아래에는 저수로보다 모래톱이 더 넓은 지경이고, 합강습지는 수위가 얕아지면서 노출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ㅅ16.jpg » 되돌아온 합강 강변 모래밭에서 아이들이 수건돌리기 놀이를 즐기고 있다.

지금도 한창 공사 중인 세종시를 답사하고자 주행하면, 여전히 내비게이션에 없는 길을 자동차가 달린다. 내려 걸으면, 성토 후 방치된 땅이 자연적인 모습으로 살아나고, 야생동물들의 천국으로 변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도심 한복판에 남아있는 한 뼘 장남 평야의 억새는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누런 벼가 출렁이는 황금 바다는 호남의 들녘과 견줄 만하다. 

세종시는 조금만 발품을 팔면 천혜의 자원이 주변을 아우르고 있고, 계절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산과 강과 들을 가진 산내들의 전형임을 세종시 강길 산길 탐방에서 보여주고 있다.

ㅅ01.jpg » 대단위 주택단지로 면적을 넓혀가고 있는 세종시. 생태적인 숨결이 살아있는 도시로 만들어 가자는 목소리가 높다.

세종시 강길 산길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실현하고자 했던 것을 정리해 본다. 첫째, 백 년 미래를 설계하는 데 오래 된 과거가 바탕이 돼야 한다는 것, 둘째, 정주민들의 정체성 형성 과정이 생태적이었으면 한다는 것, 셋째, 세종시의 이름 대로 세종대왕의 인문적 정서가 배어들었으면 하는 것, 네 번째는 개발과정에서 불필요한 민민갈등을 줄이고, 수도 서울과 다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속도와 경제적 가치를 우선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ㅅ18.jpg » 전월산에서 바라본 세종시 풍경. 도시 만들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점차 강의 자연성이 회복되고 있지만, 과거 철새가 월동하는 생명의 습지로 기능하기는 어렵다. 먹이원이었던 장남 평야는 주택단지, 청사단지, 호수단지 등으로 점차 메워지며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강모래의 부활과 모래가 가진 수질정화작용, 강변 식생과 동물 은신처의 역할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시민들이 심미적 안정과 문화 경관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물이 흘러가는 수로로서의 강이 아닌, 강의 원형을 아파트 창문 너머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축복이 아닐까. 

조상 대대로 이뤄온 우리 강산의 모습은 오랫동안 역사와 문화 속에서 변화해 왔고, 우리의 유전자 깊숙이 각인돼 있다. 그런 문화 경관을 회복하는 것은 곧 우리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ㅅ20.jpg » 인공하천으로 변한 방축천에서 살아남은 버드나무 노거수 세 그루.

세종시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세종시를 열어가는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공감이 피어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세종시  강길  산길 탐방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도 참가자들은 뚜벅뚜벅 걸으며 내 아이 고향이 될 세종시의 생김새를 더듬고 있다.

ㅅ21.jpg » 세종시 강길 산길 탐방을 하는 세종 시민들.

글·사진 최수경/ 금강생태문화연구소 ‘숨결’ 소장,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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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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