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병산의 '비명' 듣고 도시문명을 생각하다

김성만(채색) 2012. 0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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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과 유하의 한반도 도보 여행기 ⑪ 자병산 석회석 광산

잘려나간 자병산 인공계곡의 공포, 상상했던 것보다 큰 규모에 놀라

산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건 어머니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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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걷는다. 걸어보지 않은 누군가는 '몇 걸음 걸어 보고 뭘 느끼겠는가?'라며 깔볼지 몰라도, 당신의 차보다는 훨씬 더 값지다. 그렇게 믿고 있다.

 

날씨 운이 없었다. 오전까지 온다던 비가 눈으로 바뀌어 정오까지 내리더니 출발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폭설로 바뀌었다. 평소에 흔히 볼 수 없는 눈이라지만 그리 반갑지 않았다. 추위를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둘은 아무래도 연인 사이거나 부부 사이 일 것 같다. 다행히 눈은 바닥에 쌓이지는 않고 용광로에 떨어지는 쇳조각처럼 금세 녹아버렸다.

 

산 위를 올려다 보았다. 백운산 날카로운 뼝대 꼭대기에는 흰 눈이 조금 쌓여 있었다. 어제까지 백운산 능선을 타고 가자고 졸랐던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유하는 날카로운 능선은 피하자고, 나는 위에서 보는 풍경이 멋지다고. ‘자연선택의 법칙’으로 결정될 일을 괜히 억지를 부렸던 것 같다.

 

이따금씩 하늘이 열려 파란 하늘이 보일 때마다 눈이 멈추었다. 하지만 어찌나 변덕스러운지 금세 내리고, 또 그치고,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비가 올 때 해가 동시에 나면 ‘호랑이가 장가 간다’고 하는데, 눈과 해가 동시에 나타났을 땐 누가 장가를 갈까? 하필 오늘 같은 날 장가를 가는 ‘그’가 얄미웠다. 대신에 햇빛에 빛나는 눈발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도중에 파란 하늘이 넓게 드러나 곧 그치는 줄 알았으나 결국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폭설이 쏟아졌다. 더군다나 바람은 어찌나 센지 또 다시 동상 증상이 오는 것 같았다.

 

오른 편은 돌 떨어질까 무서운 절벽 지대가 대부분이었고 왼쪽은 계속 강이었다. 마을도 드문드문 있어 쉬는 건 이미 포기했으나 잠깐 피할 만한 공간도 없었다. 마침 그 때 멀리서 시내버스 한 대가 눈발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었다. 구조를 요청하다시피 버스를 세우곤 올라탔다. “정선 가는 버스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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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없는 눈이었지만 반갑지 않았다. 눈은 항상 추위와 함께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눈이 흩날리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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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말에 눈 속을 걸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눈이 유난히 적었던 지난 겨울이었건만, 강원 산간지방은 달랐다.


정선 성당에서 하루를 보낸 뒤 다시 걸었다. 어제의 난폭한 하늘은 없었다. 따뜻한 햇살 덕에 추위는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길은 꾸준히 동강을 따라 이어졌다. 일렁이는 수면의 물결은 모서리에 다이아몬드를 꿴 듯 반짝거렸다. 뼝대가 발달한 영월의 동강보다는 풍경이 우릴 놀래켜주진 못했지만, 강이 ‘흐른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점점 작아지던 동강은 아우라지에서 송천과 골지천으로 나누어지며 더욱 작아졌다. 우린 골지천을 따라 걸었다. 작은 강 만큼이나 작은 마을들이 우리의 걸음을 붙잡았다. 그야말로 ‘산간 오지마을’임에도 생기가 넘쳤다. “우리도 이런 마을에서 살면 좋겠다. 그치?” 유하와 나는 여러 차례 같은 대화를 주고 받았지만 대답은 같았다. “여긴 너무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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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은 끊임없이 펼쳐졌다. 흐른다는 그 자체만으로 벅차게 만들었다. 자연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감동은 어쩔 수가 없다.


제장 마을을 떠난 지 삼일째 되는 날 임계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동해로 넘어가는 고개 옆엔 우리의 중요한 목적지가 있었던 것이다. 꼭 목적지를 두고 다니지는 말자는 다짐을 했지만 이곳엔 꼭 가보고 싶었다. 바로 자병산 석회석 채석광산이다.

 

녹색연합에서 발표한 자료를 찾아보니 자병산 봉우리는 872m였으나 지금은 80m 이상 깎여나가 어마어마하게 낮아진 상태라고 한다. 채광으로 훼손된 면적은 277㏊ 정도라는데 가늠이 되지 않아 축구장 크기와 비교를 해 보았다. 축구장이 0.7㏊ 정도이니 축구장이 388개 정도 들어갈 수 있는 크기였다.

 

특히나 자병산은 국내에서 제일가는 석회암 식생지역이라 다른 곳과는 다른 생태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978년 개발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백리향, 산개나리, 만병초, 금강애기나리, 한계령풀, 돌마타리 등 희귀한 식물 천지였다고. 이 개발은 다름아닌 도시인들을 위한 것이다. 얼른 가서 우리들의 잘못을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개과천선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임계면에서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을 따라 올라갔다. 이 지역에는 3월 말이 다 되었는데도 눈이 그대로다. 심지어 햇볕이 닿는 밭 중앙에도 그대로 쌓여 있다. 아무래도 고도가 많이 높은 것 같았다. 조금 뒤 나타난 팻말에 고도 600m 라고 나왔다. 역시나.

 

덤프트럭들이 많이 오갔다. 그 중에는 빵빵거리며 우릴 응원하는 분도 계셨다. 손을 흔들며 응답했다. 가만 보니 임계면과 백봉령 넘어 어딘가를 반복해서 오가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번호판 하나를 외어 확인해 보았다.

 

그랬다. 임계면에서 출발해 처음 덤프트럭 군단을 만났을 때는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낯이 나름 익고 나니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것이 아저씨들도 우릴 보고 응원의 미소를 지었다. 그들도 우리와 안면을 튼 뒤에는 더 조심해 운전하는 듯 했다.

 

심한 비탈길이 시작되기 전 주유소 편의점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출발했다. 앞서 가는 유하의 발걸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런 곳은 빨리 빠져나가고 싶어” 며칠 전까지 발 때문에 절뚝거렸던 그였다. 이젠 다 나았나 보다.

 

예상보다 이르게 백봉령 쉼터에 닿았다. 이곳은 우리가 걸어온 국도와 완만한 계곡을 따라 올라온 길이 만나는 곳이다. 작은 식당들이 ‘백봉령 10호점’ 같은 식으로 간판을 달고 있었다. 그 수가 무려 이십여개쯤 됐다. 입구에 눈이 쌓인 식당들이 반이 넘는 것으로 보아 아직까진 통행이 드문 듯 했다.

 

그 중의 한 식당을 찾았다. 바람이 너무 거세고 밥을 해먹을 만한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선 시내에서 보았던 메뉴들이 고스란히 있었다. 메밀전병, 곤드레나물밥, 수수부침 따위 등이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감자옹심이와 메밀국수, 메밀부침을 시켰다. 배부르게 먹은 뒤 물통 네 개를 다 채웠다. 백봉령에서 잠을 한번 잘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길 오른쪽 아래로는 폭 1m 내외의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이 물은 아래로 흘러 골지천으로 합류하고, 골지천은 동강으로, 동강은 한강이 되어 흐른다. 다시 말해 그곳은 한강의 최고 상류 중 한 곳이었던 것이다. 이 작은 하천에도 관심을 가지고 싶었지만 더 큰 관심사가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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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골지천의 최상류이자 한강의 상류이기도 하다. 자병산에 신경이 쏠려있는 사이 이곳은 그저 지나가는 풍경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서울에서부터 이 강을 따라 왔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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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허리 백봉령. 저 숲 너머에는 축구장 400여개 규모의 석회석 광산이 있다. 그 광산은 백두대간 허리를 정확히 가른다. 일제는 한국인의 정기를 끊겠다며 대간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 그런데 우린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그곳을 깎아내고 있다.


국도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라파즈 한라 시멘트’ 채석광산 입구가 나왔다. 들머리에 차량이 몇 대 주차되어 있어 혹시나 들어가지 못할까 싶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위험이 상존하오니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휘젓고 다닐 생각이 없었고, 보통사람들이 통행하는 백두대간 마루금(능선) 길이 이 안에 있었으므로 무시했다. 차단기 아래로 몸을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몇년 전부터 이곳에 자병산이 있고, 그 산이 무지막지하게 파헤쳐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도 와보지는 못했다. 동료들과 갈 기회가 여러번 있었지만 매번 다른 일 때문에 합류하지 못했다. 사진으로만 보는데도 자병산은 어마어마 그 자체였다. 파괴의 현장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그곳이 나에게 큰 가르침을 줄 것이었다.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뭔가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른편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눈에 띠었다. 도로를 만들며 산을 반토막 내놓는 정도의 높이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빠른 걸음이 아니었음에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더 빨라졌다. 광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닿았다. 빨랐던 심장은 부정맥 증상을 겪으며 속도가 느려졌다. 가슴이 찌릿찌릿했다.

 

방금 보았던 ‘절벽’의 수십배의 깊이로 연달아 ‘절벽’이 있었다. 계단식이었는데 마치 피라미드를 거꾸로 쳐박은 듯한 형상이었다. 크기는 피라미드보다 훨씬 거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계단 사이 사이에서 몇 대의 굴삭기가 산을 깎아내면 덤프트럭이 아래까지 실어 날랐다. 그 거대한 기계들이 이 광산 속에서는 작은 개미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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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병산 석회석 광산은 축구장이 388개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규모다. 자병산의 해발고도는 80m 이상 낮아졌다. 백두대간의 허리는 난도질 당했다. 이 파괴는 누구의 탓도 아닌 우리의 탓이다. 도시의 무분별한 개발 탓이다. 편리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죄다.


너무 놀라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훠얼씬 거대했다. 오른쪽의 절벽부터 왼쪽 절벽 사이의 ‘인공 계곡’은 지금껏 보아온 자연계곡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를 느끼게 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는 이보다 더 깊고 날카로운 곳도 지나친 적이 있다. 그 때는 자연의 웅장함을 느꼈지 공포를 느끼진 않았었다.

 

자병산 정상쪽으로 가서 바라보기로 했다. 처음 보았던 오른쪽 절벽 맨 위가 그곳이다. 이미 자병산 정상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곳에서 바라본다면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먼저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곳 적당한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쌓인 눈을 잘못 밟으면 허벅지까지 푹푹 빠져버리는 곳이었다. 그 일대가 다 비슷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발자국과 표시기를 따라 정상으로 향했다. 오르면 오를수록 바람이 세져 무서웠고, 가파른 길에서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유하는 포기하고 텐트로 돌아갔다. 홀로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절벽 가까이로 다가갔다. 하지만 아래에서 봤던 것과 다르게 그곳에는 더 많은 눈이 쌓여있었다. 허벅지까지, 심지어 허리까지 빠지는 곳이 있었다. 걸음을 떼기 전 ‘원투 원투’ 스텝을 밟듯 앞쪽을 꾹꾹 밟아주고 걸었다. 그래도 빠지는 곳에서는 푹~ 꺼져버렸다.

 

그곳에서 바라본 광산은, 방금 전에 본 것보다 훨씬 더 먼 곳까지 파헤쳐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산맥 마루금의 한 편을 사정없이 깎아내린 형상이었다. 사람들과 이 모습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에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담았다.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으로 옮기려 다시 걸었다. 그런데 이내 허리까지 푹푹 빠져버렸다. ‘혹시 절벽에 너무 가깝게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고 그 때부터는 들어간 길을 되짚어 허겁지겁 나와버렸다. 얼굴 표정만으로는 이미 그곳이 무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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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운이 흐르던 백두대간은 송두리째 깎여 나갔다. 길게 뻗은 산맥은 식물이 이동하고, 동물도 이동하는 생명의 통로다. 강을 만들어 먼 곳까지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그래서 산맥에 강의 이름을 붙인다. 한남정맥(한강의 남쪽 산맥), 낙동정맥, 금북정맥(금강의 북쪽 산맥) 등. 백두대간은 그 모든 정맥의 뼈대다. 일제가 그 많은 쇠말뚝을 박은 이유고,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그토록 지키려고 했던 이유다.


텐트로 돌아와 유하와 함께 작은 천에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하나는 ‘도시가 살면, 자연이 죽는다’이고, 하나는 ‘WANTED CITY’다. 다음날 자병산을 배경으로 이걸 들고 찍을 생각이었다. 나름 생태활동가로서 퍼포먼스를 하고자 했다.

 

자병산은 석회석을 캐는 광산이다. 그것으로 시멘트를 만들고 시멘트는 도시의 건축물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시멘트가 없는 건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다시 말해 잘려나간 자병산은 도시가 된 것이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를 생각해 볼 때 이런 자병산만으로는 어림없었을 것이다. 자병산이 국내 최대 석회석 광산이지만 석회석 산악지대 곳곳에서 이런 석회석을 캐고 있다.

 

산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우는 곳이다. 또한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명들의 집이기도 하다. 산을 다니다 보면 아름다운 새소리가 끊이질 않고, 고라니나 노루, 살쾡이나 너구리 똥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쌓인 나뭇잎을 뒤져 보면 작은 벌레들의 세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우리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산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농사를 짓고 사는데 뭔 관계냐 하고 단순히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리는 비를 붙잡고 끊임없이 강을 만들어 주는 것이 산이요 그곳의 숲이다. 초목들이 바위를 쪼개고 부수어 그 위에 낙엽을 흩뿌린다. 온갖 짐승과 벌레들은 그것을 기름지게 만들어 강에 흘려보낸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옥토’가 되어 풍요를 가져다 준다. 좀비가 아니고서야 먹지 않고 살 수 있나? 게다가 좀비라도 음식을 먹고 자란 사람을 먹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해 주는 산을 송두리째 뽑아 버리고 있다.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부모를 산채로 잡아먹는 생명이 있을까 싶지만, 우리 인간들이 딱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어떤 ‘쌍욕’을 듣더라도 자신만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까지 ‘그런’ 생활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파괴가 될 것이다. 제2, 제3의 자병산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나 과도한 소비를 조장하고, 편리함만을 강조하는 도시생활은 말할 것도 없다.

 

도시민들에게 이런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우리의 편리가 곧 자연의 파괴임을. 그래서 ‘도시가 살면, 자연이 죽는다’, ‘WANTED CITY’로 적었다. ‘도시’가 ‘범인’임을 누가 부정하랴. 우리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자각을 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작은 변화를 실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연과 우리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무엇을 바꾸어야 나은 것인지를. 조금씩 바꿔나간다면 ‘어머니’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단, ‘어머니’를 또 수술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 그녀는 놀라운 회복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새벽같이 일어났다. 주변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았다. 시계를 켜 보니 4시가 좀 넘었다. 유하는 잠을 거의 못잤다고 했다. “밤에 바람소리가 너무 무서웠어.” 벼랑이 바로 옆이었던 탓인지 숲을 훑고 가는 바람소리는 “비명소리 같았다.”고. 자병산의 아픈 기운이 그녀를 괴롭힌 듯 했다. 밖에서 자는 게 익숙했던 나는, 눈 때문에 허리가 굽어진 것도 모른 채, 잘 잤다.

 

해가 뜨는대로 퍼포먼스를 하고 하산할 계획이었다. 사진이나 찍는 작은 퍼포먼스지만 그곳 사람들과 충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밥을 먹는 중, 그러니까 새벽 5시30분께 중장비 소리가 메아리를 타고 들려왔다. '삐~ 삐~ 삐~ 삐~', 4대강 공사현장에서 익히 들었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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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우리가 죄인임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필요한 만큼만 썼다면 이런 파괴는 없었음이 분명하다. 소비의 블랙홀인 도시는 이곳에선 다름아닌 '죄인'이다. 지금의 도시를 다른 형태로 바꾸지 않는 한 이 파괴는 멈출 수 없다.


이렇게 된 거 일단 부닥쳐 보자는 심정으로 밥을 빨리 먹고는 텐트를 철수했다. 그 때의 시각은 6시 20분께. 하늘의 구름은 조금씩 붉어지고 있었다. 큰 가방을 메고 자병산이 잘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금세 에스유브이 차량이 다가와 멈춰서고선 “어이~!”하고 불렀다. 뚜벅뚜벅 걸어가 아저씨께 말했다. “등산하는 사람들인데요. 여기 잠깐만 보고 갈 께요” 라고 말했는데 대뜸 “어제 임계면에서 올라오던 사람들 아녜요? 여기 위험하니까 안돼요. 높은 사람들 보면 혼나요~” 라며 김을 뺐다.

 

유하는 아저씨와 충돌을 피하려 가는 척 했고, 나는 유하의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조금만 보고 갈 께요. 새벽이라 사람들도 별로 없는 걸요”라며 끝까지 설득했다. 곧 아저씨는 우리의 안타까운 눈빛을 이해하셨는지 창을 내리며 가던 길을 갔다.

 

유하가 먼저 ‘도시가 살면, 자연이 죽는다’라고 적힌 천을 들었다. 바람이 너무 강해 글씨를 제대로 보이게 만들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준비가 되자마자 얼른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가 ‘WANTED CITY’라고 적힌 천을 들었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몸에 바짝 붙였다. 소리라도 함께 외치고 싶었지만 우리끼리 외친들 무슨 소용이냐 싶어 관두었다.

 

돌아나와 다시 국도에 올랐다. 마음이 착찹했다. 우리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자연과 분리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일까?! 자연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할 수는 없을까?!

 

화석연료나 핵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고속화, 대형화 시대는 언젠가 끝날 것이 분명하다. 꼭 그 끝을 보아야만 그만둘 것인가? 이미 지금도 생태계는 처참하리 만큼 파괴된 상태다. 이제는 파괴를 언제 그만두어도 늦은 것이다.

 

자병산은 너무나 부족한 나를 돌아보게 했다. 지금까지도 ‘생태적 삶’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더욱 더 ‘그쪽’으로 가도록 만들어 주었다. 석회석 채광을 당장 중단하지는 못할 것이다. 바로 석유를 끊고, 전기를 끊으면 살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것들 없이도 수백년 수천년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우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날의 교훈을 발판삼아 사람들에게 그것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보여줄 것이다. 이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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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까지 개발허가가 나 있는 자병산 석회석 광산. 지금의 이 모습에서 얼마나 더 헐벗어야 할까. 도시인들의 욕심은 언제쯤 멈출 것인가.

 

글·사진 김성만(채색)/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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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4대강 현장팀에서 활동했었다. 파괴를 막는 방법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2012년 3월부터 '생태적인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중국 상하이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자전거로 여행하고 <달려라 자전거>를 냈고, 녹색연합에서 진행한 <서울성곽 걷기여행>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메일 : sungxxx@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likeb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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