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방사한 황새는 왜 제 새끼를 먹었나

조홍섭 2020.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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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생존 위한 ‘선택’, 가장 약하고 늦된 새끼 도태


황새01.jpg »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에 둥지를 튼 A10 황새와 B10 황새 사이에 6마리의 황새가 부화했으나, 맨 마지막에 깨어난 어린 새끼를 어미가 제거하고 있다. 김용재 제공.

야생동물을 즐겨 관찰하는 자연 애호가도 자연의 논리가 냉혹하게 관철되는 모습 앞에서는 흠칫 놀라게 된다. 지난달 11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에서 자연 번식하던 황새 둥지에서 벌어진 일이 그랬다.


“망원렌즈로 촬영해 어미 황새가 먹이로 준 병아리를 먹는 줄 알았다. 나중에 돌아와 컴퓨터로 보니 새끼를 삼키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이 모습을 촬영한 김용재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간사는 14일 말했다.


둥지에는 올해 부화한 새끼 황새 6마리가 있었다. 먹힌 황새는 이 가운데 가장 작은 새끼였다. 촬영한 영상을 보면, 수컷 황새는 다른 새끼보다 훨씬 작은 새끼를 입에 물고 마치 다른 먹이를 다루듯 몇 차례 다듬어 꿀꺽 삼켰다.


새끼들은 이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았다. 죽은 새끼를 막 삼키려는 순간 암컷 황새가 둥지로 돌아왔다. 수컷은 몸을 돌려 먹기를 마무리했고, 암컷은 이 모습과 둥지를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황새 부부는 왜 힘들게 키운 새끼를 먹었을까.



먼저, 수컷이 삼킨 새끼가 살아있었는지 아니면 애초 죽은 상태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새끼를 먹는 사진을 본 김수경 황새생태연구원 박사는 “새끼의 얼굴빛이 회색으로 변해 있어 죽은 지 하루 정도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생에서 황새가 살아있는 새끼를 잡아먹는 사례도 종종 보고된다.


분명한 건 이 둥지의 새끼 6마리는 보통 4마리인 둥지보다 수가 많으며, 죽은 새끼가 다른 새끼보다 몸 크기가 절반 정도일 정도로 발육이 늦은 상태였다.


st1.jpg » 수컷(왼쪽)이 새끼를 삼키는 모습을 나중에 돌아온 암컷이 지켜보고 있다. 김용재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김 박사는 “사육장 안에서도 마지막에 깨어난 작은 새끼를 먹거나 던져버리는 일이 드물게 벌어진다”며 “늦게 낳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나이 차가 5일만 돼도 먹이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기 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야생에 방사한 황새에서 이런 행동이 관찰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황새는 보통 1∼4일 간격으로 알을 낳는데, 알을 많이 낳을 경우 늦둥이는 처음 깨어난 새끼보다 훨씬 발육이 늦어진다.


처음 번식에 나선 어미 황새가 새끼를 먹이로 먹던 야생오리 새끼로 착각해 먹는 이상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새끼를 먹은 수컷 A10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번식에 나선 개체이다.


황새의 새끼 포식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번 예산 사례와 매우 비슷한 조사결과가 있다. 토르토사 스페인 코르도바대 조류학자 등은 1992년 스페인 남부에서 3년 동안 황새 둥지 63곳을 조사한 결과 9곳에서 어미가 새끼를 잡아먹는 일을 목격했다. 새끼 수가 많은 둥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희생된 새끼는 대부분 가장 작고 발육이 느린 개체였다. 새끼를 먹은 황새 9마리 가운데 8마리가 수컷이었다.


피오토르 지에린스키 폴란드 과학아카데미 조류학자는 황새의 자식 살해를 분석한 2002년 ‘악타 오르니솔로지카’ 논문에서 “황새는 산란과 부화 기간이 보통 32일간으로 길고, 이후 2달 동안 새끼들의 높은 먹이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며 “먹이가 충분할 때에만 마지막에 깨어나는 약한 새끼까지 생존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알을 버리거나 새끼를 포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미가 먹이를 하나씩 물어오는 새의 경우 새끼들끼리 경쟁을 벌여 도태하는 개체가 나오지만, 황새는 어미가 다량의 먹이를 둥지에 토해 주기 때문에 새끼 사이의 경쟁 강도는 비교적 약하다”며 “장기적 생존을 위해 형제끼리 죽이지 않고 대신 어미가 그 일을 한다”고 밝혔다.


황새20200429.jpg »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의 황새 둥지로 어미가 날아오고 있다. 4월 25일 촬영한 모습이다. 김용재 제공.

자식 살해가 벌어지는 동물은 포유류부터 곤충까지 다양하며, 특히 어류에서 흔하다. 김 박사는 “대부분의 황새는 막내까지 더우면 날개로 그늘을 드리워주고 석 달 동안 사냥법을 일일이 가르쳐 주는 등 새끼를 극진하게 기른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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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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