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 떼죽음, 신생대 동굴 미스터리 풀렸다

조홍섭 2013. 05. 02
조회수 52265 추천수 1

검치호랑이 등 육식동물 화석만 발견된 스페인 동굴 분석 결과

먹이 찾아 왔다 못 빠져나와 죽은 것으로 추정, 연쇄 죽음의 '덫' 기능

 

Mauricio Antón_s.jpg » 바탈로네스-1 동굴에 빠진 코뿔소를 검치호랑이 두 마리가 먹으려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그림=모리시오 안톤  

 

1991년 스페인 마드리드 교외에 위치한 점토 모양의 광물인 해포석을 캐던 광산에서 다수의 동물 화석이 발견됐다. 2008년까지 이곳에선 1만 8000여 점의 화석이 발굴됐는데, 신생대 포유류 화석, 그 중에서도 육식동물 화석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이 출토됐다.
 

특히, 바탈로네스-1 동굴에서는 주로 육식동물의 화석이 쏟아져 나와 그 원인이 무언지에 관심이 쏠렸다. 스페인과 미국 고생물학자들은 이 화석과 매장지를 정밀 분석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55851.jpg » 동굴 속에서 발견된 신생대 하이에나의 화석. 사진=M. 솔레다드 도밍고 외, <플로스 원>

 

일반적으로 포유류 가운데 초식동물은 육식동물보다 10배쯤 많다. 이런 경향은 화석 기록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초식동물의 화석이 육식동물 화석보다 10배 이상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바탈로네스-1에서는 발견된 화석의 98%가 육식동물이었다. 10개 분류군의 포식동물이 흔적을 남겼는데, 검치호랑이 2종, 고양이과 동물 2종, 지금은 완전히 멸종한 ‘곰개’, 하이에나, 레드판다, 족제비가 1종씩, 그리고 스컹크과의 동물이 2종 나왔다.
 

검치호랑이.jpg » 동굴에서 발견된 검치호랑이 머리뼈 화석. 막대는 5㎝를 가리킨다. 사진=M. 솔레다드 도밍고 외, <플로스 원>

 

도대체 이 동굴에선 무슨 이유로 육식동물만 화석으로 남게 된 것일까.
 

연구자들은 우선 이 동굴의 독특한 형태에 주목했다. 이 동굴은 우물처럼 깊은 구덩이 형태를 하고 있다. 석회암 지대의 동굴처럼 점토질 퇴적층에 물이 침투해 흐르면서 흙을 깎아내 구멍이 생긴 이른바 ‘파이핑’ 현상의 결과였다. 이 지역은 퇴적층의 광물 특성 때문에 파이핑으로 생긴 구덩이가 오랫동안 지속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뉴욕 미국자연사박물관 곰개 표본_640px-Amphicyon_ingens.jpg » 동굴에서 발견된 개 모양의 곰 화석. 4600만~1800만년 전 살다 멸종한 대형 포식동물이다. 사진=미국자연사박물관,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구덩이 바닥에서 육식동물의 화석이 나왔는데,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동물의 주검이 화석이 되는 과정을 고려해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하나씩 검토해 나갔다.
 

먼저, 다른 곳에서 죽은 뒤 홍수에 쓸려 이 동굴에 모였을 가능성이다. 연구진은 당시 퇴적층의 화학성분을 분석한 결과 산소가 충분한 상태, 곧 여러 동물 주검이 한꺼번에 썩는 상황이 아니었음을 밝혔다.
 

동굴을 먹이를 먹고 새끼를 기르는 곳으로 사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동굴에서는 먹이인 초식동물의 뼈가 다량 출토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으론 구덩이에 사고로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무작위로 발생하는 사고라면 초식동물이 많아야 하고 또 육식동물도 연령대가 다양해야 한다. 그러나 화석기록은 육식동물이 대부분인데다 그것도 한창때의 성체가 대부분이었다.
 

연구진은 화석의 보존상태 등 여러 요인을 검토한 끝에 이들 육식동물이 자발적으로 동굴 속에 갇혀 죽은 것으로 결론지었다. 육식동물이 먹이를 찾아 이 동굴 속으로 찾아 들어왔지만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죽게 됐다는 것이다. 애초 동굴의 들머리는 잘 보여서 초식동물은 대부분 이를 회피했을 것이다.
 

55852.jpg » 바탈로네스-1 동굴에서 육식동물이 매몰돼 화석이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 A. 포식동물이 갇히거나 죽은 동물 또는 물을 찾아 동굴 속으로 찾아들어간다. B. 주기적인 홍수가 동굴 들머리를 막기도 하고 동물의 주검을 덮는다. 육식동물이 반복적으로 찾아온다. C. 퇴적층이 쌓아 동물의 주검은 화석으로 바뀐다. 상층부에는 초식동물이 죽어 생긴 화석이 생긴다. D. 동굴은 모두 채워진다. 사진=M. 솔레다드 도밍고 외, <플로스 원>

 

물론 우연히 구덩이에 빠진 동물도 있을 수 있다. 연구진은 동굴 속에서 발견된 코뿔소를 그런 사례로 보았다.
 

검치호랑이나 하이에나는 동굴에 빠진 코뿔소를 먹기 위해 동굴 속으로 들어왔다 나갈 길을 찾지 못해 죽었을 것이다. 또는 동굴에 들어갔다 빠져나오지 못해 쇠약해지거나 죽은 다른 포식동물을 잡아먹기 위해 육식동물이 잇따라 동굴 속으로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다. 동굴은 천연 함정 구실을 했던 것이다.
 

조사 결과 건강 상태가 나쁜 상태에서 동굴에 갇힌 육식동물은 없었고, 동굴에 추락해 숨진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진은 건조기에 물을 찾기 위해 동굴에 들어왔을 가능성과 함께 동굴 안 공기나 물에 독성이 포함됐을 가능성 등도 추가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동굴은 1000만~900만 년 전 신생대 마이오세 후기에 형성됐으며, 육식동물이 죽은 이후 수차례의 홍수로 인해 메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논문은 미국 공공과학도서관이 발간하는 온라인 공개 저널 <플로스 원> 2일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omingo MS, Alberdi MT, Azanza B, Silva PG, Morales J (2013) Origin of an Assemblage Massively Dominated by Carnivorans from the Miocene of Spain. PLoS ONE 8(5): e63046. doi:10.1371/journal.pone.0063046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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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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