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난파선에서 발견한 코끼리 남획의 증거

조홍섭 202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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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존된 상아 100개 유전자 분석…17개 집단 계통서 사라져

el1.jpg » 약 500년 전 포획된 아프리카코끼리 상아가 난파선에서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다. 유전자를 채취해 당시의 생태를 밝혔다. 애슐리 쿠투 제공.

2008년 남아프리카 나미비아의 한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16세기 포르투갈 난파선이 발견됐다. 다량의 금화, 은화와 함께 100여 개의 완벽하게 보존된 상아가 나왔다.

광산 창고에 보관돼 온 이 상아를 고고학자, 유전학자, 생태학자 등이 힘을 합쳐 분석한 결과 상아 무역의 실체는 물론 상아를 얻기 위해 코끼리를 대량으로 죽인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알리다 플레이밍 미국 일리노이대 어배나-샴페인 캠퍼스 박사후연구원 등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이 상아는 전혀 다른 곳에 살던 코끼리 무리 17개에서 온 것으로 4개 무리 만이 현존 코끼리 계통으로 이어지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다”고 밝혔다.

el2.jpg » 난파선(Bom Jesus)과 포르투갈의 아프리카 무역항(붉은 점) 위치. 이 무역항에서 상아를 모아 리스본∼인도 무역선에 실었다. 플레이밍 외 (2020)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당시 상아와 향신료를 거래하는 유럽∼아프리카∼인도 항로는 가장 돈벌이가 쏠쏠한 무역로였다. 포르투갈은 서아프리카의 여러 항구에서 수집한 상아를 리스본에서 모아 인도로 가져갔다. 

1533년 무역선 봄 제주스(‘좋은 예수’라는 뜻) 호는 40t의 화물을 싣고 가다 나미비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상아는 잘 보존돼 100개 가운데 44개에서 디엔에이(DNA)를 채취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이유를 플레이밍 박사는 “침몰선에서 상아는 동괴와 납괴 등 무거운 화물에 눌려 바다 밑에 박혀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 파손을 피할 수 있었다”며 “나미비아 연안을 흐르는 아주 찬 해류도 손상을 막아 주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상아는 2∼33㎏까지 크기가 다양했다. 연구자들은 “수컷뿐 아니라 암컷과 어린 개체까지 무차별로 사냥한 증거”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el3.jpg » 나미비아의 다이아몬드 광산 창고에 보관된 봄 제주스 호에서 발견된 상아. 애슐리 쿠투 제공.

유전자 분석 결과도 놀라웠다. 코끼리는 자신의 영역에서 모계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모계유전을 하는 미토콘드리아를 분석하면 어느 곳에 사는 무리인지 알 수 있다. 17개 무리 가운데 13계 무리는 현생 코끼리 유전체에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연구에 참여한 알프레드 로카 박사는 “이들 코끼리의 계통이 서아프리카에서 사라진 이유는 뒤이은 세기에 사냥과 서식지 파괴로 분포지의 95% 이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아의 주인은 모두 둥근귀코끼리였다. 아프리카 전역에 분포하는 사바나코끼리와 달리 이 종은 서아프리카와 콩고분지의 우림에 주로 분포하는 상대적으로 작고 깊은 숲 속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종이다(▶초콜릿의 눈물…‘상아 해안’에 코끼리 대신 카카오 농장).

el4.jpg » 둥근귀코끼리는 서아프리카와 콩고분지 일대의 우림에 주로 분포하는 멸종위기종이다. 니컬러스 조지아디스 제공.

상아에 포함된 질소와 탄소의 동위원소를 분석해 당시 이들이 어떤 종류의 먹이를 먹었는지를 분석했더니 열대우림뿐 아니라 사바나에서도 먹이를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에 따라 우림에 살다가 사바나로 이동하기도 했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서아프리카에서 둥근귀코끼리가 숲에서 나온 이유는 사바나코끼리가 19∼20세기 남획으로 사라졌기 때문으로 생각했다”며 “이번 연구로 서아프리카의 둥근귀코끼리는 사바나코끼리가 사라지기 전 적어도 16세기부터 숲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논문에 적었다. 

공동 연구자인 애슐리 쿠투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박사는 “이번 연구로 서아프리카 둥근귀코끼리가 어떤 생태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고 이것은 야생에서 이 동물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둥근귀코끼리는 서식지 파괴와 밀렵으로 3만 마리 미만이 남아있으며 세계자연보전연맹의 멸종위기종 목록에 취약종으로 올라 있다.

인용 논문: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0.10.08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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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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