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에 쏘이면 아픈데 왜 독사에 물리면 안 아플까

조홍섭 2020. 04. 01
조회수 23591 추천수 0
찌르는 통증은 방어 수단…독사의 독은 공격용

s1.jpg » 인도에서 가장 큰 인명피해를 일으키는 독사의 하나인 크레이트는 자는 사람을 물어도 아무 통증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기도 한다. 볼프강 뷔스터 제공.

세계에서 한 해에 독사에 물려 숨지는 사람은 10만 명에 이른다. 뱀은 사람에 의해 궁지에 몰리거나 우발적으로 위협을 받으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사람을 문다. 그런데 뱀의 독은 이처럼 방어 수단으로 진화한 것이 아니란 연구결과가 나왔다.

볼프강 뷔스터 영국 뱅고르대 파충류학자 등 국제연구진은 과학저널 ‘독소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뷔스터 박사는 “뱀은 먹이를 제압해 잡아먹기 위해 독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도 독을 쓴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이 뱀에 물려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뱀의 독이 이런 방어기능을 위해 진화한 것인지 알아보고자 했다.”고 영국 스완지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s2.jpg » 인도에서 해마다 수백만 건의 뱀 물림 사고를 빚는 인도코브라. 볼프강 뷔스터 제공.

많은 동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독을 사용한다. 꿀벌, 말벌, 지네, 퉁가리 등은 포식자에게 찌르는 통증을 선사해 자신을 방어한다. 

방어용 독이 즉각적 통증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명하다. 포식자가 깜짝 놀라 물러나게 하고, 그 사이 자신도 달아날 시간을 얻는다. 먹이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급성 통증을 일으켜 먹이를 더 날뛰게 할 리 없다.

따라서 독뱀에 물렸을 때 즉각 찌르는 통증을 느꼈는지 알아보면 뱀의 독이 애초 방어용인지 공격용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세계 각국의 뱀을 다루는 전문가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192종의 독뱀에 물린 584건의 사례를 분석했다. 일반적인 뱀 물림 피해자가 공포에 휩싸여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만 뱀 전문가는 ‘준비된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조사 대상이 됐다.

설문 결과 놀랍게도 대부분의 경우 독사에 물렸을 때 큰 통증은 느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사에 물린 고통은 대부분 붇기, 피부 괴사 등 이차 증상의 결과였지, 일부 예외를 빼고는 벌에 쏘였을 때처럼 즉각적인 통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뱀에 물린 뒤 5분 안에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는 사람은 조사 대상의 15%에 그쳤고, 55%는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울 고통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답했다.

연구자들은 인도에서 가장 큼 뱀 물림 피해를 일으키는 독사인 크레이트는 물렸을 때 초기 통증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종종 잠자는 동안 이 뱀에 물리고도 물린 것을 모르기도 한다고 밝혔다. 북살무사, 호주의 호랑이뱀, 북미의 악질방울뱀도 물렸을 때 초기의 통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에 참여한 케빈 아르버클 스완지대 박사는 “이런 결과는 뱀독 진화가 방어를 위해 일어났다는 널리 받아들여진 가설에 증거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학계의 통설은 ‘방어가 공격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뷔스터 박사는 “먹이를 못 잡더라도 목숨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연구결과는 뱀의 독 진화에서 중요한 건 먹이 사냥을 위한 자연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뱀에게 방어가 독 진화에서 큰 구실을 하지 못한 이유를 연구자들은 “독니로 무는 것은 마지막 방어전략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이빨을 쓰는 상황에 앞서 숨기와 피하기 등으로 포식자와 맞닥뜨리는 위험을 회피한다.

또 다른 동물의 독이 통증만 컸지 독성이 크지 않은 데 견줘 독사의 독은 치명적이라는 점도 작용한다. 독사의 맹독이 ‘사회적 학습’을 통해 다른 동물에 전파되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독을 이용해 방어할 필요가 적다는 것이다.

s3.jpg » 강한 통증을 유발하는 독을 분비하는 산호 뱀의 일종. 방어용으로 독이 진화한 예외적인 사례이다. 볼프강 뷔스터 제공.

한편, 예외적으로 코브라 등 일부 독사는 물렸을 때 초기 통증이 강하며, 독을 뱉는 코브라처럼 명백하게 독을 방어용으로 쓰기도 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인용 저널: Toxins, DOI: 10.3390/toxins1203020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3D 가짜 거북 알’로 불법 유통망 추적‘3D 가짜 거북 알’로 불법 유통망 추적

    조홍섭 | 2020. 10. 23

    코스타리카서 현장 시험 성공, 1시간마다 위치 정보 전송입체(3D) 프린터로 만들어 겉모습은 진짜와 똑같고 안에는 위성 위치추적 장치를 넣은 가짜 거북 알이 개발돼 불법 채취꾼을 잡고 유통망을 파악하는 데 쓰일 수 있게 됐다. 중미 코스...

  • 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우리 몸엔 늦가을과 늦봄 두 계절만 있다

    조홍섭 | 2020. 10. 22

    늦가을엔 바이러스 감염 대응…‘겨울잠’ 단백질도 많아져온대지역에 사는 사람이라면 4계절은 가장 분명한 환경 변화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몸은 4계절이 아닌 2계절을 산다는 사실이 분자 차원의 추적 연구결과 밝혀졌다.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자...

  • 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꽃샘추위 한 번에 어린 제비 사망률 곱절로

    조홍섭 | 2020. 10. 21

    더워진 봄 산란 앞당기면 새끼 굶주릴 위험 커져, 30년 장기연구 결과기후변화는 평균으로 오지 않는다. 봄은 일찍 찾아오고 평균기온은 오르지만 꽃샘추위는 잦아진다. 동물이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장기 현장연구로 밝혀...

  • 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20. 10. 19

    인도보다 3천년 앞서 쌀 재배, 고혈당 막는 유전적 적응 일어나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은 오랜 벼농사 덕분에 고탄수화물 식사로 인한 비만과 당뇨병 등의 부작용을 막는 유전적 적응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오랜 목축 역사가 있는 유럽 ...

  • 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

    조홍섭 | 2020. 10. 16

    헬싱키 공항 현장 배치…80∼90% 정확도 감염자 실시간 찾아요양원 식구들이 아침마다 돌아가며 개와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보다 10만배나 뛰어난 개의 후각을 이...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