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알레르기 기원은 포식자 방어수단?

조홍섭 2020. 0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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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영장류’ 늘보로리스 독이 고양이 알레르기 항원과 동일 밝혀져

l1.jpg »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독이 있는 늘보로리스는 방어수단으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을 독으로 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인도네시아 자바 섬 등 동남아 열대림에 사는 늘보로리스는 거의 연구되지 않은 수수께끼의 동물이다. 몸길이가 18∼38㎝의 작은 몸집에 큰 눈을 지닌 영장류로 밤중에 활동하는 느리고 조심스러운 동물이다.

무엇보다 이 동물은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독이 있다. 공격을 받으면 얼어붙은 채 두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는 독특한 동작을 하는데,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무시무시한 독물 공격을 준비하는 자세이다.

l2.jpg » 위협을 느낀 늘보로리스는 두 팔을 머리에 얹어 얼굴을 가리는 동작을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자세 때문에 늘보로리스를 ‘부끄럼타는 동물’이라고 부른다. 실은, 위팔에 있는 독샘을 입으로 핥아 공격하려는 자세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입에서 가까운 위팔에 난 독샘을 핥아 침으로 독성분을 활성화한 뒤 이로 깨물어 상대에 주입한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털에 독을 발라주기도 한다. 늘보로리스는 포식자뿐 아니라 동료와 싸울 때도 독을 쓰는데, 일단 물리면 좀처럼 상처가 아물지 않고 괴사, 패혈증, 폐부종 등을 일으킨다.

사람도 늘보로리스에 물리면 심한 통증, 호흡 곤란, 혈뇨, 감염 등이 나타나고, 심하면 치명적인 초 과민 쇼크로 이어진다. 치료에 여러 달 걸린다. 늘보로리스는 흔히 야생에서 포획해 산 채로 독니를 뽑아낸 뒤 애완용으로 거래해 문제가 되고 있다.

브라이언 프라이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대 교수 등 국제 연구진은 인도네시아 시카난가 야생동물 구조센터에 들어온 늘보로리스를 연구하다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이 영장류 독소의 디엔에이(DNA) 염기서열을 분석해 보았더니 고양이의 알레르기 항원 단백질과 거의 동일했다.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독소’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사실을 밝혔다.

l3.jpg » 늘보로리스의 독은 개나 고양이 알레르기의 기원을 알려주고 있을지 모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프라이 교수는 “고양이는 이 단백질을 분비해 털에 바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고양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며 “늘보로리스가 같은 단백질을 방어 무기로 쓰기 때문에 고양이도 그 알레르기 항원을 방어용으로 쓴다고 볼 수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그 많은 사람이 고양이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게 우연은 아니”라면서 “그 이유는 고양이가 알레르기 항원을 방어수단으로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단백질을 방어 무기로 쓰는 동물이 늘보로리스에 국한되지 않고, 아마도 독립적으로 고양이에서도 진화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진의 가설은 다시 말해, 고양이나 개가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은 포식자를 물리치기 위해 오래전부터 진화한 독성물질 방어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어서 반려동물이 된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됐다는 얘기다.

고양이나 개의 털, 피부, 오줌 등에 들어있는 알레르기 항원 물질은 매우 작아 공기 중에 떠다니다 사람에 흡수돼 알레르기 비염, 알레르기 결막염, 아토피 피부염, 천식 등을 일으킨다. 기침과 재채기, 가려움증, 붓기, 눈 충혈 등이 흔한 증상이다.

가천대 길병원 이상민 교수팀은 2018년 과학저널 ‘알레르기 천식 면역학 연구’에 실린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한 애완동물 전시장에 참석한 반려인 537명을 조사한 결과 고양이 소유자의 34.6%, 개 소유자의 25.3%가 고양이나 개 알레르기를 겪는다고 밝혔다.

인용 저널: Toxins, DOI: 10.3390/toxins1202008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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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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