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도 슬픔을 안다, 침팬지나 코끼리처럼
침팬지, 아프리카코끼리 이어 자식·동료 죽음 인식 밝혀져
케냐, 나미비아, 잠비아서 3건 사례 목격…죽은 새끼 지키고 유골 `참배'
» 기린 어미와 자식의 단란한 모습. 이들의 유대는 죽은 뒤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팸 브로피, 위키미디어 코먼스
흔히 동물 세계는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내 새끼나 동료가 포식자에게 잡아먹혀도 자연의 섭리일 뿐, 슬퍼할 일이 아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먹고 짝짓기를 해 더 많은 자손을 남기는 쪽이 유리하다. 마치 다리가 부러진 말이 포식자를 불러모을 비명을 지르지 않는 것처럼 자연의 논리는 비정하다.
그러나 동물 세계에도 예외가 있다. 침팬지나 코끼리 같은 지적이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은 ‘죽음’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동을 한다.
침팬지는 어미와 자식 사이의 유대가 남다르다. 새끼가 죽으면 어미는 포기하지 않고 죽은 새끼를 한동안 안고 다니고 젖을 물리려 한다. 다른 동료도 이 의식에 동참한다.
아프리카코끼리도 동료 코끼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동료가 죽으면 큰 소리를 내고 귀를 펄럭이며 포식자가 접근해 주검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지킨다. 이어 주검을 코, 발, 어금니로 더듬으며 애도의 몸짓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의식’은 거의 하루종일 계속되기도 한다.
■ 아프리카코끼리의 애도 행동(유튜브 동영상)
그런데 죽음을 느끼는 동물 목록에 기린을 추가해야 할지 모른다. 프레드 베르코비치 일본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 및 야생동물 연구센터 교수는 국제 학술지 <아프리카 생태학> 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기린이 새끼의 죽음을 대하는 특이한 행동 사례를 보고했다.
이 글은 기린이 침팬지나 아프리카코끼리와 비슷하게 죽음을 대하는 사례 3건을 소개하고 있다. 2010년 케냐에서 있었던 일이다. 엄마 기린이 새끼를 낳았다. 안타깝게도 뒷다리가 꼬인 기형으로 태어났다. 새끼는 1달쯤 지나 자연사했다. 그런데 엄마를 포함해 암컷 기린 18마리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기린들은 경계 태세에 들어갔고 흥분한 상태로 새끼를 지켰다. 사흘 뒤 새끼는 반쯤 먹힌 상태였지만 엄마는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고 코로 새끼를 뒤적이고 냄새를 맡고 주변을 경계했다. 나흘 동안 엄마 기린이 보인 행동은 강한 가족 간의 유대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2011년 나미비아에서는 젊은 암컷 기린이 죽은 지 3주일 뒤 기린 무리가 죽은 곳에 찾아왔다. 마치 코끼리처럼 기린들은 주검 앞에 멈춰 물을 마실 때처럼 다리를 길게 벌리고 주검에 코를 들이대 조사하는 행동을 차례로 했다.
» 출산 뒤 젊은 엄마 기린이 나뭇잎을 먹고 있다(사진 위). 이 기린은 촬영 5시간 전에 새끼를 사산했다. 아래 사진은 이 기린이 죽은 새끼를 핥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프레드 베르코비치
지난해 잠비아에서 지은이가 직접 목격한 젊은 기린 엄마는 새끼를 사산했다. 첫 출산인 듯했다. 어미는 수 분 동안 새끼의 냄새를 맡고 뒤적이며 조사하는 동작을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 이런 행동은 2시간 넘게 계속됐다. 이 기린은 좀처럼 개별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르코비치 교수는 “이런 사례는 영장류와 아프리카코끼리에 견줘 정도는 덜하지만 죽은 새끼나 동료에 대한 반응이란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고 글에서 밝혔다. 그는 또 “기린의 어미와 새끼 사이 유대는 태어난 직후에 형성되며 우리가 알았던 것보다 훨씬 긴밀하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적었다.
■ 기사가 인용한 글의 원문 정보
Fred B. Bercovitch, Giraffe cow reaction to the death fo her newborn calf
African Journal of Ecology 2012 August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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