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 수사자는 '나쁜 남자' 아니다

조홍섭 2013.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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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렝게티와 달리 크루거 수사자는 암컷 못지않은 사냥 성공률 보여

암컷은 트인 곳서 협동사냥, 수컷은 덤불 속에서 들소, 임팔라 사냥 밝혀져

 

lion2.jpg » 숲과 덤불이 있는 곳에 사는 수사자는 암컷 못지않게 사냥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사자의 사냥은 구보로 시작된다. 멀리서 먹이 동물을 보고 빠른 속도로 접근한 다음에는 집요하게 목표에 다가서는 ‘스토킹’에 접어든다. 눈을 먹이에서 떼지 않은 채 몸은 최대한 낮추고, 마치 아이들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목표가 이쪽을 바라보면 얼어붙고 고개를 돌리거나 풀을 뜯으면 다가선다. 거리가 20~30m로 좁혀지면 돌진해 단숨에 상대의 목을 물어 제압한다. 가속력은 뛰어나지만 지구력이 부족한 사자의 사냥술이다.
 

사자는 고양이과 대형 포유류 가운데 유일한 사회적 동물이다. 성긴 그물처럼 먹이 떼를 둘러싸 공격하기 때문에 사자 무리가 클수록 사냥 성공률은 높아진다. 얼룩말, 누, 임팔라, 젬스복 등 먹이 동물은 갑작스런 사자의 공격을 받아도 대개 재빨리 달아난다. 하지만 다가오는 사자를 뒤늦게 보고 허둥대거나, 장애물에 부닥치거나 발을 헛디뎌 몸의 균형을 잃는다면, 어리거나 늙거나 병들어 몸이 굼뜬 개체처럼 사자의 밥이 되고 만다.
 

Hunting_lionesses_ngorongoro3.jpg » 사냥의 시작. 성긴 그물처럼 먹이를 둘러싸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선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kenya masaimala_Dinner_time_-_Flickr_-_Lip_Kee.jpg » 몸을 낮춘 채 먹이에 접근하는 스토킹 자세. 사진=립 키, 위키미디어 코먼스

 

Schuyler Shepherd _640px-Serengeti_Lion_Running_saturated.jpg » 먹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암사자. 사진=쉴러 셰퍼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jeffrey sohn_640px-Lions_and_a_Zebra_a.jpg » 사냥한 얼룩말을 먹고 있는 암사자들. 사진=제프리 손,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사회적 사냥의 주역은 암컷이다. 수컷은 사냥이 끝난 뒤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힘들여 사냥한 암컷을 쫓아내고 먹이에 먼저 입을 댄다. 물론  표범 등 다른 육식동물의 사냥감을 빼앗기도 하고 아프리카버팔로나 기린 같은 대형 먹이 사냥에 참여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가 탄자니아 세렝게티 국립공원의 대평원에서 촬영한 자연다큐멘터리에서 보는 수컷은 게으르고 욕심 많은 모습이다.
 

그런데 세렝게티 대평원이 아닌 숲과 덤불이 곳곳에 있는 남아프리카의 사바나에 있는 수사자는 다르게 행동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이곳에서 수사자는 암사자 못지않게 부지런히 사냥하며 성공률도 비슷하다.
 

펀스턴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대학 동물학자들은 크루거 국립공원에서 광범한 현장 조사를 통해 암사자가 주로 열린 공간에서 중·소형 초식동물인 얼룩말과 누를 주로 사냥하는 데 비해 수사자는 버팔로와 덤불 속에 숨어있는 임팔라를 많이 잡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Joachim Huber _640px-Ngorongoro_Crater,_Tanzania_(2288738372).jpg » 암컷처럼 몸은 민첩하지 않은 수컷은 은폐된 곳에서 사냥을 많이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요아힘 후버, 위키미디어 코먼스

 

스콧 로아리 미국 카네기과학연구소 동물학자 등 미국과 남아공의 연구자들도 최근 사자 7마리의 목에 원격추적장치를 부착한 뒤 이들의 서식지 일대를 광선 레이더(라이다)를 부착한 비행기로 훑으면서 지형과 식생의 3차원 지도를 작성했다. 이를 이용해 사자가 어떤 장소에서 어떤 먹이를 사냥했는지 정밀하게 분석했더니 열린 공간에서 무리지어 사냥하는 암컷과 달리 수사자는 주로 매복을 통해 버팔로 등을 사냥하며 사냥 성공률도 암컷과 비슷했다. 이제까지 숲 속 수사자의 사냥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위험하고 힘들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lion.jpg » 스콧 로아리 등 연구자들의 실험 결과. 빗금 부분은 암컷을 가리킨다. 숫자는 시야 거리(m). 수컷은 쉴 때는 트인 곳을 좋아하지만 사냥은 시야가 짧은 숲속에서 주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스콧 로아리 외, <동물 행동>

 

사자는 암컷과 수컷이 매우 다른 대표적 동물이다. 수컷의 몸무게가 최고  250㎏로 암컷의 곱절에 가깝다. 게다가 야생의 수사자는 10년 이상 사는 개체가 드물 만큼 짧고 거친 삶을 산다. 버팔로 같은 위험한 먹이를 사냥하는데다 세력권을 놓고 다른 수컷과 격렬한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로 거칠 것 없는 삶을 누리는 것은 무리의 우두머리 자리를 차지하는 3~4년 동안일 뿐이다. 그러니 수사자에게 게으르고 탐욕스런 남성우월주의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건 지나쳐 보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Lion hunting behaviour and vegetation structure in an African savanna
Scott R. Loarie, Craig J. Tambling, Gregory P. Asner

Animal Behaviour
http://dx.doi.org/10.1016/j.anbehav.2013.01.01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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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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