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마리 군무,가창오리는 어디로 갔나

남종영 2012.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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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 철새 '실종' 사건, 서산·군산의 최대 월동지 텅텅

남해안 영암으로 직행, 개체수 절반…농경지 낙곡 줄고 4대강 은신처 감소 탓 추정

간월호_김진수1.jpg » 천수만의 간월호에서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떼. 낮에는 호수에서 쉬다가 어둠이 내리면 농경지에서 낙곡을 주워 먹는다. 사진=김진수 기자

 
“가창오리의 행방을 찾습니다. 20여만마리의 가창오리가 올해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 소식을 아시는 분께서 연락주세요.”
 

11월30일 탐조가인 김신환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의장은 페이스북에 ‘가창오리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가창오리는 10월 말이면 천수만에 도착했어야 했다. 맷돌만한 망원렌즈를 들고 천수만에 갔지만 매번 헛수고였다.
 

가창오리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이다. 특히 수만마리가 한꺼번에 군무를 벌일 때에는 검은 연기가 하늘을 휘젓는 것처럼 장관을 연출한다. 악마의 혼령이 춤추는 듯한 해질녘의 이 장관은 영국 비비시(BBC)의 다큐멘터리 <살아있는 지구>에서도 유일하게 소개된 국내 장면이다.
 

가창오리는 러시아 북동부의 바이칼호수, 레나강, 아무르와 오호츠크 해안에서 여름을 난다. 전세계 개체수가 최대 60만마리로 추정되는데, 모두 한반도에서 겨울을 난다. 한반도에선 흔한 새이지만, 세계적으론 귀한 새라는 의미다.
 

서천 금강하구둑_이종찬.jpg » 충남 서천 금강하구둑의 가창오리 군무. 오로라처럼 휘날리며 연출하는 다양한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이종찬 기자

 

4~5월께 태어난 새끼가 비행 능력을 익히면 가창오리는 시베리아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때 처음 들러 머무는 곳이 충남 서산 천수만이다. 한꺼번에 가장 많은 가창오리를 볼 수 있는 세계 최대 월동지다. 김신환 의장은 17일 “많을 때는 20만마리가 천수만을 덮는다. 한 달 정도 머물다가 남쪽으로 간다”고 말했다.
 

천수만를 비롯해 삽교호, 남양호 등에 머물던 가창오리는 보통 11월 말~12월 초 남쪽인 충남 서천과 전북 군산의 금강하굿둑 주변으로 터전을 옮긴다. 조금 더 남쪽으로는 전북 고창의 동림저수지, 전남 영암의 영암호, 해남의 고천암호,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 1~2월까지 머무르다가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하나뿐인지구_교육방송.jpg » 가까이서 본 가창오리. 머리의 태극무늬가 독특하다. 사진=하나뿐인 지구, 교육방송

 

과연 가창오리는 한반도에 오지 않은 걸까?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김 의장은 금강을 모니터링하는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과 함께 ‘비상연락망’을 가동했다. 12월2일 뜻밖의 소식이 남쪽에서 날아왔다. 전남 해남에 사는 이정식씨(해남고 교사)였다.
 

“영암호에 벌써 와 있어요. 20만마리는 되는 것 같은데요.”
 

천수만, 시화호에는 가창오리가 없고 삽교호에 2만마리 있는 게 전부였다. 남쪽인 새만금에는 300마리, 주남저수지에는 500마리가 머무르고 있었다. 대부분 가창오리는 서해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직행’한 것으로 보였다. 김 의장과 주 연구원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 연구원이 말했다.
 

가창오리가 중간에 들르지 않고 내려간 게 이상해요. 보통 천수만의 낙곡을 다 먹고 호수가 얼고서야 남쪽으로 내려가거든요. 이번에 그렇게 추웠던 것도 아니고… 가창오리 수도 부쩍 줄어들었어요.”

가창오리 개체수는 어떻게 파악할까? 그냥 눈으로 센다. 그래서 조사원에 따라 몇만마리 차이가 나기도 한다. 전국 도래지의 실시간 상황을 알 길도 없어서 가창오리가 어디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ga.jpg

 

그럼에도 가창오리는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매년 1월 시행하는 전국철새 동시센서스에서 가창오리는 2010년 64만마리, 2011년 44만마리, 2012년 32만마리였다. 천수만과 금강 등 일부 지역에는 도래하지 않고 절대적 개체수도 줄어들고 있다는 말이다.

 

천수만에 가창오리가 들르지 않은 이유는 농경 방식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2000년대 들어 서산 에이(A)지구를 경작하던 현대건설이 땅을 민간에 불하하면서부터다. 국립생물자원관의 허위행 연구사의 말이다.

가창오리는 낮에는 호수에서 쉬다가 밤에 농경지로 날아가 낙곡을 주워 먹죠. 과거에는 추수를 하고도 낙곡이 논에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소여물용으로 팔기 위해 볏짚말이를 해놓거든요. 가창오리가 먹을 게 없어진 거죠.”
 

농기계의 영향도 있다. 대형 콤바인으로 추수할 때는 사각지대가 많아 거둬가지 않은 낙곡들이 철새들의 밥이 되었다. 다만 금강하굿둑을 철새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일부 전문가는 낙곡률의 감소와 함께 상류의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새들의 은신처가 줄어든 점을 꼽기도 한다.
 

물론 예전에도 천수만과 금강을 버리고 남해안으로 ‘직항’하는 가창오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가창오리는 천수만, 금강하굿둑, 전남 영암호·고천암 등 대규모 서식지를 중심으로 주변의 작은 저수지를 오갔다.

 

겨울이 깊어가면서 호수가 얼고 해당 지역의 낙곡이 부족해지면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례로 월동지를 옮기는 게 정석이지만, 그때그때의 기후와 먹이조건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경로를 바꾸기도 한다. 이정식씨가 말했다. “천수만에서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천수만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지만, 옛날에도 전체의 반절은 바로 남해안으로 왔어요.”
 

군산시1.jpg » 가창오리떼는 해질녘 금강호 상공을 잠깐 화려하게 장식하곤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사진=군산시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한 가창오리의 월동지이지만 줄곧 그래왔던 건 아니다. 일제강점기 기록을 살펴보면, 가창오리는 오히려 일본 서남부 월동지에서 한해 5만마리가 포획될 정도로 일본에서 흔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1000마리만 월동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일본 개체수는 급감했다.

 

한반도는 그저 잠깐 통과하는 지역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1984년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 5000마리의 월동군이 발견됐고 그 이후 천수만, 금강하굿둑 등 한반도 서남해안이 최대 월동지로 바뀐 사실이 확인됐다.
 

가창오리는 주민들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천수만과 금강은 해질녘 가창오리 군무를 보는 관광지로 이름을 떨쳤다. 두 곳은 가창오리 수십만마리가 ‘그림’을 만드는 흔치 않은 지역이었다. 충남 서산시와 전북 군산시는 매년 철새축제를 열고 있다.
 

천수만과 금강의 탐조가들은 뒤늦게 가창오리가 왔다는 사실을 듣고 한시름을 놓았다. 아예 한반도에 오지 않은 것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이나 중국에서 겨울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천수만과 금강에서 계속 소식이 끊기고 전체 개체수도 줄어들면, 다른 나라로 겨울 터전을 옮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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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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