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개 끌고, 짐짝처럼 포개 운반해도 모두 무혐의

조홍섭 2012. 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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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규정 모호, 고의 아니었다고 잡아떼면 `무혐의'…선진국선 학대 구체적 나열해 처벌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민법 개정도 과제…녹색당·카라 동물보호법 개정 토론회 열려

 

animal4.jpg » 짐짝처럼 포개져 운반중인 애완견. 현행 동물보호법 운송 조항으론 처벌하지 못한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동물들은 어떻게 대우받고 있을까. 최근에 불거진 몇 가지 유명한 동물학대 사건과 그에 대한 수사기관의 판단을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전북 순창군의 한 축산농가가 소 값 파동에 항의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자신이 기르던 소 33마리를 굶겨 죽인 사건에 대해 경찰은 동물 학대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지난 4월20일 자정 무렵 어느 승용차가 경부고속도로에서 트렁크에 비글 종 개를 매단 채 질주해 개가 죽은 사건이 발견됐다. 동물보호단체 등의 반발이 거셌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지난 7월21일에는 제주에서 목포항으로 향하던 여객선에 대량의 애완견을 철장 속에 포개어 싣고 가는 모습이 발견됐으나 제주도는 “법적 제재를 가할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animal2.jpg » 사료값 인상에 항의하며 가축주가 굶겨죽인 전북 순창의 소. 사진=동물사랑실천협회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전면 개정해 지난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동물보호법이 있다. 이 법 제1조는  “동물에 대한 학대행위의 방지 등 동물을 적정하게 보호·관리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동물의 생명보호, 안전 보장 및 복지 증진을 꾀하고, 동물의 생명 존중 등 국민의 정서를 함양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도 왜 동물 학대가 명백해 보이는 사건마다 이 법을 들이대기만 하면 무용지물이 될까. 지난달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녹색당+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주관으로 열린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토론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다양한 지적과 대안이 나왔다.
 

심상정·장하나·진선미 의원실이 함께 참여한 이번 토론회에서는 무엇보다 동물 학대 행위를 구체적으로 나열해 자의적 판단을 막는 것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민법과 헌법 등의 개정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배의철 카라 생명권 네트워크 변호인단 대표는 ‘최근의 동물 학대 사례를 통해 본 동물보호법 개정의 필요성’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동물보호법의 허점을 지적했다.
 

animal1.jpg » 달리는 승용차 트렁크에 매달려 죽은 애완견.

 

먼저 에쿠스 비글 견 사건에서 이 법 제8조 1항은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있으나 수사기관은 그런 행위에 고의가 없고 학대 성향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무혐의 처분했다. 개의 발에 오물이 묻어 시트를 더럽힐까 봐 트렁크에 묶어 두었는데 밖으로 떨어져 죽었을 뿐이라는 차주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배 변호사는 뉴질랜드라면 이런 행위는 12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5만 달러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말했다. 구체적 학대 행위 목록에 “도로에서 차에 끌려다니게 하는 행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동물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의적 판단을 막기 위해 독일, 스위스 등에서는 학대 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동물보호법이 나열한 동물 학대 금지 목록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돼 있다.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는 것, 악의적으로 동물을 가두어 놓고 사격하여 죽이는 것, 동물끼리 서로 죽이도록 시키는 것, 개를 훈련하기 위해 혹은 잔혹함을 시험하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을 사용하는 것, 동물이 고통, 불쾌감, 상해를 겪게 될 것이 명백한데도 전시, 홍보, 영화촬영 및 비슷한 목적으로 동물을 사용하는 것, 가정이나 업소에서 보유하는 동물을 악의적으로 유기하는 것, 개의 귀를 자르거나 성대수술을 시키거나 고통을 표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것 등”

 

animal3.jpg » 개를 첩첩이 포개 실어 운반하는 트럭의 모습.


제주에서 발견된 개 운반 트럭에는 개들이 서 있을 공간마저 없어 고통 속에 울부짖고 탈진과 구토 증세를 보였지만 학대나 운송 방법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동물보호법이 운송방법에 관한 상세한 규정을 제시하면서도 이를 “준수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권고하는데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소 아사 사건에서도 수사당국은 “의도적인 학대가 아니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소를 굶겨서 죽이는 행위를 잔인한 방법으로 생명체를 죽이는 행위로 간주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에서는 소가 다른 소들이 보는 앞에서 죽어가는 사태를 6개월이나 방치한 뒤에야 농림식품부가 순창군에 해당 농가를 고발하도록 요구하는 늑장 대응을 하는 무신경을 보였고, 지자체는 소유주의 동의 없이 소를 격리조처할 수 없다고 판단해 무더기 아사 사태를 불렀다고 배 변호사는 지적했다.
 

여기엔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현행법의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현행법에서 강아지나 강아지 인형은 마찬가지 범주이고 따라서 강아지 인형의 다리를 자르거나 강아지의 다리를 자르거나 동일한 ‘재물 손괴’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이날 ‘생명권 시각에서 바라본 동물권’이란 주제발표를 한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사무처장)는 “동물을 긴급구조한 행위가 절도로 처벌받는 것은 동물을 재산권의 객체로 보는 우리나라 법률을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체로 별도로 구분하는 선진국의 입법 사례를 소개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민법을 개정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로 보호한다”고 규정해, 동물이 상해를 입었을 경우 손상된 재산가치가 아니라 실제로 지불한 비용을 기준으로 치료비를 배상하도록 했다.
 

독일도 1990년 비슷한 법 개정을 통해 가정에서 사육하고 있는 동물은 원칙적으로 압류할 수 없도록 했다. 스위스는 2002년 반려동물의 경우 가족을 위한 애호가치를 고려해 동물 보호자가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도 했다.
 

하 변호사는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권리의 주체로 보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모든 인권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권의 주체로 보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민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토론에 나선 박주연 변호사(카라 생명권 네트워크 변호인단)는 “동물을 방치하는 것도 학대 행위로 규정돼야 하고 고의가 아니라도 과실범에 대한 처벌과 긴급구조 조항, 학대 전력자의 규제 등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원창 카라 정책국장은 “법령이 미비할 뿐 아니라 만들도록 돼 있는 동물복지위도 아직 감감무소식”이라며 “일선 공무원 가운데는 동물보호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이가 적지않다”고 꼬집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제목과 사진설명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2012.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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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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