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몸에 사는 100조마리

조홍섭 2012.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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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바이러스, 곰팡이가 우리 몸에서 생태계 이뤄, 내 몸의 주인은 세균?

미생물은 퇴치가 아니라 공존의 대상, 우리 몸에 1만종 무게만 1~2㎏

 

콜로라도대_ cires_bodyBacteria-400.jpg » 인체 내 세균. 우리 몸은 무수한 세균의 생태계이다. 사진=CIRES, 콜로라도대

 

항균비누로 깨끗이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어 구강청정제로 입안을 말끔히 가셔낸다. 혀로 느껴지는 매끈한 이와 보송보송한 피부가 더 없이 깔끔하고 상쾌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청결하게 만든 내 몸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미생물이 살까. 수 천, 수 만 마리?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수치는 까무러칠 정도로 많다. 100조 마리이다. 우리 몸의 세포가 10조 개이니 그보다 10배나 많은 박테리아(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따위의 미생물이 우리 몸에 터 잡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무게를 다 합치면 1~2㎏에 이른다. 체중에 신경을 쓰는 사람에게는 조금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체중계의 눈금이 가리키는 것은 실제 내 몸무게와 수많은 작은 벌레들의 무게를 합친 것이니까. 위안은커녕 갑자기 몸이 근질거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몸에 사는 미생물은 그저 알아도 몰라도 좋은 과학상식의 차원을 넘어선다. 인간 몸에 사는 미생물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은 인간을 지금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건강의 개념 자체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Human_Microbiome_Project_logo.jpg 미국국립보건원(NIH)은 2007년부터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에 착수했다. 세계 80개 연구소의 연구자 200명이 참가해 5년 동안 약 1억7000만 달러(약 2000억원)를 들여 사람 몸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자는 것이다.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한 인체 게놈 프로젝트에 이은 또 하나의 거대 프로젝트이다.

 

내년 사업 완료를 앞두고 지금까지의 연구결과가 최근 <네이처> 등 학술지에 논문으로 발표되고 있다. 확인된 미생물만 1만종에 이르며 이들의 유전자를 모두 합치면 사람의 유전자보다 360배 많은 800만개에 이른다. 생물다양성을 연구하기 위해 아마존의 열대우림이나 호주의 대보초에 갈 것이 아니라 우리 몸속을 탐험해야 할 판이다.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에서 미생물을 채취하는 부위_그림=미국립보건원 .gif » 인체 미생물 군집 프로젝트에서 미생물을 채취하는 부위. 땅콩처럼 생긴 것은 우리 몸에서 발견되는 장내 세균의 모습. 그림=미국립보건원

 

연구결과를 보면,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사는 곳은 배설물이 모이는 큰창자로 무려 4000종의 세균이 살고 있었다. 이어 음식물을 씹는 이에 1300종, 코 속 피부에 900종, 볼 안쪽 피부에 800종, 여성의 질에서 300종의 미생물이 발견됐다. 물론 이런 결과는 연구의 초기 성과여서 앞으로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연구자들은 사람의 입속에만 적어도 5000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번 연구로 인체는 수많은 미생물이 사는 생태계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마치 숲이 서로 다른 생물종으로 구성된 작은 생태계가 모자이크처럼 모여 이뤄진 것처럼 인체도 서로 다른 미생물들이 생태계를 구성한 조각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팔꿈치와 입속 등 부위마다 분포하는 미생물의 종류가 다르다. 또 사람마다 살아가는 미생물의 종류도 차이가 난다. 음식과 나이에 따라서도 미생물이 달라진다. 이런 미생물이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영향을 끼친다는 말인가.
 

eyelash_mite.jpg » 사람의 속눈썹에 서식하는 진드기의 일종.

 

최근 미국 베일러 의대 연구진이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 원>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자. 연구진은 임신한 여성의 질에 사는 미생물 집단이 임신 전에 비해 현저히 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새롭게 주도권을 쥐는 미생물은 위장에서 흔히 젖을 소화하는 효소를 분비하는 박테리아였다. 출산 과정에서 아기는 이 박테리아의 세례를 받을 것이 분명한데, 덕분에 모유를 소화할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 예는 새끼에게 자신의 배설물부터 먹이는 토끼를 떠올리게 한다. 토끼의 똥 속에는 식물의 섬유질을 분해하는 유용한 세균이 잔뜩 들어있기 때문에 어미 토끼는 이것을 새끼에게 먹임으로써 소화기능을 전달한다. 그런데 이처럼 아기에게 세균을 전달하는 것은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통한 출산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자연분만을 한 아기와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기는 몸속의 미생물 종류가 다르다. 하지만 자연분만을 하지 않았을 때 아기의 미생물 조성이 어떻게 달라져 장차 무슨 부작용이 생길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commonly known as MRSA, infections occur most frequently among persons in hospitals and healthcare facilities, including nursing homes, and dialysis centers.jpg » 의료시설에서 주로 감염되는 세균 MRSA

 

미국 아이다호 대학의 과학자들은 모유 속에서 무려 600종의 세균과 함께 아기는 전혀 소화시키지 못하는 올리고당이 들어있음을 확인했다. 연구자들은 이 당분은 바로 세균을 먹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모유는 아기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세균도 먹여 살리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몸 특히 창자 속의 대장균이 식물의 단단한 섬유소를 소화가 가능한 물질로 만들고 비타민을 합성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생물이 우리가 몰랐던 유익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피부에 사는 어떤 세균은 보습 효과를 낸다. 이 세균은 피부 세포가 분비하는 왁스질의 분비물을 먹고 사는데, 수분 층을 만들어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하는 효과를 낸다. 미래의 화장품 가운데는 이런 미생물이 잘 살아가도록 이들을 위한 영양분을 첨가한 제품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람의 창자에서 종종 발견되는 세균의 일종_사진=미국질병통제센터_Klebsiella_pneumoniae_01.png » 사람의 창자에서 종종 발견되는 세균의 일종. 사진=미국질병통제센터

 

비만과 장내 세균의 관계도 흥미로운 연구과제이다. 쥐 실험에서는 비만 쥐의 장내 세균을 날씬한 쥐에게 옮겼더니 체중이 늘어났다. 이 세균은 몸에 신호를 보내 세포가 당분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꾸어 결국 체내에 여분의 지방을 축적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사람에게 이런 ‘비만 세균’이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이처럼 인체 미생물 군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학 생태학’이란 새로운 학문 분야가 등장했다. 이 분야 연구자들은 세균을 퇴치의 대상으로 삼던 이제까지의 의학자들과 달리 인체 미생물과의 공존을 지향한다. 건강한 사람이라도 몸속에는 병을 일으킬 수 있는 미생물과 유익한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의 미묘한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

 

무차별적으로 세균을 죽이는 방식은 자칫 이런 균형을 깨고 수많은 유익한 기능을 하는 ‘좋은 미생물’까지 모조리 없앨지 모른다. 마치 제초제와 살충제가 목표로 하던 잡초와 해충뿐 아니라 수많은 이로운 생물과 생태계 자체를 위협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의 장내 세균인 엔테로코쿠스 파에킬리스_사진=미국립보건원.jpg » 사람의 장내 세균인 엔테로코쿠스 파에킬리스의 모습. 사진=미국립보건원

 

미생물과의 공존을 막는 대표적인 생활방식은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거나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깨끗한 생활방식을 고집해 미생물과의 접촉이 부족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다. 어릴 때 흙이나 먼지처럼 미생물이 많은 지저분한 곳에 노출되지 않아 나중에 면역체계가 발달하지 않아 알레르기나 당뇨 등에 잘 걸린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른바 ‘위생 가설’인데, 아직 과학적으로 확립된 이론은 아니다.

 

중요한 건 아무 세균에나 노출된다고 좋은 게 아니라 올바른 좋은 세균에 노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체의 미생물 생태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그 첫 발걸음을 뗀 상태이다.
 

우리 창자 속의 세균은 쥐 창자 속의 세균과 다르다. 그 세균은 우연히 우리 몸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인간은 미생물과 함께 진화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 세균이 없다면 우리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입 속의 세균을 깡그리 없애준다는 구강 청정제를 쏟아 붓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수천 종류의 미생물 수억 마리가 살고 있는 생태계를 내가 망가뜨리는 건 아닌가. 어차피 우리 몸은 나와 100조 마리의 미생물이 함께 살아가는 커다란 또 하나의 유기체 아닌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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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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