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껍질에 교묘히 숨어드는 나방 의태의 비밀 밝혀져

조홍섭 2012. 08. 03
조회수 17785 추천수 0

서울대 연구진, 나방의 '자리 잡기 행동' 처음 밝혀…배경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자리로 이동

이동 전보다 의태 효과 2배, <진화생물학> 발표

 

640px-Boarmia_roboraria01.jpg » 세줄날개가지나방. 나무껍질과 구별하기 힘든 무늬이지만 이동행동으로 그 효과를 더한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19세기 영국 공업지대에 살던 얼룩나방은 옅은 회색 날개에 반점이 난 모습이어서 회색과 흰색 지의류가 자라는 나무껍질에 앉으면 찾아내기 힘들었다. 그런데 대기오염으로 지의류가 죽고 나무가 검댕으로 시커멓게 바뀌자 새들은 눈에 잘 띄게 된 얼룩나방으로 잔치를 벌였다.
 

반면 돌연변이로 날개가 짙은 잿빛인 얼룩나방은 살아남아 퍼져나갔다. 물론 공해가 줄어들어 지의류가 다시 살아나자 짙은 나방은 이제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이른바 ‘공업암화’라는 용어로 생물학 교과서에 나오는 예이다. 나방의 위장술은 진화생물학에서 고전적인 예로 많이 인용된다. 나방은 자신이 앉는 나무껍질이나 나뭇잎의 색깔과 무늬에 맞도록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란 연구결과를 우리나라 연구진이 내놓았다. 나방은 위장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자리 잡기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단지 색깔과 무늬로 위장할 뿐 아니라 스스로 위치를 옮겨 주변 환경 속에 완벽하게 녹아 들어가는 위장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강창구 서울대 생명과학부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 박사과정생 등 연구진은 전남 광양 백운산의 테다소나무 숲에서 세줄날개가지나방과 줄구름무늬가지나방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두 나방 모두 자리 잡기 행동을 뚜렷하게 보이는 종이다.
 

풀어놓은 나방은 소나무에 앉은 뒤 날개를 위아래로 퍼덕이며 걸어서 이동했다. 적당한 장소를 찾아 배경 속에 감쪽같이 숨어든 뒤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리잡기 전후_줄구름가지나방.jpg » 처음 나무에 앉은 나방(사진 위)보다 이동한 뒤의 나방(아래)은 더 알아보기 힘들다. 사진=서울대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

 

연구진은 처음에 내려앉은 모습과 나중에 자리 잡은 모습을 촬영한 뒤 배경 속에서 나방을 찾아내는 퍼즐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풀어보게 했다. 그 결과 나방은 눈에 띄지 않는 장소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나비를 찾아내는 것은 자연에서 포식자에게 발견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모습을 들키지 않으면 살아남는 것을 의미한다.
 

puzzle.jpg » 숨은 나방 찾기 퍼즐 프로그램을 풀어보는 실험 참가자. 자연에서 나방이 포식자로부터 얼마나 살아남나는 알아보는 실험이다. 사진=사진=서울대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

 

강씨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두 종의 나방이 모두 나무껍질과 유사한 색채와 무늬를 가지고 있어 자리 잡기 전이라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종들은 아니다”며 “그러나 자리 잡기 행동 이후 2배 정도 나방들이 더 많이 살아 남았다”고 말했다.
 

나방의 포식자인 새들이 사람보다 훨씬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자리 잡기 행동은 나방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씨는 덧붙였다.
 

그렇다면 나방은 어떻게 주변 환경의 색깔과 무늬와 맞는 쪽으로 움직이는 걸까. 연구진은 현재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다. 강씨는 현재 연구진이 세운 가설로서 “나방의 시각적 능력이나 다른 요소들을 고려했을 때 나무껍질의 시각적 패턴보다는 입체적인 구조를 인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가 나오면 과연 나방이 위장효과가 큰 곳을 ‘알고’ 행동하는지 여부가 드러날 것이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진화생물학> 최근호에 실렸다.
 

연구에는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의 문종열 석사과정생, 이상임 연구교수, 지도교수인 피오트르 야브원스키가 참여했다. 이 연구실에서는 나방의 위장술뿐 아니라 소금쟁이의 성 선택, 까치와 박새의 생태 연구 등을 하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amouflage through an active choice of a resting spot and body orientation in moths
C. KANG, J. MOON, S. LEE & P. G. JABLONSKI
JOURNAL OF EVOLUT IONARY BI OLOGY
doi: 10.1111/j.1420-9101.2012.02557.x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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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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