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망둑어의 기발한 ‘정자 전쟁’

조홍섭 202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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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 흉내 작은 수컷 ‘끼어들기 방정’, 꼬리 부채질로 경쟁자 정자 제거로 대응

gob1.jpg » 연안에 사는 작은 바닷물고기인 무늬망둑의 독특한 정자 경쟁 행동이 밝혀졌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포유류나 곤충과 달리 물고기는 암컷이 산란한 뒤 수컷이 그 위에 방정하는 체외수정을 하는데, 짝짓기 과정이 상대적으로 허술해 얌체 수컷이 끼어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북미산 블루길이 그런 예로서 수컷이 둥지를 짓고 암컷을 불러들여 수정하는 순간 암컷처럼 생긴 작은 수컷이 잽싸게 끼어들어 사정하고 달아난다.

블루길과 비슷한 번식전략을 펼치는 바닷고기인 무늬망둑 수컷은 이런 새치기 수컷의 정자를 제거하는 행동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타케가키 타케시 나가사키대 생물학자 등 일본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B)’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체외수정을 하는 동물 가운데는 처음으로 무늬망둑에서 경쟁자 수컷의 정자를 제거하는 행동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gob2.jpg » 무늬망둑 수컷은 돌 틈에 둥지를 틀고 암컷을 유인해 산란하도록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무늬망둑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태평양과 인도양 연안의 바위와 자갈이 많은 해안에 분포하는 망둑어의 일종이다. 번식기 때 큰 수컷은 바위틈에 둥지를 만든 뒤 접근하는 암컷에 한껏 과시 행동을 해 둥지 속으로 유인한다.

수컷과 둥지의 상태를 꼼꼼히 점검한 암컷이 마음에 들면(절반 가까이는 도로 나간다) 둥지 벽에 알을 붙인다. 둥지 벽에는 이미 수컷이 점액과 정액을 발라놓은 상태이며 추가로 방정하기도 한다.

수컷은 이런 식으로 여러 암컷을 초대해 알을 낳게 하고 수정시켜 새끼가 스스로 헤엄칠 만큼 자랄 때까지 돌본다. 암컷은 알을 낳은 뒤 양육을 수컷에 맡긴 채 떠난다.

그러나 덩치가 작은 수컷들은 둥지를 확보한 큰 수컷의 허점을 노린다. 수컷이 암컷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과시 행동을 하는 동안 둥지 들머리로 모여든다. 이들은 덩치가 작아 암컷과 구별이 되지 않지만 큰 수컷보다 고환이 더 크게 발달했다.

이들은 암컷이 둥지 속에서 산란하는 동안 침입해 점액이 섞인 정자를 방정한다. 놀란 수컷이 쫓아내기 위해 둥지를 비우는 순간 기회를 노리던 다른 얌체 수컷들이 둥지로 들이닥친다.

gob3.jpg » 무늬망둑의 번식 행동. 둥지를 마련한 수컷은 암컷의 접근을 기다린다(A). 암컷에게 과시 행동을 한다. 기회를 노리는 새치기 수컷(SK)들이 둥지로 접근한다(B). 암컷이 둥지에서 알을 낳는 동안 새치기 수컷이 잽싸게 끼어든다(C). 둥지 안에서 과시 행동과 산란(D, E). 타루 마사노리 외 (2002) 동물행동학저널 제공.

그런데 연구자들은 이런 끼어들기를 당한 수컷이 독특한 행동을 하는 것을 관찰했다. 굴 들머리에서 부채질하듯 꼬리를 흔든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행동은 알이 부화할 때까지 돌보면서 꼬리로 물살을 일으키는 것과 시기와 강도에서 다르다”며 “경쟁 수컷 정자로부터 화학 신호를 감지하면 이런 행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꼬리를 이용한 부채질은 효과가 있어 경쟁 수컷의 수정 성공률이 3분의 1로 떨어졌다. 둥지 벽의 정자 농도는 87%나 떨어졌다. 

끼어든 수컷뿐 아니라 자신의 정자도 상당 부분 유실되는 셈이다. 잃어버린 정자를 보충하기 위해 둥지 청소를 마친 수컷은 방정을 거듭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gob4.jpg » 무늬망둑. 국립수산과학원 제공.

경쟁자의 정자를 제거하는 행동은 체내수정을 하는 동물에서 종종 발견된다. 물잠자리는 교미할 때 독특한 구조의 생식기로 암컷의 정자보관소에 있던 다른 수컷의 정자를 먼저 긁어 버린다. 일부 새, 오징어, 가재 등에서도 이런 행동이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무늬망둑에서 이런 행동이 가능한 이유로 “암컷이 둥지에서 3∼4시간 동안 간헐적으로 오래 산란하고 수컷 정자도 사정 뒤 3시간이나 활성을 유지해 수정에 앞서 경쟁자의 정자를 제거할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DOI: 10.6084/m9.figshare.c.517619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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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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