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페인트 통이 품어낸 생명

김성호 2012. 06. 08
조회수 14941 추천수 3

박새 10남매 태어나 오롯히 둥지 떠나 

"녹슨 페인트 통아, 고맙다."

 

 

지난 4년 동안 겨울 끝자락에서 이른 여름까지는 강원도의 한 숲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지리산 자락에서는 까막딱따구리를 만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2년은 아예 집을 떠나 그 숲에서 살았고, 최근 2년은 매주 오가는 형편입니다. 동료 교수들의 배려로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그 숲에 머물 수 있으니 한 주의 반 이상을 고스란히 까막딱따구리와 동행하는 셈입니다. 숲 곁에는 노부부가 사는 집 한 채가 있습니다. 두 분에게 숲의 생명은 가족이며, 때로 벗이기도 합니다.

 

숲 속에도 아주 작은 집이 하나 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내가 딱따구리를 관찰할 수 있는 움막을 지어주신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주신 것이고 재료도 많이 들었기에 비용을 어림잡아 드렸더니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나중에 움막을 그대로 떠가야 하며 그 때 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밥을 지어 주십니다. 숟가락 하나만 더 놔달라고 아무리 부탁하여도 언제나 독상을 봐 주시며 밥은 언제나 새로 지어 주십니다. 그리고 날마다 반찬 하나가 어김없이 바뀝니다. 두 분은 나 역시 그 숲 생명의 하나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숲에는 까막딱따구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딱따구리가 깃들어 있으며, 다른 숲새들도 다양합니다. 4월 초, 집 앞의 숲 언저리에 놓여있는 녹슨 페인트 통으로 박새가 들락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이끼를 물어 나르는 것이 페인트 통을 둥지로 삼을 요량인 것 같았습니다.

 

잠시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한두 번 슬쩍 지나치며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에도 박새 한 쌍은 여전히 이끼를 나르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조처는 취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지나는 사람들이라면 그 곳이 차마 박새가 둥지를 튼 곳인지 알아차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발로 툭 차버리기 십상이고, 쓰레기 처리장으로 보내질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그늘이 드리워질 작은 나무 옆으로 통을 옮기고, 통 위에는 돌을 쌓아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잊고 지내다 두 달 남짓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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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있는 낡은 페인트 통 안에서 박새가 어린 새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박새 한 쌍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일분도 먼 듯 먹이를 분주히 나르며, 배설물도 무척 자주 받아내서 버리고 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따져보니 때도 찼습니다. 아무래도 경사가 있을 날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조용히 모셔 적당한 거리를 두고 페인트 통 속의 경사에 동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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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새들이 먹이를 나르느라 분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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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새들이 꽤 많은 모양입니다. 배설물을 무척 자주 받아내 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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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가져온 어미 새 너머로 어린 새의 노란 부리가 슬쩍 드러납니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고 와 통 앞에 잠시 멈췄을 때 둥지 안으로 어린 새의 노란 부리가 슬쩍 드러납니다. 어미 새는 먹이를 줄듯 말듯하다 그냥 날아가 버립니다. 둥지 떠나기를 재촉하는 어미 새의 행동입니다. 그러자 잠시 뒤 어린 새 하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밉니다. 마침내 통 입구에 양발을 턱하니 올려놓고는 거침없이 날개를 펴고 세상과 만납니다.

 

처음해보는 날갯짓이 서툴지도 않게 나의 눈이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로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정말 건강하게 키웠습니다. 세 사람은 소리 없이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본격적인 둥지 떠나기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8마리의 동생들이 꼬리를 잇듯 통을 나섭니다. 8마리의 동생들이 둥지를 떠나는데 걸린 시간은 100초도 다 걸리지 않았으니 어린 박새 하나가 둥지를 떠나는 데에는 12초 정도가 걸린 셈입니다. 8마리 중 나의 눈이 닿을 곳에 아주 잠시라도 머물러 준 것은 여섯째와 여덟째였고 나머지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게 휙휙 날아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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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어린 새 첫째가 둥지를 박차고 날아 세상과 만납니다. 이어 8마리의 동생들이 꼬리를 잇듯 둥지를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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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째와 여덟째만 나의 눈이 닿을 곳에 잠시 머물었으며, 나머지는 눈으로도 좇아가기 어려울 만큼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숲새는 하루에 하나의 알을 낳습니다. 알을 열 개 낳았다면 산란은 열흘에 거쳐 일어나는 것이고, 첫 번째 알과 마지막으로 산란한 알은 9일의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어린 새들이 거의 동시에 비슷하게 성장한 모습으로 둥지를 떠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방법이 하나 있으며 새들은 그렇게 합니다. 마지막 알을 낳은 뒤 품기 시작하며, 골고루 품어 거의 동시에 부화가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이도 부화한 어린 새마다 균등하게 공급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어미 새들이 아무리 애써도 어린 새들의 성장 정도가 완전히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함께 나옵니다. 어린 생명들도 어미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에게 때가 차기를 애써 가만히 기다려준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어린 다람쥐들이 세상을 만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완벽한 기다림의 예술입니다.

 

페인트 통에는 경사 끝의 침묵만이 흐릅니다. 페인트 통은 이제 비었고 어린 새는 모두 아홉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미 새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진 어린 새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다 어미 새들이 다시 통 주변을 맴돌기 시작합니다. 어린 새가 아직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또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둥지를 떠나고 어미 새들이 통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었던 것을 보면 어미 새들은 어린 새의 숫자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릇 모양으로 위가 열린 둥지가 아니라 안을 다 살펴볼 수 없는 나무 구멍 등을 둥지로 이용할 경우 어미 새는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난 뒤에도 둥지 안으로 들어가 혹시 남은 새는 없는지 꼭 살펴봅니다.

 

막내는 세상과 만나는 것이 아직 두려운 모양입니다. 고개만 내밀뿐 밖으로 나오지를 못합니다. 막내의 경우 둥지에 혼자 남아 머무는 예는 흔합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두 시간 정도가 지날 때였습니다. 어미 새는 막내 역시 둥지를 떠날 때가 찼다는 판단을 한 듯합니다.

 

다시 확실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먹이를 한꺼번에 많이 물고와 둥지 바로 위에서 먹이를 보이기만 하고 주지를 않습니다. 그러다 이웃한 나무로 옮기자 어린 새는 바로 둥지를 나섭니다. 고맙게도 막내가 마지막 인사를 해주고 떠납니다. 곧바로 멀리 날아가지 않고 페인트 통을 눌러놓은 돌 위에 아주 잠시 앉아있다 날아갑니다. 막내를 보내며 나는 손을 흔들었는데 그것이 건강하게 잘 크기를 바란다는 뜻임을 알아차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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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시간 동안 혼자 남아있는 막내에게 어미 새가 먹이를 가져와 둥지 떠나기를 재촉합니다. 막내에게도 때는 찼습니다. 드디어 막내마저 둥지를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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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가 둥지를 나서 페인트 통을 눌러놓았던 돌 위에 잠시 앉아 인사를 하고 떠납니다.

 

결국 녹슨 페인트 통은 박새 10남매를 잘도 품어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그 무엇이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나 봅니다. 하물며 생명이 있는 것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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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미 박새와 더불어 박새 10남매를 함께 키워낸 녹슨 페인트 통의 모습입니다.

 

글·사진·동영상/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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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이메일 : genexp@cho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phil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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