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공 해안'의 3천일 농성, "미군기지는 미국으로 가라"

조홍섭 2012.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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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없는 미래로 가자”-피스 앤 그린 보트 현장 취재기 ② 오키나와 헤노코 해안

후텐마 기지 이전예정지 헤노코 해안 주민들 3152일째 천막 농성

세계 최북단 듀공 서식지, 천혜의 산호 해안 …제주 강정마을 운동에 공감

 

 PC049868.jpg » 듀공이 사는 산호해안에 미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3000일 넘게 지켜온 주민들의 농성 텐트에 농성일을 나타내는 간판이 서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일본 도쿄보다 대만이 거리가 더 가까운 오키나와의 나고 시에 위치한 헤노코 해안은 열대 산호바다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얕아서 밑바닥이 훤히 드려다 보였고 호수처럼 잔잔했다.
 

헤노코 해안은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상징인 후텐마 기지의 이전 예정지로 결정됐지만 16년째 주민들이 끈질긴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해양 포유류 듀공의 세계 최북단 서식지이자 대규모 산호 분포지인 이곳의 풍요한 바다를 지키는 주민을 만나기 위해 피스보트가 지난 4일 오키나와 나하 항에 닻을 내렸다.
 

헤노코 해안에 위치한 주민의 농성장을 찾았다. 수염이 덥수룩한 주민이 쥐고 있는 선간판엔 “3152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미군의 해상기지 건설을 저지하고 자연과 주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저항은 놀랍게도 8년 8개월째 계속되고 있었다. 흰 대형 텐트 안에는 그동안의 투쟁을 담은 사진과 자료, 신문 스크랩이 빼곡하게 걸려 있었는데, 일본 전국 각지와 한국 등 외국 방문자의 응원 메시지도 눈에 띄었다.
 

heno6.jpg » 헤노코 해안의 장기 농성텐트. 방문객에게 주민 대표가 운동 내용을 설명해 준다. 사진=조홍섭 기자

 

우라시마 아키코 ‘헬기 기지가 필요없는 주민 모임’ 대표는 “2004년 4월19일 정부가 작업장을 설치하러 헤노코 어항에 들어오려는 것을 막은 것이 기나긴 연좌시위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오키나와는 일본 국토의 0.6%에 불과하지만 미군 전용기지의 74%가 몰려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후텐마 기지를 비롯해 오키나와 본섬의 약 20%를 미군기지가 차지하고 있다.
 

미군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의 누적된 분노가 폭발하게 된 계기는 1995년 미군 병사 3명이 소녀를 성폭행한 사건이었다. 주민 8만 5000명이 참가한 총궐기 대회가 열렸고, 일본과 미국은 이듬해 후텐마 기지를 일본에 반환하고 대체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곳이 바로 헤노코 해안이었다.
 

1996-saco-map.jpg »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해안 이주를 표시한 지도.

 

생업이 바다에 걸려있는 주민들은 바다를 메우고 헬기 기지 등이 들어서는 계획에 반발하고 나섰지만 일본 정부와 지자체는 건설공사를 강행할 태세였다. 우라시마의 회고가 이어진다.
 

“해상작업을 막기 위해 어민들이 카누와 어선을 동원해 가로막고 바다에 뛰어드는 저지 행동에 나섰어요. 해상투쟁은 1년쯤 계속됐습니다.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 카누를 타고 해상시위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주민들의 악착같은 운동에 막혀 군 당국이 계획했던 63곳의 시추조사는 단 한군데에서도 이뤄지지 못했다. 바다는 일견 평화를 되찾은 것 같았다. 농성텐트는 시민들에게 일종의 ‘명소’가 돼 한적한 바닷가임에도 매일 30명쯤이 찾아온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640PX-~1.JPG » 헤노코 해안의 항공사진. 해안에는 슈워브 미군기지가 있고 바다 바깥의 산호초 안쪽이 호수처럼 얕은 산호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주민들이 주선한 어선을 타고 미군 기지 건설 예정 해역으로 나갔다. 파도가 해안이 아닌 먼 바깥에서 부서진다. 안내에 나선 어민 히가시온나 타쿠마(51)는 “그곳에 산호초가 있다”고 말했다. 산호초가 파도를 막아줘 그 안쪽 바다는 잔잔하고 얕은 산호 호수인 셈이다. 어민에겐 이곳이 수많은 물고기가 번식하고 해초와 연체동물이 많은 “바다 밭”이지만 미군은 매립의 적지로 보았다.
 

해안에는 리조트처럼 생긴 흰 건물이 줄지어 서 있었다. 미군기지인 캠프 슈워브의 볼링장 등 위락시설이 여기에 많이 들어서 있다. 투명한 바다 밑바닥은 모래가 깔린 흰 부분과 해초가 자라 어두운 부분으로 얼룩져 있다. 이곳이 바로 세계적 멸종위기동물인 듀공의 서식지이다.
 

heno4.jpg » 피스 앤 그린 보트 참가자들이 헤노코 미군기지 건설 예정해역을 둘러보고 있다. 해안의 리조트 단지처럼 보이는 것이 슈와브 미군기지이고 바다 밑 검은 곳이 해초가 자란 부분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특히 이곳엔 듀공의 주식인 거머리말이란 해초가 많다. 이 식물이 없으면 듀공은 살아갈 수가 없다. 길이 3m 무게 450㎏에 이르는 듀공은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10~16%에 해당하는 해초를 먹는 대식가이다.
 

히가시온나는 듀공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소리에 아주 민감해서 배의 엔진 소음을 들으면 도망쳐 버립니다. 사람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좀처럼 나오지 않습니다. 운 좋게도 직접 봤는데 무척 신비롭더군요.”
 

heno7.jpg » 피스 앤 그린 보트 탑승객에게 미군기지 건설 예정지와 듀공 서식지를 안내하고 있는 어민 히가시온나 타쿠마. 사진=조홍섭 기자

 

듀공을 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대신 듀공이 입에 난 뻣뻣한 털로 바다 밑바닥의 해초밭을 불도저처럼 밀고 가며 먹는데, 이 흔적을 보았다는 이는 흔하다.
 

듀공과 바다거북은 먹이가 비슷해 함께 사는 일이 많다. 헤노코 해안은 바다거북이 알을 낳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를 매립하고 군기지를 건설하면 이들 두 희귀동물의 미래도 없다.
 

Julien Willem_위키미디어 코먼스.jpg » 인어 전설의 주인공인 듀공. 나사말을 주로 먹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사진=쥴리엔 윌렘, 위키미디어 코먼스

 

dugong&turtle.jpg » 헤노코 해안에서 바다거북과 함께 헤엄치는 듀공의 모습.

 

갑자기 농성텐트 옆 미군기지 해안으로 굉음과 함께 수륙양용전차 몇 대가 상륙하면서 평화로운 산호 해안의 분위기는 여지없이 깨졌다. 매달 한 두번씩 이런 훈련을 한다고 주민이 말했다.
 

국책사업인 기지이전을 주민들이 이토록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아시토미 히로시 헬기기지반대협의회 대표는 이유를 환경문제, 평화문제 그리고 민주주의의 문제 등 세 가지로 요약했다.
 

세계에 30마리밖에 남지 않은 오키나와듀공과 바다거북 번식지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또 매립을 위해서는 대규모 매립토가 필요한데 그곳의 환경파괴가 불가피하겠죠.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기지가 아니라 생태관광이 미래의 발전방향이라고 봅니다.

 

또 이곳은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아시아 일대 분쟁지역으로 출동하는 미군 해병대 기지이죠. 이라크의 후세인 출신지인 팔루자를 포위했던 부대와 아프간 파병 부대가 모두 이곳에 주둔했습니다. 기지는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 정부는 쓰나미와 원전사고로 돈이 필요한 후쿠시마에 세금을 쓰지 않고 미군을 위해 쓰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미국말 잘 듣는 나라 1등은 일본이고 2등은 아마 한국이겠죠. 후텐마 기지는 이곳도 괌도 한국도 아닌 미국으로 가야 합니다. 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미군기지가 아니라 아시아 민중의 힘입니다.”
 

heno5.jpg » 아시토미 히로시 헬기기지반대협의회 대표가 헤노코 미군기지 이전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주민이 내세우는 이유는 이해가 갔지만 왜 일본 정부는 국책사업으로 정해진 지 16년이 되도록 공사를 강행하지 않는지 궁금해졌다. 주민과 전국의 시민이 극력 반대하는데도 해군기지 공사를 전격적으로 집행한 강정 마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도 강정마을 사태를 잘 알고 있고 지난여름 제주 세계자연보전총회 때는 활동가 한 명이 참가하려다 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
 

우라시마 대표는 “정부가 공사를 강행하지 못하는 건 오키나와 사람 모두가 반대하기 때문이다. 무리하게 추진하면 현 전체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heno3.jpg »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기지. 활주로에 사고가 잦아 '과부 제조기'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오스프레이 편대가 기착해 있다. 사진=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아시토미 대표는 오키나와 주민 사이의 미묘한 기류 변화를 들어 설명했다.
 

“반대 여론이 점점 커져 미군을 쫓아내자는 쪽으로 바뀌고 있어요. 독립을 입에 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오래전에 일본에 복속돼 고유 언어를 빼앗기고 오랜 동화교육을 받아 독립심이 낮은데도 말입니다.”
 

한때 류큐왕국을 이루었던 오키나와는 1872년 일본에 병합됐고, 제2차대전 때는 일본 땅에서 벌어진 유일한 지상전인 오키나와전에서 주민 4명에 한 명꼴인 15만 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른바 ‘사석(버림돌) 작전’이다. 이후 미국의 지배 아래 있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됐다.
 

키무라 아키라 가고시마 대학교수(평화학)는 오키나와에 대한 차별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키나와는 미국과 일본 본토의 이중 식민지입니다. 미국은 일본 본토와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다시 일본 본토는 오키나와를 국내 식민지로 삼는 것입니다. 본토는 비군사화된 평화국가로 남고 오키나와는 미국 지배 아래의 전쟁국가로 남겨둔다는 차별적인 발상입니다. 오키나와의 독립에 관한 이야기도 처음엔 술자리 화제여서 ‘술자리 독립론’이라고 했는데 점점 진지한 주제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연구회도 구성되고 독립에 가까운 자기결정권 강화 등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오키나와 사람들의 인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는 또 “원전 문제가 에너지 문제 이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인 것처럼 오키나와의 기지문제는 군사 안전보장 문제 이상으로 차별과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heno2.jpg » 헤노코 해안의 슈와브 미군기지 경계 철조망에 한국 참가자가 평화를 기원하는 리본을 걸고 있다. 붉은 리본으로 묘사한 것은 듀공이다. 사진=이정아 기자

 

탈 원전의 깃발을 걸고 항해에 나선 피스 앤 그린 보트가 오키나와에 정박한 이유가 분명해졌다. 원전과 미군기지는 차별이란 점에서 닮은꼴이었던 것이다. 풍요와 평화를 누리는 곳과 위험과 불편을 겪는 사람은 다르다.
 

일본에서 미군기지는 남쪽 끝 오키나와에, 원전은 각 지역의 외딴 해안에, 그리고 핵폐기물 처분장과 재처리 공장 등 원전 찌꺼기는 본토 최북단 아오모리 현에 몰려있다. 불편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외진 곳에 보내는 발상은, 한국에서라고 예외는 아니다.

 

오키나와(일본)/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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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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