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년 만에 밝혀진 고래 뱃속 ‘괴물 유생’의 정체

조홍섭 2012.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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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는 '괴물' 어미는 '랍스터'…달라도 너무 다른 심해 새우 성체와 유생

미 생물학자, 분자유전학과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로 두 세기 숙제 풀어

 

다릴 펠더_Cerataspis-larva.jpg » 두 세기 전 원시적인 새로운 갑각류로 보고된 '괴물 유생'(학명 Cerataspis monstrosa). 심해 새우의 유생으로 드러났다. 사진=다릴 펠더

 

영국의 동물학자 존 에드워드 그레이는 1828년 돌고래의 위장 속에서 이상한 동물을 발견했다. 1㎝ 남짓 작은 크기의 갑각류였지만 생김새가 특이했다. 단단한 껍질과 두툼한 몸집에 뾰족한 장식 돌기가 나 있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 동물이 원시적인 갑각류의 새로운 속으로 분류하고 “아주 이상한 괴물”이라고 묘사했다.
 

그 후 이 이상한 동물은 아주 가끔 발견됐지만 오직 다랑어나 돌고래의 뱃속에서만 모습을 보였을 뿐 바다에서 산 채로 잡힌 적은 없었다. 최근까지도 학계에서는 이 동물이 성체가 아니라 심해 새우의 유생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을 뿐이다.
 

유생은 종종 성체와 아주 다른 형태를 띤다. 어린 새끼가 성체의 축소판처럼 생긴 건 포유류에게나 해당하는 일일 뿐 곤충, 물고기, 식물 등에선 어린 개체를 구분하는 별도의 학문 분야가 있을 정도로 어렸을 때와 다 자랐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

monster1.jpg » 2009년 멕시코 만에서 우연히 잡힌 '괴물 유생'. 길이 11.9밀리로 수심 420미터에서 잡혔다. 사진=다릴 펠더, 생태학과 진화

 

괴물 갑각류가 심해 새우와 관련 있을지 모른다고 과학자들이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워낙 희귀해 증거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미국 조지 워싱턴 대 생물학자인 케이스 크랜달이 멕시코만에서 바다 중층의 플랑크톤을 조사하다 우연히 이 괴물 갑각류 한 마리를 채집했다. 괴물 갑각류를 둘러싼 생물학 연구 여건은 지난 200년 동안 많이 달라졌다.

 

이 괴물이 어떤 새우의 유생인지 확인하려면 유생을 실험실에서 길러 어떤 성체가 되는지 확인하면 된다. 하지만 워낙 드문데다 심해와 표층을 오가는 이 유생을 기르는 건 불가능에 가까왔다.
 

하지만 크랜달 교수는 최근 분자생물학을 이용했다. 이 유생의 유전자를 방대한 다른 갑각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비교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shrimp.jpg » 유전자 분석 결과 '괴물 유생'의 성체로 밝혀진 심해 새우(학명 Plesiopenaeus armatus). 길이 136밀리. 사진=페쿠그냇, 생태학과 진화

 

그 결과 이 괴물 유생의 성체는 전혀 다르게 생긴 대서양 심해 새우란 사실이 밝혀졌다. 붉은 빛깔의 이 새우는 바닷가재와 비슷하게 생겼다.
 

크랜달 교수는 “200년 가까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문제를 풀어 흥분된다”며 “유전자 분석 덕분에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larva-shrimp-adult.jpg » 너무나 다른 유생과 성체. 사진=생태학과 진화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hylogenetics links monster larva to deep-sea shrimp
Heather D. Bracken-Grissom, Darryl L. Felder, Nicole L. Vollmer, Joel W. Martin & Keith A. Crandall
Ecology and Evolution doi: 10.1002/ece3.347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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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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