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문재인, 동물들은 누굴 찍을까

남종영 2012.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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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고양이 키우는 문재인, 당선되면 입양하겠다는 박근혜

원론적이지만 "동물복지 강화" 한 목소리

 

ani0.jpg » 동생 박지만씨에게 선물받은 진돗개 봉숙·봉달이가 낳은 새끼들을 안고 있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왼쪽)와 딸 문다혜씨가 맡긴 유기고양이 ‘찡찡이’와 함께 사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현재는 봉숙·봉달이와 살지 않는 박 후보는 청와대에 들어가면 유기동물을 입양하겠다고 했고, 문 후보는 찡찡이를 데려가겠다고 밝혔다. 사진=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내년 2월 취임하는 제18대 대통령과 함께 유기견이나 유기묘 등 유기동물도 청와대에 들어갈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등 유력 후보들 모두 청와대에서 유기동물을 기르겠다고 약속했다.
 

박근혜 후보 캠프는 9일 생명체학대방지연합 등 10개 동물보호·환경단체가 보낸 동물정책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동물복지 현장에 가보고 유기동물을 직접 입양도 해서 동물복지와 동물보호를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새누리당 전문위원이 기초자료를 작성해 올린 것을 후보실에서 최종 검토해 확정했다. 박 후보의 공식 입장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한때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진돗개 봉숙이·봉달이를 기르며 새끼를 분양하는 등 반려동물을 키운 경험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이미 유기고양이 ‘찡찡이’를 집에서 기르고 있다. 문 후보는 지난 7일 부산 유세에서 “청와대에 들어가면 찡찡이도 데리고 가느냐”라는 시민의 질문에 “함께 가겠다”고 대답해 트위터 등에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문 후보 가족을 잘 아는 캠프 관계자는 12일 “길 잃은 고양이를 입양해 기르던 딸 다혜씨가 결혼하면서 2007년부터 문 후보가 이를 경남 양산 자택에서 맡아 기르고 있다. 새침하고 자주 찡찡거린다고 해서 찡찡이다”라고 말했다.

 

ani4.jpg » 문재인 후보가 양산 자택에서 기르는 풍산개 마루. 사진=민주통합당


문 후보는 동물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산 자택에는 찡찡이와 함께 풍산개 ‘마루’도 함께 살고 있고, 최근에는 한달 된 스피츠 강아지 ‘쯔쯔’도 합류했다. 캠프 관계자는 “토종닭과 관상용 닭의 일종인 ‘실키’를 키우면서 닭이 낳은 계란을 직접 받아먹는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는 동물복지가 처음 선거 의제에 올랐다. 동물보호단체는 11월 두 후보에게 동물정책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두 후보는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 조항의 강화 △동물복지 실태조사 실시 △모피 및 상어지느러미 수입·판매 규제 등 그동안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대부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 제18대 태통령선거 주요 후보의 동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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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대공원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방사 결정으로 제기된 돌고래쇼 금지에 대해서도 두 후보는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 후보 쪽은 “돌고래쇼 금지는 동물보호와 함께 국민정서를 함양하는 측면도 있다. 다만 전면 금지에 대해서는 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 수렴을 거쳐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후보 쪽도 “돌고래쇼를 포함한 동물쇼는 중단하는 것이 옳다. 다만 적지 않은 반발이 있으므로 그 방향으로 가도록 정책을 만들고 교육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가축전염병 사태 때 동물들을 산 채로 묻는 관행과 관련해 동물보호법 등에 ‘생매장 금지’를 명시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두 후보는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는 “적극 추진하겠다”고 답했고, 문 후보도 공감하면서 “위기대응체계를 보완하는 한편 생매장을 금지하고 국제기준에 맞게 인도적 도축기준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단체는 지난겨울 벌어진 구제역 사태로 소·돼지 등 가축 348만마리가 생매장·살처분된 것과 관련해 ‘생매장 금지법’을 요구해왔다.
 

두 후보의 정책을 보면, 동물권과 동물복지의 문제의식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구체성이 떨어지고 원칙적인 입장 표명 수준에 머무른 한계도 보인다. 정책과 입장의 차이점을 보면, 박 후보는 화장품 동물실험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문 후보는 단계적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문 후보는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곰 사육과 관련해서도 특별법을 제정해 사육곰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경영학·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는 “대선 후보들이 처음 동물정책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ani2.jpg » 진돗개 새끼들을 데리고 있는 박근혜 후보. 사진=새누리당
 

문재인 후보 쪽은 트위터 등에 찡찡이, 마루 등의 사진을 띄우는 등 박근혜 후보에 비해 적극적으로 ‘동물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다. 동물복지 정책을 소개하는 ‘문재인이 동물친구에게 답합니다’라는 홍보물을 배포했고, 9일 발표된 공약집에도 동물단체와 협의해 만든 동물복지 공약을 포함시켰다. 대선 후보가 공식 공약집에 동물복지 정책을 내건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앞서 11월7일 문재인 캠프는 문 후보의 부인 김정숙씨가 참석한 가운데 동물자유연대와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와 간담회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동물단체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였다. 이기순 동물자유연대 정책기획국장은 “300쪽짜리 공약집에서 동물복지 공약의 분량은 단 5줄밖에 되지 않는다. 운동 진영과 유권자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라도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길 교수는 “문 후보는 공약집에 동물복지 정책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실행의지가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유력 후보가 약속을 지킨다면 내년부터는 동물들이 좀더 살기 편한 세상이 된다. 누가 되든 가축이 산 채로 흙속에 파묻히는 비인도적인 광경은 사라지고, 올해 정부가 추진해 논란이 됐던 과학포경이 부활할 가능성도 없어진다. 물론 1987년 이후 다섯번의 선거를 치렀지만 사람 살기가 크게 좋아졌다고 말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이처럼 동물들을 위한 공약도 ‘헛공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람만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동물들을 위한 대통령으로도 통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인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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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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