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일개미는 왜 자살하는가

조홍섭 2012. 07. 27
조회수 49895 추천수 1

늙은 남미 흰개미, 적 만나면 폭발물 등짐 폭발시켜

개미에서도 이미 알려져…이타성의 근원은 유전자 논란

 

s_sobotnik1HR.jpg » 늙은 일개미의 자살공격 행동이 밝혀진 남미 열대 흰개미. 사진=R. 하누스, 사이언스

 
빨리 걷기 경주를 하는 경보 선수에게 가장 힘든 건 달리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라고 한다. 두 발이 동시에 땅에서 떨어지면 가장 인간적인 동작인 달리기가 되기 때문에 실격한다.
 

세계적인 사회생물학자이자 개미 연구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재작년 나이 81살에 첫 소설집 <개미 둑>을 낸 것은 경보 선수의 심정에서였을지 모른다. 이미 25권의 과학저술을 내놓았고 두차례나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과학의 엄격한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치고 싶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개미의 시각에서 본 세계을 그렸는데,  “젊은이를 전장에 보내는 인간과 달리 개미는 늙은 숙녀를 보낸다”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체코의 과학자 등은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최근호에서 개미의 먼 친척인 흰개미에게서 윌슨이 언급한 것과 비슷한 사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중남미의 열대림에서 썩은 나무를 먹고 사는 흰개미의 일종인 나이 먹은 일개미가 적과 만났을 때 ‘자살 폭탄’을 터뜨린다.

s_sobotnik2HR.jpg » 자살폭탄 흰개미 무리. 입이 큰 개체는 병정개미. 등과 배 사이에 푸른 반점이 있는 개체(bw)가 자살폭탄 등짐을 진 일개미, 폭탄이 없는 젊은 일개미(ww). 사진=R. 하누스, 사이언스

 

s2_sobotnik7HR.jpg » 폭탄 결정(왼쪽 푸른 색)을 떼어낸 일개미. 사진=사진=R. 하누스, 사이언스

 

sobotnik5HR.jpg » 핀셋으로 쥐어 등짐 폭탄이 터지도록 유도한 흰개미. 푸른 결정이 녹은 액체가 창자 등 파열된 내장과 함께 검은 반점을 이룬다 .사진=R. 하누스, 사이언스   

 

s_sobotnik6HR.jpg » 등짐 포약인 푸른색 결정의 주사전자현미경 모습. 사진=R. 하누스, 사이언스

 

연구자들은 이 흰개미의 일개미가 가슴과 배 사이 연결부위에 푸른 반점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조사 결과 이 반점은 구리를 포함한 단백질 결정이 담긴 주머니였는데, 흰개미는 두 개의 주머니를 등짐처럼 지고 다니다 다른 개미 집단과 전쟁이 벌어지면 몸을 터뜨려 주머니 속의 끈끈한 액체를 분사한다.

 

몸이 파열될 때 침샘분비물이 나오는데 이것이 푸른 결정과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켜 독성을 띤 액체가 되는 것이다. 독액에 노출된 다른 흰개미는 죽거나 마비된다.

 

자살폭탄 흰개미의 공격 모습 동영상(유튜브, R. 하누스)

 


연구자들은 어떤 개미가 자살 공격을 감행하는지 알기 위해 개미의 집게처럼 생긴 아래턱 끝이 얼마나 무뎌졌는지를 조사했다. 흰개미 성충은 허물을 벗지 않기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집게가 무뎌진다. 그 결과 나이를 먹은 일개미일수록 체중은 주는 반면 등에 짊어진 ‘폭약 주머니’는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윌슨은 일찍이 1971년에 보르네오 섬에 있는 브루나이의 개미 가운데 자살 공격을 하는 목수개미를 발견한 바 있다. 실제로 개미, 흰개미, 말벌 등 사회성 곤충은 둥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브라질의 어느 개미는 매일 저녁 천적을 피해 굴의 들머리를 막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뚫는 일을 되풀이하는데, 굴 폐쇄작업의 마무리를 위해 몇 마리의 일개미는 굴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일을 마친 뒤 죽고 만다.

ant.jpg » A. 자살개미의 들머리. B. 확대한 들머리. C. 저녁 때 굴 폐쇄 시작. D, E 폐쇄 작업. F. 밖에 남은 개미가 모래를 발로 차 굴 폐쇄를 마무리하는 모습. 사진=아담 토필스키 외, 아메리칸 내처럴리스트

 

이런 이타성의 뿌리는 뭘까? 찰스 다윈이 자연선택 이론을 설명하면서 가장 골머리를 앓던 것이 개미의 이타성이다.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아닌 남을 위해 희생하는 개체가 오래도록 살아남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이타성의 근원을 유전자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1950년대 중반부터 활발히 이뤄졌다. 자신과 유전자의 일부를 공유하는 다른 개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길이기도 하다. 영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홀데인은 이런 비유를 했다. “형제 두 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강물에 뛰어들겠지만 하나를 위해선 안 하겠다.” 형제끼리는 유전자의 절반이 같다.
 

하지만 이타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개미 둑>을 내던 해, 윌슨은 그때까지의 생각을 바꿔 이타성을 유전자만으로 해석하는 데 반기를 들어 진화생물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생명의 본질은 이기주의인가? 진정한 이타주의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논란은 계속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xplosive Backpacks in Old Termite Workers
J. Šobotník, T. Bourguignon, Hanus, Z. Demianová, J. Pytelková, M. Mareš, P. Foltynová, J. Preisler, J. Cvacˇka, J. Krasulová, Y. Roisin

27 JULY 2012 VOL 337 SCIENCE www.sciencemag.org

 

Preemptive Defensive Self-Sacrifice by Ant Workers
Adam Tofilski, Margaret J. Couvillon, Sophie E. F. Evison, Heikki Helantera¨, Elva J. H. Robinson, and Francis L. W. Ratnieks

Am. Nat. 2008. Vol. 172, pp. E239–E243. 2008
DOI: 10.1086/59168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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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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