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사회에도 ‘노예 반란’ 벌어진다

조홍섭 2012. 10. 15
조회수 30632 추천수 1

부모 죽인 납치개미 둥지서 적의 새끼 기르다 어느 순간 사보타지 나서

납치개미 번데기 절반 가량 살해당해, 간접적으로 친척 번성에 기여

 

 ants.jpg » 납치 개미의 번데기를 공격해 죽이는 노예 개미들의 반란. 사진=알렉산드라 아헨바흐, 진화생태학

 

인간사회와 달리 동물들은 평화롭고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것 같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뻐꾸기가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몰래 낳아 놓은 알이 깨어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이고,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자기보다 큰 뻐꾸기 새끼를 먹이느라 등골이 휘는 모습을 보면 분노마저 치민다. 하지만 어쩌랴.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삶의 방식은 기생인 것을. 새뿐 아니라 우리나라 특산 물고기로 멸종위기종인 감돌고기도 뻐꾸기처럼 꺽지 알자리에 몰래 알을 낳는다.
 

01148345_P_0.jpg » 자기보다 몸집이 몇 배나 큰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사진=김진수 기자

 

개미의 기생은 더 지독하다. 미국 북동부 고유종인 프로토모그나투스 아메리카누스란 개미는 노예 사냥으로 유명하다. 길이 2~3㎜로 작은 몸집이지만 이 개미는 다른 개미집을 습격해 어미를 죽이고 번데기를 탈취해 둥지로 데려온다.
 

둥지에는 보통 여왕개미 하나에 일개미 2~5마리로 단출하지만 이렇게 잡아온 노예 개미는 30~60마리에 이른다. 노예 개미는 자신을 잡아온 개미의 애벌레를 정성껏 보살피고 먹이를 구해 오며 둥지를 관리한다. 뻐꾸기를 기르는 개개비처럼 이들은 자기 종족의 원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붉은머리오목눈이가 꼭 그렇게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둥지에서 크기와 색깔이 다른 알을 발견하면 둥지 밖으로 내던진다. 탁란에 너무나 신경을 쓴 나머지 색깔이 조금 이상한 자기 알을 내버리기까지 한다. 기생자와 숙주 사이의 이런 경쟁은 진화의 가장 중요한 군비경쟁 가운데 하나이다.
 

800px-Protomognathus_americanus_casent0003235_profile_1.jpg » 다른 개미집을 습격해 어미를 죽이고 새끼를 데려와 노예로 삼는 프로토모그나투스 아메리카누스 개미.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노예 개미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이 밝혀졌다. 독일 마인츠 대학 요하네스 구텐버그 캠퍼스의 개미연구자인 수산 포이트지크 교수 등은 노예 사냥꾼 개미에게 납치된 템노토락스 롱기스피노수스 종 개미의 저항 전략을 연구해 <진화 생태학> 최근호에 보고했다.
 

이제까지 노예 사냥꾼의 빈번한 습격에 대한 저항은 재빠른 대피와 도망, 싸움 전략 등을 진화시켰다고 알려졌지만, 노예는 적의 둥지에서 번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방어 능력은 진화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노예 반란’을 통해 그것이 가능함을 보였다.
 

납치된 개미는 적의 둥지에서 애벌레에게 먹이를 먹이고 청소를 하는 등 일을 열심히 하지만 번데기 단계로 접어들면서 돌연 번데기를 방치하거나 갈가리 찢어죽이는 행동을 나타냈다. 번데기 단계로 접어들면 개미는 형태가 분명해지고 그 종 특유의 화학적 단서를 방출하기 시작한다.
 

April Nobile_800px-Temnothorax_longispinosus_casent0104819_profile_1.jpg » 노예로 자라지만 적의 애벌레를 죽이는 사보타지를 하는 것으로 드러난 템노토락스 홍기스피노수스 종 개미. 사진=에이프릴 노바일,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 3개 지역에서 조사한 바로는 대체로 번데기의 절반가량이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예가 없는 둥지에서 생존율이 85%에 이르는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이런 땅속에서의 저항 때문에 노예 사냥꾼 개미는 무한정 퍼져나가지 못하고 집단 자체도 작은 규모에 머무는 것이다.
 

그렇다면 숙주 개미는 노예 반란을 통해 무슨 이득을 얻는 걸까. 번데기 살해는 노예 사냥 개미 집단의 성장을 억제하고 이는 주변에 있는 다른 숙주 개미 집단을 늘리는 효과를 낸다. 그런데 이웃 숙주 개미는 바로 노예 개미와 유전자를 상당 부분 공유하는 친척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Protomognathus_americanus_casent0003235_head_1.jpg » 노예 사냥으로 유명한 프로토모그나투스 아메리카누스 종 개미.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기생자의 알을 가려내 직접적 이득을 얻는다면, 이 숙주 개미는 적의 새끼를 죽임으로써 간접적으로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이런 행동은 진화과정에 자신의 종을 돕는 선택으로 작용해 그런 형질이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노예 반란의 부작용도 있다.붉은머리오목눈이가 뻐꾸기를 너무 신경 써 자신의 알을 버리는 것처럼, 적의 새끼를 죽이는 형질을 간직한 숙주 개미는 자기 둥지에서 새끼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곤 한다.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노예 사냥꾼 새끼의 생존율이 33%로 특히 낮았는데 이 지역의 숙주 개미 번데기의 생존율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낮은 75%에 그친 것은 그 때문으로 보인다고 논문은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의 원문 정보
Geographic distribution of the anti-parasite trait “slave rebellion” 
Tobias Pamminger, Annette Leingartner, Alexandra Achenbach, Isabelle Kleeberg, Pleuni S. Pennings, Susanne Foitzik
Evolutionary Ecology

10.1007/s10682-012-9584-0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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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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