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이 먹던 야자게, 내비로 길 찾는다

조홍섭 2012.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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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위성 위치추적 연구 결과 길 기억해 장거리 이동 드러나

무게 4킬로, 60살까지 사는 지상 최대의 절지동물

 

crab1.jpg » 야자게를 연구하는 독일 연구진. 사진=플로스 원

 

열대 태평양과 인도양의 작은 섬에는 야자게라는 거대한 게가 산다. 이 게는 다 자라면 무게 4㎏, 다리를 편 길이는 1m에 이르고 60살까지 자란다. 육지에 살도록 진화해 허파가 있어 유생 시절을 빼면 물이 없어도 된다. 오히려 물속에 하루 이상 담궈 놓으면 익사한다.
 

동물의 몸에 전파 발신 장치를 붙여 위성을 이용해 그 이동을 추적하는 기술은 동물 연구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구상에 가장 종류가 많은 절지동물은 예외였다. 아무리 기술 발달로 소형화가 진행돼도 절지동물에게 매달기엔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자게는 거대한 몸집을 지녀 위성 추적 장치를 붙이는 것이 가능하다. 절지동물로는 처음으로 야자게에 지피에스(GPS·위치정보시스템)를 부착해 이동행동을 연구한 결과가 나왔다. 게다가 그 결과가 놀랐다. 야자게는 마치 내비게이터를 장착한 자동차처럼 먼 거리에서도 자기 집을 정확히 찾아왔다.
 

crab2.jpg » 위성 추적 장치를 부착한 야자게. 몸집이 커 이런 연구가 가능하다. 사진=야콥 크리거 외, 플로스 원

 

야콥 크리거 독일 에른스트-모리츠-아른트 대 동물학자 등 독일 연구자들은 15일 미국 과학공공도서관이 내는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서 야자게의 이동행동을 장기간 추적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인도네시아 자바섬 남쪽에 위치한 야자게의 자연 서식지이자 국립공원인 인도양 크리스마스섬에서 55마리의 수컷 야자게에 전파 발신 장치를 붙여 위성으로 추적했다. 이제까지 암컷 야자게는 내륙 열대우림에서 살다 번식기에만 바닷가로 나가 알을 낳을뿐 수컷은 내륙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crab3.jpg » 위성 추적 장치가 달린 야자게와 이를 추적하는 장치. 사진=야콥 크리거 외, 플로스 원

 

그러나 전파 추적 결과 수컷 야자게도 때로는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동 방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나무나 바위 구멍에 집을 정하고 몇 주일씩 머물며 25m쯤 단거리 외출을 하는 행동이 한 가지였다. 또 다른 하나는 0.7~4.2㎞ 거리의 장거리 여행에 나서는 것이었는데, 중간에 임시 거처를 두고 밤을 틈타 여행에 나섰다.
 

흥미로운 건, 이런 이동을 할 때 야자게는 자신이 다니던 길을 고집한다는 것이었다. 또 길을 잘 기억해 먼 거리에서도 집을 잘 찾아왔다.
 

crab4.jpg » 야자게 55마리가 최대 3달 동안 이동한 경로를 위성으로 추적한 결과. 그림=야콥 크리거 외, 플로스 원

 

장거리 이동은 주로 우기에 내륙 우림과 해안 사이에서 이뤄졌는데, 회랑 모습의 폭 500m 가량의 통로를 정해 놓고 개별적으로 자신의 길을 정해놓고 다녔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집 찾는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위성 추적 이외에 야자게를 상자에 넣어 집에서 1㎞쯤 떨어진 곳에 풀어놓고 귀소하도록 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8마리 중 5마리가 집에서 100~300m 오차 범위 안에서 10시간부터 21일 사이에 돌아왔다.

 

이들은 대개 집까지 직선 거리로 방향을 잡았다. 한 개체는 같은 장소에 두 번 옮겨놓아 실험을 두 번 시도했는데 놀랍게도 똑같은 경로를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이 경로는 에스 자로 굽은 경로였다.
 

crab5.jpg » 위성 추적 장치를 이용해 야자게를 연구하는 모습. 사진=야콥 크리거 외, 플로스 원

 

야자게는 어떻게 길을 기억하는 걸까. 연구 결과 야자게는 장소와 경로를 잘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곤충처럼 화학물질로 길에 표시를 하거나 뛰어난 후각을 이용한다는 증거는 없었다.
 

연구자들은 야자게가 집에서 어떤 방향으로 이동했는지를 연속적으로 계산해서 기억하는 ‘경로 적분’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다른 동물들이 이동할 때 사용하는 지형지물, 달 등 천체 단서, 지자기, 지표면 변화, 경사도, 바다 냄새 등을 복합적으로 이용할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야자게는 위성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내비게이션 기법을 이용해 길을 찾는 셈이다. 야자게가 오래 사는 동물이기 때문에 먹이 찾기와 짝짓기를 위해 오랜 세월 다니면서 집 주변 환경과 길에 대해 잘 알게 되면서 이런 능력을 획득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육상 최대의 절지동물인 야자게는 열대 태평양과 인도양에 널리 분포했으나 남획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rieger J, Grandy R, Drew MM, Erland S, Stensmyr MC, et al. (2012) Giant Robber Crabs Monitored from Space: GPS-Based Telemetric Studies on Christmas Island (Indian Ocean). PLoS ONE 7(11): e49809. doi:10.1371/journal.pone.004980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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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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