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줄게 화내지 마’ 무당거미 수컷의 짝짓기 전략

조홍섭 2019.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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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앞다리 떼 줘 암컷이 먹는 동안 교미 연장

sp1.jpg » 아프리카 무당거미 암컷. 수컷은 스스로 앞다리를 잘라 암컷이 먹도록 해 짝짓기에 도움을 얻는 행동을 한다. 존 리드필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무당거미 수컷은 다른 종으로 보일 만큼 암컷보다 왜소하다.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에 모든 것을 걸지만, 종종 교미 도중이나 직후 암컷에게 잡아먹힌다. 

아프리카 무당거미는 암컷의 성깔을 누그러뜨리는 비결을 진화과정에서 얻었다. 스스로 떼어낸 앞다리를 암컷이 맛있게 먹는 동안 짝짓기를 길게 유지하는 것이다.

라이너 노이만 등 독일 함부르크대 동물학자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무당거미의 이런 독특한 행동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동물 행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sp2.jpg » 무당거미의 수컷(왼쪽)은 암컷보다 훨씬 작으며, 짝짓기 도중이나 뒤 종종 잡아먹힌다. 한겨레 자료사진

수컷 무당거미의 짝짓기는 평생 단 한 번의 기회이다. 암컷에 정자를 전달한 뒤 생식기의 일부를 부러뜨려 암컷의 생식기를 틀어막아 경쟁자 수컷과의 짝짓기를 방해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무당거미의 ‘생식기 마개’는 불완전해 교미를 마친 수컷이 암컷 곁에서 경쟁자의 접근을 막을 필요가 있다.

연구자들은 아프리카 무당거미 수컷이 흔히 앞다리가 없다는 데 주목했다. 짝짓기 때 종종 암컷에게 잡아먹히는 거미 수컷은 다양한 대응책을 고안했다.

배를 웅크려 방어하기, 죽은 척하기, 암컷을 거미줄로 묶기, 경험 없는 어린 암컷과 짝짓기하기, 멀리 떨어지기(잘린 생식기는 계속 정자 전달), 먹이를 선물로 주고 짝짓기하기 등의 행동이 보고돼 있다.

sp3.jpg » 암컷 아프리카 무당거미의 생식기 입구를 잘린 수컷 생식기 2개가 마개처럼 막고 있는 모습. 짝짓기는 수컷에게 일생일대의 일이다. 루츠 프롬하게 외 (2006) ‘행동 생태학’ 제공.

연구자들이 수컷의 앞다리와 다른 곤충을 던져 암컷의 반응을 비교한 실험에서 암컷이 곤충보다 수컷의 다리를 선호하는 것을 확인했다. 암컷은 짝짓기 도중 평균 17분 동안 다리를 먹으면서 주의를 돌렸고, 그 바람에 수컷에 대한 공격 빈도가 줄었다.

다리를 제공한다고 수컷이 동종포식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짝짓기 때 다리를 주더라도 암컷의 밥이 되는 비율은 그러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였다”며 “중요한 건 다리를 제공하면 교미 시간이 늘어난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교미 시간이 늘면 암컷의 몸속에 저장되는 정자의 양도 많아진다. 연구자들은 “평균 교미 시간이 정자 전달에 필요한 시간을 넘어서는 25분 이상이어서 경쟁자를 물리치는 다른 기능도 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다리를 잃은 수컷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앞다리가 없으면 기동력이 떨어지고 암컷을 지키기가 힘들어진다. 다리를 제공하는 행동이 진화한 것은 그쪽이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포식자로부터 피하기 위해 자기 몸을 스스로 자르는 행동은 도마뱀 등 파충류를 비롯해 무척추동물, 일부 소형 포유류에서 발견된다”며 “그러나 아프리카 무당거미는 그 행동을 짝짓기에 활용하는 진화적 전환을 이룬 드문 예”라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ainer Neumann, Jutta M. Schneider, Males sacrifice their legs to pacify aggressive females in a sexually cannibalistic spider, Animal Behaviour, https://doi.org/10.1016/j.anbehav.2019.11.00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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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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