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삼키는 도로, 핵심 서식지 60% 위협

조홍섭 2020. 05. 21
조회수 17622 추천수 0

서식지 주변에 13만㎞…로드킬, 밀렵꾼 유입, 먹이 감소 유발


t1.jpg » 지난 2월 15일 러시아 연해주의 한 고속도로에서 버스에 부닥친 어린 호랑이가 도로에 누워있다. 충돌 부상으로 수의사가 온 직후 숨졌다. 아무르호랑이 센터 제공.

2월 15일 러시아 연해주 고골레프카 마을 고속도로에서 아무르호랑이(백두산호랑이) 한 마리가 도로를 뛰어 건너다 버스에 치여 죽었다. 4∼5달 나이로 반드시 어미가 데리고 다닐 나이인데 왜 홀로 고속도로를 건넜을까. 어미는 밀렵 됐을까.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지만, 도로가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호랑이의 중요한 위협임을 보여준 사고였다.


러시아와 미국 연구자들은 2008년 ‘동물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1992∼2005년 원격 추적 장치를 단 아무르호랑이 24마리를 조사했더니 자연사한 4마리를 뺀 20마리가 사람과 관련한 원인으로 죽었다고 밝혔다. 확실한 밀렵이 10마리, 밀렵 의심이 8마리였고, 자동차와 충돌이 2마리였다. 밀렵이 압도적인데, 밀렵이 가능하게 된 주요 이유는 도로가 뚫려 외딴 지역까지 밀렵꾼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t2.jpg » 버스와 부닥치기 직전 고속도로로 뛰어든 어린 호랑이 모습. 왜 어미가 돌보지 않았는지는 수수께끼다. 아무르호랑이 센터 제공
.
인도와 동남아의 다른 호랑이 아종의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도에서 2015∼2017년 사이에만 자동차와 충돌해 죽은 벵골호랑이는 적어도 10마리에 이른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도로가 건설되는 지역이고, 호랑이 보호구역도 예외가 아니다.


닐 카터 미국 미시간대 교수 등은 세계 13개국에 있는 호랑이의 핵심 서식지 116만㎢를 대상으로 도로의 위협을 평가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 4월 29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도로에서 5㎞ 이내여서 직·간접 영향을 받는 서식지가 전체 면적의 57%에 이른다”며 정책당국의 대책을 촉구했다.


t3.jpg » 세계 호랑이 서식지의 도로 밀도(m/ ㎞). 짙은 색일수록 밀도가 높다. 아래 그래프는 보호구역 안(옅은 색)과 밖의 도로 밀도. 카터 외 (2020) ‘사이언스 어드밴스’ 제공.

연구자들은 “호랑이의 핵심 서식지를 위협하는 도로만도 13만4000㎞에 이르며 이로 인해 호랑이와 그 먹이의 20%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호랑이 서식지와 도로 사이의 거리는 평균 3.9㎞에 불과했다. 호랑이 번식지의 43%도 도로 영향권으로 조사됐다.


도로가 호랑이에 끼치는 악영향은 교통사고만이 아니다. 도로는 서식지를 단절시켜 섬처럼 만든다. 외딴곳에 임도 등 도로가 뚫리면 밀렵꾼의 접근이 쉬워져 호랑이와 그 먹이 동물이 줄어들고 빛과 소음 공해가 늘어난다.


t4.jpg » 네팔의 동-서 고속도로는 여러 호랑이 서식지를 관통한다. 편도 1차선의 도로를 확장할 계획이 나와 있다. 닐 카터 제공.

호랑이의 생존에 꼭 필요한 지역이 모두 보호구역으로 관리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보호구역으로 묶이지 않은 곳에서 도로가 보호구역에서보다 평균 34% 더 촘촘하게 나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는 개발압력이 커 2017∼2020년 사이 도로가 2배로 늘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30년 동안 호랑이 서식지에 건설될 도로는 총 2만4000㎞로 추산된다”며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투자가 이런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호랑이 서식지의 16%를 차지하는 인도에서는 현재보다 32% 늘어난 1만4500㎞ 길이의 도로가 서식지 영향권에 건설될 예정이다. 인도보다 면적은 작지만, 네팔과 부탄도 현재보다 40% 이상 늘어난 각각 880㎞와 609㎞의 도로를 호랑이 서식지에 건설할 계획이다.


t5.jpg » 네팔 치트완 국립공원의 호랑이. 이 국립공원은 동-서 고속도로에 인접해 있다. 닐 카터 제공.

연구자들은 “호랑이 서식지 곳곳에 뚫리는 도로는 호랑이 복원에 걱정스러운 경고 신호”라며 “도로를 건설할 때 정책결정자는 무엇보다 야생동물 집단에 끼칠 악영향을 줄이는 방안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용 저널: Science Advances, DOI: 10.1126/sciadv.aaz96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뻐꾸기는 개개비 알 개수 세며 탁란한다뻐꾸기는 개개비 알 개수 세며 탁란한다

    조홍섭 | 2020. 07. 01

    둥지에 알 1개 있을 때 노려…비교 대상 없어 제거 회피 여름이 되면 다른 새의 둥지에 슬쩍 자신의 알을 낳아 육아의 부담을 떠넘기려는 뻐꾸기와 그 희생양이 될 개개비 사이의 ‘전쟁’이 시작된다. 세 마리 가운데 한둘은 탁란을 당하는 개개...

  • '흑색선전'으로 포식자 피하는 야생 구피'흑색선전'으로 포식자 피하는 야생 구피

    조홍섭 | 2020. 06. 29

    눈 색깔 검게 바꿔 포식자 주의 끈 뒤 마지막 순간에 도피 수조에서 관상용 열대어인 구피(거피)를 기르는 이라면 종종 구피가 ‘놀란 눈’을 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홍채가 검게 물들어 눈동자와 함께 눈 전체가 검게 보인다. 흔히 물갈이 ...

  • 백악기 거대 악어는 왜 두 발로 걸었나백악기 거대 악어는 왜 두 발로 걸었나

    조홍섭 | 2020. 06. 26

    사천 화석서 육식공룡과 비슷한 악어 확인…“공룡도 진화 초기 두 발 보행” 경남 사천 자혜리에서 발견된 중생대 백악기 원시 악어가 공룡처럼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왜 원시 악어가 두 발로 걸었는지 주목된다. 악어는 공룡과 함...

  • 심해 오징어와 혈투? 얕은 바다 상어 배에서 빨판 상처 발견심해 오징어와 혈투? 얕은 바다 상어 배에서 빨판 상처 발견

    조홍섭 | 2020. 06. 24

    큰지느러미흉상어 배에 대왕오징어 빨판 상처…표층 상어의 심해 사냥 드러나 수심 300∼1000m의 심해에 사는 몸길이 13m의 대왕오징어에게는 향고래를 빼면 천적이 거의 없다. 그러나 대왕오징어를 노리는 포식자 목록에 대형 상어를 추가해야 할 것으...

  • ‘오후 3시 개화' 희귀식물 대청부채의 비밀‘오후 3시 개화' 희귀식물 대청부채의 비밀

    조홍섭 | 2020. 06. 23

    사촌인 범부채와 교잡 피하려 ‘개화 시간 격리’ 드러나 모든 꽃이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는 것은 아니다. 잠잘 ‘수(睡)’가 이름에 붙은 수련과, 얼레지 같은 일부 봄꽃은 저녁에 꽃을 오므린다. 반대로 달맞이꽃, 분꽃, 노랑원추리 등은 밤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