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만년 전 멸종 ‘씨조개’, 울진 성류굴 동굴호수에 산다 

조홍섭 2012. 10. 09
조회수 32935 추천수 1

국립생물자원관, 유럽서 멸종한 패충류 성류굴서 생존 확인, 국제 학술지 '진정한 생존자'

속은 물벼룩, 겉은 조개…갑각류 중 최대 다양성으로 활용 가능성 커

 

Anna Syme_800px-Ostracod.jpg » 심장도 아가미도 없는 1㎜ 작은 몸이지만 지구 생물역사의 산 증인인 패충류의 모습. 사진=안나 사임, 위키미디어 코먼스

 

약 6500만년 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괴상한 형태의 물고기 실러칸스가 1938년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또 2억년 전 살았던 침엽수인 월레미소나무가 1994년 시드니 근교에서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생물이 살아있는 것으로 드러난 대표적인 ‘살아있는 화석’이다.
 

이들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4000만년 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작은 갑각류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으로 밝혀져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9일 경북 울진 성류굴에 대한 생물조사에서 패충류 신종 프람보사이테르 레릭타를 발견해 국제학회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오경희 국립생물자원관 야생생물유전지원센터장은 “이 패충류는 주로 유럽에서 화석으로 발굴되던 종으로 4000만년 전 이후에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아 멸종된 것으로 간주되다가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패총류2.jpg » 성류굴에서 발견된 신종 패충류 전자현미경 사진. A-E. 암컷: A. 왼쪽 패각, B. 왼쪽 패각의 안쪽 면, C. 오른쪽 패각, D. 오른쪽 패각의 안쪽 면, E, 등쪽에서 본 모양(사진 오른편이 몸의 앞쪽). F-G: 수컷: F. 왼쪽 패각, G, 오른쪽 패각. 사진=국립생물자원관

 

패총류1.jpg » 성류굴 신종 패총류 모습. 모래알과 비슷한 크기이다. 사진=국립생물자원관

 

패충류란 씨앗 모양의 소형 갑각류로, 갑각류 가운데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무리이다. 현재 1만3000여 종이 살고 있으며 화석으로 기록된 것까지 합치면 6만5000여 종에 이른다.
 

몸길이 1㎜ 안팎이며 조개처럼 두 개의 패각을 지니고 있어 개형충(조개 모양의 벌레)으로 불리기도 한다. 몸은 물벼룩 비슷하지만 조개 껍질을 두른 갑각류이다. 논둑에서 보면 물벼룩과 함께 씨앗처럼 작은 패충류가 잔뜩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패충류는 주로 바다나 호수 밑바닥의 펄 속에 살며 축축한 땅위에 서식하기도 한다.
 

이번에 발견된 패충류는 울진 성류굴 들머리에서 300m쯤 들어간 미공개 구간에 있는 제3동굴에 서식하고 있으며, 지난 2002년 바닥에 펄이 깔린 호수 수심 60~80㎝에서 채집했다.
 

map.jpg » 울진 성류굴 위치(왼쪽)와 동굴 구조도.신종 패충류가 발견된 곳은 미공개지역인 가장 안쪽의 제3 동굴호수(Lake 3)이다. 사진=로빈 스미스 외, <미고생물학>

 

이번에 발견된 것과 유사한 패충류는 주로 프랑스 파리 등 유럽에서 중생대 백악기 초에서 신생대 제3기 에오세 중기까지의 지층에서 화석으로 발견되던 속이다. 이 작은 동물이 어떻게 1400㎞ 떨어진 한반도의 동굴 속에서 살게 됐을까.
 

우리나라와 영국, 프랑스 과학자는 이번에 발견한 패충류를 영국 지질학회가 발간하는 국제학술지 <미고생물학> 최근호에 신종으로 보고하고, 이 종이 ‘살아있는 화석’이 된 이유를 밝혔다.
 

논문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하나는 한반도에서 발견된 패충류가 “진정한 생존자”라는 것이다. 지각변동 등에 따른 환경변화로 다른 개체는 수천만년 전에 모두 사라졌지만 서쪽으로 한반도까지 서식지를 넓히던 이 종은 환경변화가 거의 없는 지하동굴 호수로 숨어들어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번에 발견된 종이 과거 멸종한 패충류의 껍데기 모습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논문은 첫 번째 시나리오가 더 타당하다고 봤다. 이미 중생대 때 멸종한 패충류가 유럽 중부와 남부 동굴에서 살아남은 사례가 이를 뒷받침했다.
 

논문의 저자로 참여한 장천영 대구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유럽에 주로 서식하던 소형 동물이 극동까지 이주해 지하에서 살아남은 것은 생물지리학적으로 놀라운 일”이라며 “그 사이에 지표에 살던 종이 지하 종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Richard L. Howey.jpg » 패충류는 작은 씨앗처럼 보이는 갑각류이다. 서양에선 씨앗 조개라고 부른다. 사진=리처드 호위, 위키미디어 코먼스

 

패충류는 캄브리아 시대부터 현생까지 지구 생명의 역사와 함께 존재했고, 넓은 지역에 분포하는데다 분해되지 않는 껍질을 지니고 있어 옛 기후와 환경을 연구하고 석유 등 광물을 탐사하는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완벽하고 일관성 있게 화석기록이 남아있는 동물로 꼽히는 패충류 화석을 통해 그 지점의 수심, 염도, 온도 등의 환경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패충류가 물벼룩보다 더 중금속의 급성독성에 민감해 중금속이나 농약 오염을 모니터링하는 경보종으로 주목받고 있다. 또 일부 패충류는 선충, 편충 등 기생충의 중간숙주가 되는 쇠우렁 등 연체동물을 잡아먹어 이들의 생물방제용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눈길을 끈다.
 

Stenocypris hislopi_넓적격막씨벌레_창원 주남저수지.jpg »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 등 자연 습지에 많이 서식하는 패충류인 넓적격막씨벌레. 몸길이 2㎜ 정도의 대형종이다. 사진=장천영 교수  

 

이밖에 패충류 수컷은 자기 몸보다 6배나 큰 거대 정자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는가 하면 포식자를 피하고 짝짓기를 위해 발광기관을 지니고 있는 등 진화연구와 신물질 추출 연구 분야에서 잠재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패충류 연구는 다른 무척추동물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거의 불모지로 남아있다. 장천영 교수는 “현재까지 한국에서 발견된 담수 패충류는 모두 28종인데 앞으로 더 발견될 종까지 합치면 120~200종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obin J. Smith, Jimin Lee, Yong Geun Choi, Cheon Young Chang and Jean-Paul Colin
A Recent species of Frambocythere Colin, 1980 (Ostracoda, Crustacea) thought extinct since the Eocene from a cave in South Korea; the first extant representative of a genus
Journal of Micropalaeontology
doi: 10.1144/0262-821X11-033
Journal of Micropalaeontology 2012, v.31; p131-13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기사 수정: 마지막 사진을 넓은격막씨벌레 사진으로 교체했습니다(2012. 10.1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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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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