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뱀, 개구리… 맹금류 뺨치는 호반새의 식성

김성호 2012. 07. 16
조회수 20423 추천수 1

'고기잡이 도사' 여름철새들…호반새, 청호반새, 물총새

고단백 먹이 먹은 호반새 새끼, 다른 새보다 열흘 일찍 자라

 

'빈 손'은 없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여름철새 중 영어 명칭으로 ‘어부’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그냥 어부가 아니라 ‘어부 왕(kingfisher)'입니다.

 

호반새(불그레한 어부 왕, ruddy kingfisher), 청호반새(머리가 검은 어부 왕, black-capped kingfisher), 물총새(보통 어부 왕, common kingfisher)가 그 주인공이며, 모두 물총새과에 속합니다.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친구들은 그야말로 물고기를 잡는 선수들입니다. 물 밖에서 목표물을 노려보고 있다가 일단 물속으로 뛰어들면 빈 부리로 물을 나서는 법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셋 중에서 왕 중 왕을 가리라면 물총새가 단연 으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물고기만 잘 잡는 것은 아닙니다. 물과 인연이 깊은 대부분의 생명체들을 먹잇감으로 삼으며, 육상곤충도 잘 잡습니다.

 

kingfisher01.JPG » 호반새 부부

 

kingfisher02.JPG » 청호반새

 

kingfisher03.JPG » 물총새

 

대개 5월 초순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이 친구들은 우선 여름철새답게 색이 화려합니다. 그 중에서도 호반새의 붉은 색에 가까운 주황색은 압권입니다. 또한 이들은 같은 과에 속하기 때문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길고 날카로운 부리는 그 무엇이라도 잘 잡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먹잇감을 잡으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나뭇가지나 돌에 호되게 메쳐 기절시킨 뒤 먹는 습성이 있습니다.

 

kingfisher04.JPG

kingfisher05.JPG

kingfisher06.JPG

kingfisher07.JPG

kingfisher08.JPG

kingfisher09.JPG » 호반새가 쥐를 잡아 나뭇가지에 메쳐 기절시키는 모습입니다.

 

번식 방법에도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물총새와 청호반새는 그 누구도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깎아지른 수직 흙벽에 구멍을 뚫고 수평 방향의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 번식을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kingfisher10.JPG » 직벽에 지은 청호반새의 둥지입니다. 천적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호반새는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릅니다. 호반새 역시 수평 방향의 공간을 만들기는 하지만 수직 흙벽이 아니라 썩은 아름드리 나무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땅한 나무를 만나지 못하면 딱따구리의 묵은 둥지를 사용하여 번식 일정을 치러내기도 합니다. 오늘은 호반새 중심으로 이들의 번식 일정을 소개하려 합니다.

 

호반새가 숲에 들어온 것은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꾜르르르, 꾜르르르, 꾜르르르” 소리를 연속으로 내는데 옥쟁반에 구슬 구르듯 무척 아름답습니다. 호반새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둥지 물색입니다. 둥지를 짓기에 마땅한 썩은 아름드리 나무를 선정하면 수평으로 내부를 긁어내며 공간을 넓힙니다. 둥지를 짓는 일은 암수가 서로 교대로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숲에 호반새가 둥지를 틀 만한 아름드리 나무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첫 시도는 굵은 나무를 대상으로 수평형 둥지를 마련하려 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수직형 딱따구리의 묵은 둥지를 그대로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kingfisher11.JPG kingfisher12.JPG kingfisher13.JPG kingfisher15.JPG kingfisher16.JPG » 호반새는 암수가 교대로 둥지를 짓습니다.

 

암컷 마음 사려면 쥐나 뱀 정도는 선물해야

 

짝짓기는 둥지를 짓는 시기에 이루어집니다. 짝짓기는 암컷의 허락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으며, 암컷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수컷의 선물입니다.

 

수컷은 열심히 암컷에서 선물공세를 펼칩니다. 선물은 바로 먹이이며, 어떠한 먹이를 잡아오느냐를 통해 암컷은 수컷의 능력을 가늠합니다. 곤충 같은 하찮은 먹이로는 암컷의 마음이 열리지 않으며 제 짝으로 맞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개구리, 나아가 뱀이나 쥐 수준의 묵직한 먹이 정도는 되어야 암컷이 짝짓기에 응하며 짝으로 맞이합니다. 호반새 암수는 외형이 동일하지만 수컷의 체색이 조금 진합니다.

 

kingfisher17.JPG » 호반새의 짝짓기. 괜찮은 먹이로 암컷을 움직인 수컷만 짝을 짓는다.

둥지가 완성되면 알을 낳아 품습니다. 알을 품는 기간은 2주이며, 암수가 하루 4번의 교대를 하는데 특이하게도 둥지의 밤은 암컷이 지킵니다. 이 시기는 아무 은밀하게 진행됩니다.

 

하루 4번의 교대 중 첫 번째는 아직 날이 밝기 전의 새벽, 네 번째는 약간 어두워진 밤에 이루어지며, 두 번은 낮에 이루어집니다. 교대를 하러 온 쪽이 둥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면 둥지 안에 있던 쪽이 주위를 철저히 살핀 뒤 둥지를 나섭니다. 그리고 누군가 둥지 근처에서 얼씬 거린다면 교대는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엿봅니다. 무척 조심성이 많은 새입니다.

 

kingfisher18.JPG kingfisher19.JPG » 포란 중 교대는 하루 4번 은밀히 이루어지며, 밤에는 암컷이 둥지를 지킵니다.

맹금류 비슷한 먹이

 

2주 동안의 은밀한 알 품기가 끝나면 부화가 일어나고 먹이를 나르기 시작하는데, 이 때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 펼쳐집니다. 갓 부화한 어린 새들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먹이를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맹금류가 새끼를 키우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부화 초기, 먹이는 수컷이 나르며 암컷은 둥지 안에 있다가 수컷이 나르는 먹이를 받아 어린 새에게 찢어서 줍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암컷도 둥지를 나서 수컷과 함께 먹이를 나르는 일정에 동참합니다. 암컷이 둥지를 나선 뒤에는 어린 새 각자가 먹이를 받아먹으므로 먹이의 크기는 눈에 띄게 작아지며, 이후로 날마다 조금씩 커집니다.

 

호반새가 어린 새를 위해 마련하는 식단은 번식지의 환경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화려한 보양식입니다. 따라서 호반새 어린 새의 성장속도 또한 무척 빠른 편입니다. 대체로 숲새들이 새끼를 기르는 기간이 한 달 남짓일 때, 호반새는 적어도 10일 정도는 이보다 빠릅니다.

 

다음은 호반새가 어린 새를 위해 마련하는 식단입니다. 무엇을 먹고 크느냐에 따라 그 생명체의 성향이 정해집니다. 호반새는 맹금류가 아니면서도 맹금류처럼 무척 사나운 새입니다. 먹이가 벌써 말해줍니다.

 

호반새가 어린 새에게 무엇을 먹여 기르는지 다음 사진으로 알아봅니다.

 

개구리류

 

kingfisher20.JPG kingfisher21.JPG kingfisher22.JPG kingfisher23.JPG kingfisher24.JPG kingfisher25.JPG

 

가재

 

kingfisher26.JPG kingfisher27.JPG kingfisher28.JPG kingfisher29.JPG

 

매미류 

 

kingfisher30.JPG kingfisher31.JPG

 

여치류

 

kingfisher32.JPG kingfisher33.JPG

 

하늘소류

 

kingfisher34.JPG kingfisher35.JPG

 

미유기

 

kingfisher36.JPG kingfisher37.JPG

 

뱀류

 

kingfisher38.JPG kingfisher39.JPG

 

글·사진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이메일 : genexp@cho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philnature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숲속 요정' 팔색조의 기막힌 둥지, 새끼 크면 부피 늘어'숲속 요정' 팔색조의 기막힌 둥지, 새끼 크면 부피 늘어

    김성호 | 2015. 09. 10

    가는 나뭇가지 이용한 돔 형태, 탄력 있는 구조여서 새끼 자라도 함께 커져 부화 19일만에 새끼는 둥지 떠나…통통 뛰며 숲바닥서 지렁이 찾는 희귀새  새가 번식할 곳이라면 들어가지 않았던 숲이 없었습니다. 대나무 숲, 딱...

  • 새들의 알 품기 고행에서 배운다새들의 알 품기 고행에서 배운다

    김성호 | 2015. 08. 27

    마지막 알 낳고 나서야 품기 시작, 동시 부화 위한 전략혼자 알 품는 암컷은 사나흘에 한 번만 잠지 둥지 비워    지구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더불어 살아갑니다. 이미 학술적으로 이름이 부여된 종만 해도 170만 종에 이...

  • 숲 요정 팔색조 목욕, 잠복 7일만에 찰칵숲 요정 팔색조 목욕, 잠복 7일만에 찰칵

    김성호 | 2014. 07. 22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드문 새의 하나인 팔색조, 목욕 장면 처음 드러내 위장막 잠복 1주일 만에 한 쌍이 계곡 목욕탕에…1주일 또 기다렸지만 그걸로 끝      ■ 새도 여름엔 헉헉거린다   장맛비가 오락가락 하는 사이로 ...

  • 한밤중 딱따구리 안방 차지, 소쩍새 번식 비밀한밤중 딱따구리 안방 차지, 소쩍새 번식 비밀

    김성호 | 2013. 11. 07

    큰오색딱따구리가 뚫어놓은 나무 둥지 가로채 번식지로 10일간 둥지 점령, 5일간 산란…60일만에 새끼 얼굴 '빼꼼'       가을이 깊어지며 들녘과 산기슭 여기저기에 들국화가 만발입니다. 이즈음이면 떠오르는 시 중에 '국화 옆에서'...

  • 동고비 106일 집뺏기 사투, 위대한 실패동고비 106일 집뺏기 사투, 위대한 실패

    김성호 | 2013. 10. 15

    딱따구리 낮 비운 새 하루 100번 10km 오가며 진흙 단장밤 되면 집주인이 허물어…신혼 살림하고 알 낳으며 ‘종전’   동고비에 대한 글 약속을 해를 넘겨 이제야 지킵니다. 지난 해, 딱따구리의 둥지를 제 둥지로 삼으려는 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