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비행을 포기한 새들에게 인류는 재앙이었다

조홍섭 2020. 12. 03
조회수 15788 추천수 1
인류가 날지 못하는 새 166종 멸종시켜…천적 없는 대양 섬 뛰어난 적응이 비극 불러

bi1.jpg » 뉴질랜드의 날지 못하는 새 타카헤. 한때 멸종한 것으로 간주했지만 오지 계곡에서 재발견됐다. 인류가 출현하기 전 뉴질랜드에는 26종의 날지 못하는 새들이 분포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멸종의 상징인 도도는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 살던 대형 비둘기였다. 1000년 전 멸종한 마다가스카르 섬의 코끼리새는 몸무게 500㎏에 알 무게만 10㎏인 인간이 만난 지상 최대의 새였다. 

두 거대 새는 모두 육상생활에 적응했다가 인간에 의해 멸종했다. 사람이 없었다면 지구에는 도도와 코끼리새처럼 비행을 포기한 새가 지금보다 4배는 더 풍부했을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Aepyornis_maximus.jpg » 지상 최대의 새였던 코끼리새의 골격과 알 화석.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퍼란 세욜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박사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인류가 본격 등장한 12만6000년 전 이후 멸종한 새 화석 등을 광범하게 조사한 결과 “새들의 비행 포기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흔한 현상이었다”며 “이런 진화가 적어도 150번 독립적으로 일어났다”고 밝혔다.

세욜 박사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날지 못하는 새는 펭귄과 타조 등 12개 과에 불과하지만 인간에 의한 멸종이 일어나기 전엔 40개 과에 걸쳐 그런 새들이 살았다”며 “멸종하지 않았다면 지구에서 날지 못하는 올빼미, 딱따구리, 따오기 같은 새들과 함께 살았을 테지만 슬프게도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bi2.jpg » 날지 못하는 새들의 변천. 붉은색은 인간이 본격 출현하기 이전(12만6000년 전), 노랑은 500년 전, 파랑은 현재 상태를 나타내며 숫자는 과별 종수를 가리킨다. 사욜 외 (2020)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 기간에 멸종한 새 581종 가운데 날지 못하는 새는 166종으로 전체의 29%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현재 그런 새는 60종에 지나지 않는다. 비행을 포기했다 멸종한 새 가운데는 하와이 기러기, 후투티. 핀치 등도 포함됐다.

날지 않는 새가 가장 많았던 곳은 뉴질랜드로 26종이 살았고 하와이가 23종으로 뒤를 이었다. 비행을 포기한 새들의 천국이던 뉴질랜드에는 멸종한 모아를 비롯해 키위, 카카포 등이 포유류 없는 육상에 적응해 번성했다.

bi3.jpg » 뉴질랜드 육상조류의 변천을 그린 상상도. 왼쪽은 12만6000년 전이고 오른쪽 끝은 현재이다. 교통 표지판에 ‘키위가 건너가요’라고 적혀 있다. 보잇,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비행은 새들이 1만종 이상으로 분화해 진화하도록 이끈 성공 요인이다. 그렇지만 왜 새들은 기회가 오면 기꺼이 비행을 포기하는 진화의 길을 택했을까. 연구자들은 “도망칠 천적이 없는 곳에서 비행은 사치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포유류가 없는 대양 섬에서 많은 새가 비행을 포기하고 대신 몸집을 키워 육상생활에 적응한 이유였다. 그러나 비행능력과 함께 포유류에 대한 두려움도 잃어버린 적응은 사람이 출현하면서 치명적 약점이 됐다.

bi5.jpg » 뉴질랜드 생태계에서 대형 초식동물 구실을 하던 모아의 상상도. 뉴욕 자연사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공동연구자인 이 대학 팀 블랙번 교수는 “비행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면 그것을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며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사람과 그들이 데려온 쥐와 고양이에게 날지 못하는 새는 손쉬운 먹이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날지 않는 새들이 사라지면서 이들이 하던 생태적 기능도 중단됐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서 대형 육상조류인 모아는 대륙에서 사슴과 염소 등 대형 초식동물이 하던 기능을 했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했다. 씨앗 확산과 가루받이 등도 사라진 생태적 기능이다.

bi4.jpg » 멸종의 상징인 도도의 런던 자연사박물관 표본. 변화한 환경에 기민하게 적응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멸종한 것이 아니라 환경에 뛰어나게 적응했음에도 갑작스러운 인류의 출현으로 멸종한 동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또 날지 않는 새들이 인간에 의해 대규모로 멸종하면서 진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왜곡됐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도도는 변화에 기민하게 적응하지 못한 소극적인 새여서 멸종이 불가피했다고 보지만 실은 (천적이 없는 대양 섬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점령해 훌륭하게 적응한 놀라운 새였다”면서 “이들이 이룩한 일련의 행동과 형태, 생태적 변화는 인간이 이끈 멸종으로 모조리 사라졌다”고 적었다.

인용 논문: Science Advances, DOI: 10.1126/sciadv.abb609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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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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