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7도에 애벌레 꼬물꼬물, 붉은점모시나비 생활사 밝혀져

조홍섭 2012. 06. 06
조회수 55144 추천수 0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생태와 생활사 밝혀 본격 증식 길 터

1월에 알에서 깨 5~6월 나비로…7일 삼척 서식지에 20쌍 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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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의 먹이식물인 기린초에서 꿀을 빠는 붉은점모시나비.

 

지난 4일 오전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에 위치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를 찾았다. 멸종위기종인 붉은점모시나비, 애기뿔소똥구리, 물장군을 서식지 밖에서 책임지고 보전하고 증식하는 기관이다.
 

이강운 소장이 부석한 얼굴로 기자를 맞았다. “요즘 붉은점모시나비가 한창 산란을 해서 새벽 3~5시에 알 떼는 작업을 해서요.”
 

이 나비가 한밤중에 알을 낳는 건 아니지만 낳자마자 건드리면 터져 버리고 너무 오래 방치하면 개미나 풀잠자리, 풀노린재가 물어간다. 새벽에 기온이 떨어져야 나비도 움직임이 둔해진다. 그와 연구원들은 사육장의 낙엽이나 철망에 하나씩 붙어있는 좁쌀만 한 작은 알을 하나씩 수집하느라 밤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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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초 위에서 짝짓기 중인 붉은점모시나비 한 쌍.

 

알 하나까지 이렇게 정성껏 다루는 곤충이 또 있을까. 붉은점모시나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나비의 하나이자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하얀 모시적삼에 붉은 무늬를 수놓은 듯한 고운 모습에 미끄러지듯 기품 있게 활공하는 멋진 나비이다.
 

그 바람에 손을 많이 탔다. 한때 강원도 강촌 등선폭포 근처와 금강유원지 일대 등 전국 30여 곳에서 볼 수 있던 이 나비는 일본으로의 반출을 포함한 지나친 채집과 서식지 파괴로 이제 자연 서식지는 강원도 삼척과 경북 의성 등 두 곳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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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장 안에서 엉겅퀴 꽃의 꿀을 빠는 붉은점모시나비. 삼척에 방사될 개체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연구소 밖에는 사육 상자들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한 사육 상자에선 닷새 전 우화 한 붉은점모시나비 암컷 한 마리가 지느러미엉겅퀴의 꿀을 빠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육장엔 6월1일 짝짓기를 했다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배 끝에 뾰족한 돌기 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중세 때 정조대처럼 짝짓기를 마친 수컷이 분비한 물질이 굳어 형성된 일종의 마개다. 이 소장은 “개체수가 적어 암수가 만나기 힘들기 때문에 자신의 유전자를 확실히 남기려는 고육책”이라며 “모시나비와 애호랑나비에서도 이런 수태낭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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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를 마친 붉은점모시나비 암컷의 배 끝에는 수태낭이 달려있다(사진 오른쪽). 왼쪽은 수컷.

 

붉은점모시나비는 세계적으로 동북아에만 서식하는 나비이다.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아무르 지방에도 분포하지만 그곳에도 수가 많지 않다. 2000년대 들어 이 나비가 전국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멸종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다. 다행히 이후 삼척과 도로 확장공사를 하던 의성에서 새로운 서식지가 발견됐다. 또다시 서식지가 사라지기 전에 이 나비를 인공증식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환경부로부터 서식지 외 보전기관으로 지정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는 2006년 포획 허가를 얻어 삼척 서식지에서 붉은점모시나비 2쌍을 채집해 복원에 나섰다. 이후 6년간의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이 희귀한 나비의 생활사와 생태가 하나씩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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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옆 위에 하나씩 낳은 붉은점모시나비의 알. 사진=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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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알에서 깨어나는 1령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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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령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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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령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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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계인 5령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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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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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1년에 단 한 번 번식한다.

 

“길러 보니 1월 한겨울에 알에서 애벌레가 깨어나더라고요.” 봄철 먹이식물이 싹을 틀 때 애벌레가 나온다는 당시의 통설을 뒤엎는 관찰이었다. ‘이 추운 겨울에 나비 애벌레가 있다니’ 하며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이 애벌레는 영하 27도의 혹한에도 살아남았다. 몸속의 수분이 얼음결정이 되지 않도록 막는 항 동결 물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비 애벌레에도 이런 물질이 들어있지만 버틸 수 있는 온도가 배추좀나방 -12도, 파방나방 -7도 등 붉은점모시나비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 소장은 “붉은점모시나비야말로 진정한 한지성 나비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한겨울 알에서 깬 첫 애벌레(1령)는 양지쪽 기린초에서 미세하게 나오는 싹을 먹고 느리게 자란다. 무려 80일 뒤 허물을 벗고 태어난 2령 애벌레에는 비로소 붉은 점이 생긴다. 5월 말 5령 애벌레는 어설픈 고치를 만들어 그 속에서 번데기로 바뀌고 이어 6월까지 나비가 탄생한다.
 

따라서 이 나비는 1년에 단 한 번 번식한다. 호랑나비가 1년에 3번, 배추흰나비는 4~5번 번식하는 것에 비하면 매우 더딘 편이다. 물론 진딧물은 30번, 모기는 15번 번식해 나비에 견줄 수 없는 폭발적인 번식력을 자랑한다.
 

알의 개수도 70~90개이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부화에 성공한다. 600여 개의 알을 낳는 꼬리명주나비 등 다른 나비에 비해 매우 적은 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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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삼척의 붉은점모시나비 서식지. 인공증식이 이뤄지는 곳이다.

 

붉은점모시나비가 멸종위기에 몰린 까닭은 이처럼 워낙 번식력이 떨어지는데다 인위적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데다 드물고, 느릿느릿 나는 이 나비는 채집가에게 안성맞춤의 표적이 됐다. 나비 애호가가 많은 일본에서 나지 않는다는 점도 남획을 도왔다. 강촌 서식지의 붕괴는 순전히 채집압력이 지역적 절종을 불러온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이 나비의 서식지는 주로 산지에 암반이 드러난 곳, 도로변 절개지, 강변, 산 정상 등 나무가 우거지지 않은 풀밭이다. 햇볕이 잘 들고 건조하며 바람이 센 곳에서 애벌레의 먹이식물인 기린초류가 잘 자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서식지에 길을 뚫거나 경작지를 만들거나 아니면 숲이 너무 우거져도 붉은점모시나비는 살아갈 수 없다.
 

게다가 기후변화는 추운 곳에 적응한 이 나비에게 치명적이다. 이강운 소장은 “붉은점모시나비는 추운 것을 잘 견디는 것보다 더운 것을 더 못 견딘다”며 이들이 기후변화 특히 취약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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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증식용 사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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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인 3650종의 곤충을 전시중인 연구소 안 박물관에서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이강운 소장이 표본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원주지방환경청은 오는 8일 강원도 삼척시 서식지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가 증식한 붉은점모시나비 20쌍을 풀어놓는다. 지난해 이 나비 10쌍을 방사한 같은 곳이다. 이곳에선 인공증식과 주민참여를 통한 멸종위기종의 보전이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 소장은 “지난해까지는 증식에 급급했지만 이제 생활사와 생태를 모두 밝히고 300개 이상 받은 알을 부화시켜 본격적인 증식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횡성/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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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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