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 직전 왜 옷을 벗어버릴까

조홍섭 2013. 01. 04
조회수 47425 추천수 1

항온동물에게 추위는 기회이자 '죽음의 덫'

알래스카 딱정벌레는 영하 60도 거뜬, 사람은 체온 2도만 떨어져도 저체온증

 

 Adolph Northen_Napoleons_retreat_from_moscow.jpg » 나폴레옹 군대는 1812년 러시아의 동장군 앞에서 수많은 동사자를 남겨두고 패퇴했다. 그림=아돌프 노던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후퇴>, 위키미디어 코먼스

 

항온동물인 인간은 추위에 매우 약하다. 체온이 2도만 떨어져도 저체온증이 시작된다. 열이 쉽게 빠져나가는 물속에서는 더 취약하다. 10도는 땅 위에선 버틸 만한 온도이지만 그런 물에서 1시간만 있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빙점의 물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타이타닉호 사고 때 물에 빠진 사람들은 15~30분 만에 대부분 사망했다.
 

하지만 영하의 물속에서 거뜬히 살아가는 물고기가 있다. 남극이빨고기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바다에 사는 물고기이다. ‘메로’라고도 불리는 파타고니아이빨고기와 사촌쯤 된다. 길이 2m, 무게 150㎏에 50살까지 사는 이 물고기는 수심 2000m의 차고 캄캄한 심해에서 6초에 한번씩 심장을 박동하며 느릿느릿 산다.
 

Dissostichus mawsoni_Dmawsoni_Head_shot.jpg » 항동결 단백질을 이용해 영하의 바닷속에서 살아가는 남극이빨고기.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Caml Ice Fish_British Antarctic Survey_caml-ice-fish-111211-02.jpg » 항동결 단백질을 이용해 남극 바다에 서식하게 된 남극암치과의 물고기. 사진=영국남극조사단

 

이 물고기의 몸에는 항동결 단백질이 있다. 빙점 이하 온도가 치명적인 까닭은 몸속의 수분이 얼면서 세포 안 용액의 농도가 짙어지거나 세포막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단백질은 얼음 결정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거나 얼음이 생기더라도 큰 덩어리로 뭉치지 못하도록 해준다.
 

흔히 얼음이 얼지 않도록 하려면 빙점을 낮추는 방법을 쓴다. 눈 온 비탈의 결빙을 방지하기 위해 뿌리는 제설제나 자동차의 부동액은 액체에 ‘소금기’를 넣어 어는 온도를 낮추는 보기이다.
 

만일 이런 물질을 생물체 안에 넣는다면 독성과 높아진 세포내 농도 때문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항동결 단백질은 자동차 부동액보다 훨씬 차원이 높다. 극히 적은 양의 특수 단백질로 얼음 결정 표면의 구조를 바꾸어 결빙을 막는다.

 

항동결 단백질의 존재는 북극 물고기에서 이미 1950년대에 알려졌지만, 분자 차원의 원리를 규명하는 작업은 요즘 한창이다. 항동결 단백질 하면 '냉동 인간'을 떠올리는 이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이식용 장기의 보관시간을 늘리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세포가 살아있는 상태로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성공적인 장기이식에 가장 중요하다. 이밖에 작물의 냉해 방지. 추운 바다에서의 물고기 양식, 냉동식품 보관기간 연장 등에도 쓰일 수 있다.

Inside an ice pore, gel-like mucus_stained blue to be visible_ clings to an individual diatom of sea-ice algae..jpg » 극지방 빙산의 틈에는 규조류가 점액 형태의 항동결 물질(푸른색)을 분비해 그 속에서 갈아간다.

 

항동결 단백질을 보유하는 생물은 남·북극의 물고기 말고도 곤충, 박테리아, 곰팡이, 빙산 틈바구니에 사는 규조류 등에서 발견됐다. 포유류에도 이 단백질이 있어 세포의 동해를 막는다는 보고가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는 동물은 곤충이다.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의 추운 지방에 사는 희귀한 나비인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는 한겨울에 알에서 깨어나는데 항동결 물질 덕분에 영하 27도에도 살아남는다.(■ 관련기사: 영하 27도에 애벌레 꼬물꼬물, 붉은점모시나비 생활사 밝혀져)

아마도 추위를 이기는 챔피언은 알래스카 딱정벌레일 것이다. 이 딱정벌레는 어른벌레 상태로 영하 60도까지 견딘다. 특히 다른 동물과 달리 항동결 물질이 단백질이 아닌 당분과 지방산으로 이뤄진 ‘자일로마난’이란 전혀 새로운 물질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Todd Sformo and Franziska Kohl_alaskan beetle1.jpg » 알래스카의 혹한을 이기고 나무 틈바구니에서 겨울을 나는 거저리과의 딱정벌레 우피스 세람보이테스. 사진=토드 스포르모, 프란지스카 콜(왼쪽), 러시아과학아카데미 동물연구소(오른쪽)

 

이 곤충은 산불로 그을린 자작나무 둥치에서 번식하는데, 산불을 통제하면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남극이빨고기가 속한 남극암치과의 물고기도 남극이 따뜻하던 시절에 살던 종이 수백만년 동안 추위에 적응해 100여종으로 분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최근 지구온난화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급격하게 수온이 변하면 항동결 단백질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사람 등 포유류는 체온을 유지한 덕분에 대부분의 변온동물이 포기한 추운 곳을 정복해 나갔다. 하지만 체온 유지에 실패하는 순간 치명적 위기가 찾아오는 건 피할 수 없다. 추위는 항온동물에게 도전의 기회이지만 죽음의 덫이 될 수 있다. 강추위에 맨살을 노출하거나 찬물에 손을 담글 때 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은 몸이 그만큼 큰 위험을 느낀다는 뜻이다.
 

저체온 현상이 심각해지면 사람은 핵심 장기로만 혈액을 보내 파랗게 질리다가 나중엔 뇌 기능마저 손상돼 환각과 기억상실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동사자 상당수는 혼란에 빠져 옷을 벗어 던진 상태로 발견된다.

 

James Hubbard.jpg » 상당수 동사자는 죽기 전 옷을 벗어버리는 역설적인 행동을 한다. 사진=제임스 허바드

 

동사자의 20~50%에서 발견되는 옷 벗기 행동은 체온 상실에 맞선 우리 몸의 마지막 몸부림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체온이 떨어지면 뇌와 심장 등 중요 장기 이외에 몸 표면에 넓게 분포하는 말초혈관을 수축해 그리로 가는 혈액을 줄여 열 손실을 막으려 한다. 말하자면 몸 표면을 단열층으로 활용해 핵심 기관을 보호해 살아남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말초혈관을 수축하려면 근육이 경직돼야 하고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피부로 공급되는 혈액이 줄어든 상태에서 근육의 긴장이 계속되면 에너지가 고갈되는 상태가 온다. 근육이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되고 모세혈관이 갑자기 확장되면, 몸속의 더운 피가 한꺼번에 피부로 몰리면서 사람은 갑자기 덥다고 느끼고 되어 옷을 벗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열을 잃고 나면 저체온증이 더욱 심해져 사망으로 이어진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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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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