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 이긴 닭·오리 조상 ‘원더 치킨’ 화석 발견

조홍섭 2020. 03. 24
조회수 17137 추천수 1
6700만년 전 바닷가 살던 오리 절반 크기…가장 오랜 현생 조류 조상 화석

w1.jpg » 닭과 오리의 특징을 모두 갖춘 ‘원더 치킨’의 상상도. 중생대 말 공룡시대 해안에 살았으며, 화석이 발견된 현생 조류의 가장 오랜 조상이다. 필립 크세민스키 제공.

소행성 충돌로 대멸종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살았던 현생 조류의 직계 조상 화석이 발견됐다. 닭과 오리의 모습을 모두 갖춰 ‘원더 치킨’이란 별명을 얻은 이 새의 발견으로 조류의 진화사가 새롭게 쓰이게 됐다.

다니엘 필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19일 과학저널 ‘네이처’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벨기에 석회암 광산에서 발견된 조류 화석을 분석한 결과 현생 조류의 직계 조상이 공룡시대 말기인 6700만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새는 중생대 말 대멸종 사태에서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은 공룡의 후손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 1만 종으로 분화해 번성한 새가 언제 기원했는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케빈 패디안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고생물학자는 “독일에서 1억5000만년 전 쥐라기 말 지층에서 발견된 시조새는 깃털과 날개를 갖추었지만 부리에 난 이, 꼬리뼈, 날개 발톱 등 넓은 의미에서는 새이지만 현생 조류와는 다른 계통”이라며 “현생 조류는 따로 쥐라기(2억년∼1억4500만년 전) 동안 육식 공룡에서 분화해 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네이처’ 논평에서 밝혔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등 우리나라 남해안의 중생대 말기 지층에서는 공룡과 함께 수많은 새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다. 그러나 발자국만으로 이 새들이 현생 조류의 조상인지 또는 이미 멸종한 새의 계통인지는 알 수 없다. 새는 비행에 적합하도록 무게를 줄이기 위해 뼈에 구멍이 많아 골격이 화석으로 남기 매우 어렵다.

이 새의 화석은 20년 전 한 아마추어 화석 수집가가 벨기에 광산에서 발견했다. 돌덩이에는 새의 다리뼈 일부만 드러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첨단 엑스선 단층촬영 기법으로 조사하자, 돌멩이 표면 1㎜ 안쪽에 숨어있던 완벽하게 보존된 중생대 새 화석이 드러났다.

필드 박사는 “돌 안쪽을 들여다 보았을 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흥분된 순간이었다”며 “시대를 불문하고 새의 골격이 이처럼 완벽하게 보존된 화석은 없어, 꿈인가 싶어 살을 꼬집어 볼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w2.jpg » 중생대 ‘원더 치킨’의 두개골(가운데)을 칠면조((닭목, 왼쪽)와 청둥오리(오른쪽)과 비교한 모습. 닭과 오리의 중간 특성을 띤다. 다니엘 필드 박사, 케임브리지대 제공.

돌멩이 속의 화석은 현생 조류의 여러 특징을 분명히 간직하고 있었다. 부리의 모양은 육지새를 닮았고 길고 날씬한 다리는 물새의 특성을 지녔다. 필드 박사는 “골격이 닭과 오리의 특성을 뒤섞어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저자인 앨버트 천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생은 “현생 조류의 기원은 화석이 부족해 공룡시대 말기의 어느 때 정도로 짐작할 뿐 미스터리에 싸여 있었다”며 “이 화석으로 현생 조류가 진화사 초기에 어떻게 생겼는지를 직접 바라 볼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 새는 청둥오리의 절반 정도인 무게 400g 정도였고, 발견된 지층이 해양 퇴적층이어서 바닷가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됐다. 필드 박사는 “초기의 현생 조류는 몸집이 작고 땅에서 서식하며 해변 가까이에서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또 “이 화석은 새들의 조상이 소행성 충돌로 인한 대멸종 사태를 살아남은 것은 (대규모 화재로부터 안전한) 연안에 서식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한다”고 논문에 적었다.

w3.jpg » 소행성 충돌로 공룡이 멸종할 때 현생 조류의 조상인 ‘원더 치킨’은 해안에서 멸종 사태를 피해 살아남았다. 필립 크세민스키 제공.

현생 조류는 날지 못하는 타조 등 고악류와 신악류로 나뉘며, 신악류는 다시 닭, 오리, 기러기 등을 포함하는 닭기러기류와 그밖의 대다수의 조류를 포함하는 신조류로 분류된다. 이번 화석은 닭기러기류의 마지막 공통 조상에 가까운 위치이다.

인용 저널: Nature, DOI: 10.1038/s41586-020-2096-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얼굴에 손이 가는 이유 있다…자기 냄새 맡으려

    조홍섭 | 2020. 04. 29

    시간당 20회, 영장류 공통…사회적 소통과 ‘자아 확인’ 수단 코로나19와 마스크 쓰기로 얼굴 만지기에 어느 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이 행동이 사람과 침팬지 등 영장류의 뿌리깊은 소통 방식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침팬지 등 영장류와 ...

  • 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쥐라기 바다악어는 돌고래처럼 생겼다

    조홍섭 | 2020. 04. 28

    고래보다 1억년 일찍 바다 진출, ’수렴 진화’ 사례 공룡 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가장 오랜 파충류인 악어는 대개 육지의 습지에 산다. 6m까지 자라는 지상 최대의 바다악어가 호주와 인도 등 동남아 기수역에 서식하지만, 담수 악어인 나일악어...

  • ‘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과일 향 추파’ 던져 암컷 유혹하는 여우원숭이

    조홍섭 | 2020. 04. 27

    손목서 성호르몬 분비, 긴 꼬리에 묻혀 공중에 퍼뜨려 손목에 향수를 뿌리고 데이트에 나서는 남성처럼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수컷도 짝짓기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과일 향을 내뿜는다. 사람이 손목의 체온으로 향기를 풍긴다면, 여우원숭이는 손목 분...

  • 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 2020. 04. 23

    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

  • 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금강산 기암 절경은 산악빙하가 깎아낸 ‘작품'

    조홍섭 | 2020. 04. 22

    북한 과학자, 국제학술지 발표…권곡·U자형 계곡·마찰 흔적 등 25곳 제시 금강산의 비경이 형성된 것은 2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때 쌓인 두꺼운 얼음이 계곡을 깎아낸 결과라는 북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북한의 이번 연구는 금강산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