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털은 냉각장치로 밝혀져

조홍섭 2012. 10. 11
조회수 43351 추천수 1

성긴 털이 열방출 통로 구실…최고 23% 체온 조절

프린스턴대 연구진 밝혀, 애초 털은 보온 아닌 방열용 가능성도 

 

tn_Asian+Elephants.jpg » 아시아코끼리. 아프리카코끼리보다 귀는 작지만 털은 더 무성하다. 코끼리 털의 새로운 기능이 밝혀졌다.

 

생쥐나 벌새처럼 몸이 작은 동물은 자기 몸에 비해 많은 먹이를 먹고 대사율이 높다. 몸의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커 열을 많이 잃기 때문이다. 추운 지방으로 갈수록 북극곰처럼 체중에 견줘 표면적이 적은 덩치 큰 동물이 많은 것도 같은 이치다.
 

반대로 지상 최대의 동물인 코끼리는 기온이 50도까지 치솟는 더운 곳에 살기 때문에 몸의 열을 외부로 방출하는 게 큰 과제이다. 뇌나 내장이 ‘익어버리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코끼리는 귀를 펄럭이고 모래나 진흙 목욕을 하며 틈만 나면 몸에 물을 뿌린다.
 

체온을 낮추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동은 혈관을 확장하고 이곳을 통해 더운 피를 귀에 보내는 것이다. 펄럭이는 귀는 마치 에어컨의 방열기처럼 더운 피를 주변 공기 온도로 식힌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코끼리의 체온을 충분히 식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언가 열을 빼앗는 장치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주목한 건 코끼리의 몸에 성글게 돋아난 털이다. 열을 방출하는 핵심 기관인 귀에도  털이 돋아나 있다. 털은 열을 간직하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대체 귀에도 털이 난 이유는 뭘까.
 

Muhammad Mahdi Karim_800px-African_elephant_warning_raised_trunk.jpg » 아프리카코끼리. 혈관이 밀집한 귀를 펄럭여 열을 식힌다. 사진=무하마드 카림,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자들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피부에서 공기 속도와 털의 밀도가 달라짐에 따라 열이 방출되는 정도를 정밀하게 계산했다.
 

미국 과학공공도서관이 발행하는 온라인 공개 학술지 <플로스 원>이 10일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놀라운 결과를 보고했다. 코끼리의 성긴 털은 보온이 아닌 냉각 기능을 하며 체온을 상당히 낮추는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털은 공기의 흐름을 막아 체온을 유지하는 단열층을 형성한다. 그런데 털의 밀도가 성겨지면서 차츰 그런 기능이 줄어들어 어느 한계에 이르면 더는 단열 기능을 하지 않고 오히려 냉각 기능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journal_pone_0047018_g001.png » 인도코끼리(A)와 아프리카코끼리 등에 난 털. 사진=코너 미르볼드, 플로스 원

 

성긴 털의 끝 부분은 피부로 인해 공기 흐름이 막히는 털 밑부분보다 공기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열을 바깥으로 뿜어내는 통로 구실을 하게 된다. 컴퓨터에서 과도한 열을 식히는데 쓰는 ‘핀-휜 형 방열판’도 코끼리의 성긴 털처럼 뾰족한 침이 다닥다닥 붙은 모습이다.
 

연구진은 코끼리의 털이 평균 5% 이상의 열 조절 능력이 있으며, 특히 체온 조절이 절실한 풍속이 낮은 때에 그 효과는 23%에 이른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또 피부 ㎡당 털이 30만 개보다 적을 때 털은 단열에서 방열로 기능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끼리의 털은 ㎡당 1500개 정도이며 사람은 200만 개이다. 코끼리의 털은 평균적으로 지름 0.5㎜ 길이 20㎝이며 아프리카코끼리보다 아시아코끼리의 털이 더 길다.
 

논문은 “이번 코끼리의 사례는 항온동물 몸에 난 털이 보온기능만을 한다는 오랜 믿음을 깨뜨렸다”며 “항온동물의 털이 지금보다 훨씬 더웠던 시기에 진화한 역설을 푸는 데도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고 적었다.
 

식물에서는 잎에 성글게 난 털과 선인장의 가시가 코끼리의 털과 비슷하게 냉각 기능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약 1억~3억 년 전 지구에 빙하가 없었을 정도로 더운 시기에 털이 진화한 이유는 무얼까.
 

800px-Wooly_Mammoth-RBC.jpg » 매머드 상상도. 빙하기 때 털은 주요한 단열장치였지만 그 후손인 코끼리에선 방열장치로 바뀌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번 논문은 처음 털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진화했고, 이후 지구에 빙하기가 닥쳤을 때 이것이 단열용으로 정반대 기능을 갖는 쪽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코끼리는 정반대 사례로, 지난 빙하기 때 매머드의 빽빽한 털이 단열층 구실을 했지만 그 후손인 현생 코끼리에서는 중요한 방열장치로 탈바꿈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yhrvold CL, Stone HA, Bou-Zeid E (2012)

What Is the Use of Elephant Hair?

PLoS ONE 7(10): e47018. doi:10.1371/journal.pone.004701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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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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