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낚시어 여을멸, 공기 물고 심해로 가는 까닭

조홍섭 202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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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1m 바닷가 살다 번식기 1만 마리 떼 지어 수심 140m 산란 여행

b1.jpg » 여을멸은 전 세계 열대바다에 널리 분포하며 주로 수심 1m 이내에 살지만 번식은 심해에서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브라이언 그래트윅,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여을멸’은 낚시인이면 꼭 낚아보고 싶은 ‘꿈의 물고기’ 가운데 하나다. 워낙 경계심이 강한 데다 속도와 힘이 뛰어나 바늘에 걸리더라도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 한다.

주로 따뜻하고 얕은 열대바다에 사는 길이 80㎝ 무게 6㎏까지 자라는 크지 않은 물고기이다. 은빛 비늘이 얕은 물 속에서 어른거리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아 ‘유령’이란 별명으로 불린다.

여을멸의 신비로운 번식행동이 밝혀졌다. 평생 수심 1m 이하의 얕은 바다에서 새우 등 무척추동물을 잡아먹다가도 가을철 번식기가 되면 일제히 사라진다.

여을멸의 번식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매튜 애지미언 미국 플로리다 애틀랜틱 대 박사 등 연구자들은 이 물고기의 총배설강 속에 소형 음향 추적장치를 삽입했다. 연구자들은 배를 타고 이 장치가 3초마다 내는 신호음을 들으며 추적한다. 신호음과 함께 물고기가 있는 곳의 수심과 수온 등의 정보가 전달된다.

b2.jpg » 서식지에서 최고 80㎞ 떨어진 연안에 수천 마리가 모인 여을멸. 이들은 해 질 녘 돌고래처럼 수면 위로 뛰어올라 공기를 머금고 깊은 바다로 잠수해 들어갔다. 톰 헨실우드 선장 제공.

과학저널 ‘해양 생물학’ 최근호에 실린 이들의 논문을 보면 여을멸은 산란기가 되자 얕은 해안을 떠나 80㎞ 떨어진 연안의 한 수역에 5000∼1만 마리의 큰 무리를 이뤘다. 보통의 연안 어종은 산호초 부근에 이렇게 모여 산란한다.

그러나 여을멸은 달랐다. 해 질 녘 무리는 갑자기 돌고래처럼 물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약 10분 동안 계속된 이런 행동을 통해 여을멸은 부레 가득 공기를 머금었다.

이어 대륙붕 가장자리까지 이동한 물고기들은 갑자기 가파른 대륙붕 사면을 넘어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제1 저자인 스티븐 롬바르도 박사과정생은 “음향 추적장치를 실시간으로 청취했는데 여을멸은 엄청난 수압을 이기고 수심 100m에 도달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45분 뒤에는 138m 수심에 이르렀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b3.jpg » 여을멸의 은빛 비늘.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이 확보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여을멸 무리는 수심 100m에서 2시간 이상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무언가를 찾는 행동을 했다. 마침내 무리는 수심 140m 가까이 더 깊이 내려가더니 2분 안에 수심 70m까지 빠른 속도로 솟아오른 뒤 산란에 돌입했다. 

여을멸 암·수는 공처럼 뒤엉켜 산란과 방정을 거듭했다. 이들은 왜 이 수심을 택했을까. 또 왜 그 두배 깊이까지 내려갔다 왔을까.

연구자들은 산란 지점이 바닷물의 수온과 밀도가 급변하는 ‘수온약층’과 ‘밀도 약층’ 바로 위라는 데 주목했다. 밀도가 급변하는 경계층에는 유생의 먹이인 플랑크톤이 축적되고 유속과 소용돌이가 적다. 여을멸 무리는 알에서 깬 유생이 먹이가 많고 안정된 환경에서 퍼져나갈 수 있는 따뜻한 물을 찾아다녔던 셈이다.

그렇다면 140m 심해로 잠수한 이유는 뭘까. 연구자들은 “깊은 수심에서 빠르게 떠오르면서 압력 차이로 생기는 가스를 이용해 알과 정자의 방출에 도움을 받는 것 같다”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b4.jpg » 여을멸은 1억년 전부터 현재의 모습과 비슷했던 고대 물고기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바다표면에서 부레에 공기를 채웠다 해도 10기압이 넘는 깊은 바다에서는 찌그러들기 마련이다. 연구자들은 여을멸의 부레 표면에서 부레가 수압에 찌그러들지 않도록 하는 특수 세포가 있다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이런 세포는 뱀장어에서도 발견된다. 명태처럼 많은 바닷고기가 깊은 바다에 살다가도 산란기에 얕은 곳으로 나오지만 뱀장어와 여을멸은 얕은 곳에서 살다 번식기에 심해로 이동한다.

여을멸은 지난 1억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비결은 이런 번식행동 덕분인지 모른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그러나 평생 한 번 산란여행을 하는 뱀장어와 달리 여을멸은 한 달에도 몇 번씩 한다.

b5.jpg » 여을멸은 대서양과 카리브 해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물고기이다. 시장가치는 플로리다에서만 연간 4억6500만 달러에 이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번 발견은 대서양과 카리브 해에서 경제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여을멸 보전에 기여할 것으로 연구자들은 기대했다. 애지미언 박사는 “번식에 관한 정보는 ‘위협 근접종’인 이 물고기의 보존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을멸 낚시산업은 플로리다에서만 4억6500만 달러가 넘는 규모이다. 국립생물자원관의 한반도의 생물다양성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여을멸은 부산, 제주, 거제에 분포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인용 논문: Marine Biology, DOI: 10.1007/s00227-020-03799-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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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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