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살기 위해 불곰은 ‘야근’을 택했다

조홍섭 2020.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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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장기 연구 결과 “공존 가능”, 전제는 곰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어야


b.jpg » 여름철 불루베리 등 각종 장과류는 불곰이 칼로리를 섭취하는 주요 먹이이다. 그러나 도시 환경은 불곰의 주행성 습성을 바꾸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여름철 불곰의 최고 식량은 라즈베리, 블루베리 등 장과류이다. 칼로리 높은 이 열매를 하루 14∼15시간씩 먹어야 겨울을 날 지방층을 비축할 수 있다.


이처럼 낮에 활동하는 대표적 포식자인 불곰이 야행성으로 바뀌고 있다. 인간이 바꾼 환경에서 사람을 피해 새로운 먹이를 찾기 위해 적응한 결과이다.


클레이턴 램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박사후연구원 등 캐나다 연구자들은 지난 41년(1979∼2019년) 동안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 남한 면적의 4배 가까운 지역에 서식하는 불곰 2669마리의 개체수 변화, 서식지 이용, 사망률, 이동 등을 연구했다.


더 위험한 도시에 몰리는 이유


연구자들은 7일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 결과 인간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불곰의 사망률이 높지만, 사람과 불곰의 공존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공존이 가능한 원인은 불곰이 주행성에서 야행성으로 습성을 바꿨고 도시와 연결된 야생지역에서 새로운 불곰이 공급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간의 영향이 자연 구석구석까지 미침으로써 이제 대형 포식자에게 남겨진 공간은 도시, 고속도로, 농촌, 조각난 자연 서식지가 뒤섞인 곳이 대부분이다. 포식자는 새로운 ‘인간 세상’에 적응하든가 지역적으로 절멸하든가의 갈림길에 섰다.


연구자들은 사람이 사는 곳이 더 위험한데도 불곰이 몰려드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의 교란이 심한 곳일수록 불곰의 사망률은 높았고, 특히 경험 없는 청소년 불곰의 사망률은 성체보다 75배나 높았다.


교란 정도가 중간인 농촌에서 불곰 30마리 가운데 한 마리만 14살까지 살았다. 야생에서는 4마리가 그 정도 산다.


불곰이 도시로 몰려드는 이유는 풍부한 음식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벌채로 먹이 식물인 초본이 늘어나고, 고속도로변에 찻길 사고로 죽은 동물 사체가 많으며, 과수, 가축, 음식물쓰레기 등이 야생에서 볼 수 없는 먹이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나이 먹을수록 야행성으로


불곰들은 달라진 서식지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주행성이던 습성을 야행성으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야생에서도 연어 소상철이나 엘크 새끼가 집중적으로 태어나는 철 등에는 불곰도 야간 사냥을 한다. 그러나 불곰은 기본적으로 잡식성이고, 에너지의 90%를 장과류 등 식물에서 얻는다. 열매, 뿌리, 순, 잎 등을 낮 동안 찾아다니고 밤엔 잔다.


b3.jpg » 야행성으로의 전환은 생존을 가른다. 그러나 3살 이상의 불곰만이 이런 적응을 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인간에 의해 교란된 지역일수록 야행성으로 바뀌는 불곰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습성은 3살 이상의 성체에서만 나타났는데,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밤에 활동하는 비율은 2∼3% 늘어났고, 비슷한 비율 만큼 생존율도 커졌다. 위성추적장치를 이용한 조사 결과 낮보다 밤에 활동하는 불곰일수록 사람과 갈등을 빚을 확률도 연간 71%까지 낮았다.


다 자란 수컷의 평균 몸무게가 217㎏에 이르는 불곰은 야생에서 천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이용하는 공간을 적극적으로 회피하지 않는다. 문제는 어미로부터 독립한 새끼는 수컷이 42㎞, 암컷은 14㎞ 떨어진 곳으로 퍼져나가면서 인간 영역으로 접어든다는 데 있다. 젊은 불곰은 새 영역에서 야행성으로 습성을 바꿔 살아남거나, 아니면 쓰레기나 정원을 뒤지다 사살되거나 로드킬로 죽는다.


연구자들은 “인간 영향 지역에서 암컷 성체는 대부분 야행성으로 습성을 바꿔 성공적으로 번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사망률은 집단 밀도를 유지하기에 너무 높다.


b4.jpg » 캐나다 재스퍼 국립공원의 불곰. 도시 지역 불곰에 새로운 개체를 공급하는 저수지 구실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야생지역에서 ‘새 피’ 공급돼야


인간 영향 지역에서 불곰의 지역적 절멸을 막아주는 건 야생지역으로부터의 ‘수혈’이다. 연구자들은 “야생에서 확산하는 청년 불곰들이 도시 근처 불곰 서식지의 높은 사망률을 상쇄해 준다”고 밝혔다. 교란 지역이라도 잘 보전된 야생지역과 연결돼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야생동물 쪽 적응만으로 포식자와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포식자를 더욱 관용하는 사회적 태도의 변화도 북아메리카 서부의 많은 교란 지역에서 불곰이 재도입되고 존속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늘어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인간 환경에 적응한 불곰의 형질은 유전될까. 연구자들은 “교란 지역의 사망률이 워낙 높아 야생지역에서의 공급이 단절되면 10∼20년 안에 지역적 절멸이 일어난다”며 “불곰의 공존형 형질이 진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대신 “어미에서 자식으로 교육을 통한 적응 행동의 문화적 전수는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u1.jpg » 불곰은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북부 전역에 서식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불곰은 스칸디나비아부터 중앙아시아, 시베리아, 북한 등 동북아를 거쳐 북아메리카에까지 고위도에 널리 분포하는 포식자이다. 최근 최상위 포식자가 생태계 건강성을 지켜주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지만 최근 개발과 함께 인간과 갈등을 자주 빚는다. 불곰은 대표적 갈등 유발 동물이다. 가축을 해치거나 음식쓰레기를 찾아 마을에 침입하다 사살되거나 자동차에 치여 죽는 개체가 속출하고 있다.


인용 저널: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DOI: 10.1073/pnas.1922097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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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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