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은 어떻게 ‘남성’을 잃어버렸나

조홍섭 2013. 06. 07
조회수 71013 추천수 0

오리 등 물새와 타조 등 원시조류 뺀 97% 수컷 외부 생식기 축소 또는 사라져

배아 단계서 '세포 자살'  신호 작동해 생식기 '싹' 없어져, 암컷 통제 강화 위한 진화 설명

 

Andrei Stroe_640px-RO_BZ_Berca_Chicken_copulation.jpg » 교미하고 있는 닭. 체내수정을 하는 일반적인 동물과 달리 닭 등 대부분의 새 수컷의 생식기는 흔적만 남았거나 아주 사라졌다. 사진=안드레이 스트로에, 위키미디어 커먼스

 

동물진화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의 하나는 대부분의 새 수컷에게 생식기가 없거나 아주 작게 축소됐다는 사실이다. 돌출한 생식기는 정자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조류의 97%인 1만 종에 가까운 조류의 수컷에게서 외부 생식기가 사실상 없어진 것은 무엇 때문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애나 헤레라 플로리다 대 생물학자 등 미국과 영국 연구자들이 이런 의문을 발달 단계에서 해명한 논문이 7일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렸다.
 

대부분의 새에서 수컷의 돌출 생식기는 완전히 퇴화했다. 그러나 닭, 메추라기, 꿩 등의 육상조류는 수컷의 생식기 축소돼 흔적만 남아있다.
 

반면 닭 등 육상조류와 분류학적으로 가까운 오리, 고니, 거위 등 물새류 수컷은 생식기가 완전하게 발달해 있다. 또 에뮤, 타조, 키위 등 일찍 분화된 집단도 잘 발달한 수컷 생식기를 지닌다.

 

PIIS0960982213005034_fx1_lrg.jpg » 조류의 생식기 발달 비교. 사진=애나 헤레라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phallus.jpg » 조류 수컷의 생식기 비교. 왼쪽부터 닭, 메추라기, 오리, 거위. 닭과 메추라기 사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돌기가 축소된 생식기이다. 사진=애나 헤레라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연구진은 수정란인 달걀과 오리알이 발달하는 과정을 자세히 조사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닭이나 오리나 나중에 생식기로 자라날 부위가 처음에는 똑같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식기의 ‘싹’이 오리는 정상적으로 발달하지만 닭은 며칠 안에 성장을 멈추고 곧 사라져 버린다.
 

연구진은 처음 생식기를 발달시키는 무언가가 오리에겐 있고 닭에게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어떤 단백질이 닭에게만 ‘죽음의 신호’를 내보냈던 것이다. 이 신호는 생식기를 이룰 부위의 세포가 자살하도록 이끄는 것이었다. 연구진은 그것이 뼈 형성 단백질 4(Bmp4)임을 밝혔다.
 

이 단백질은 세포의 죽음(아포토시스)을 일으키는 인자로 작용해, 나중에 생식기로 자랄 세포를 없애는 구실을 했다. 실험에서 이 인자 세례를 받은 오리의 알에선 생식기가 자라지 않는 것이 확인됐다.
 

penis_A.M. Herrera and M.J. Cohn, University of Florida.jpg » 닭 배아(유정란)에서 수컷의 생식기로 자라날 부분(붉은색). 처음엔 오리와 마찬가지로 발달하나 곧 세포 자살로 사라진다. 사진=애나 헤레나 외, <커런트 바이올로지>

 

이번 연구로 수탉의 생식기가 ‘어떻게’ 축소됐는지는 밝혀졌지만 ‘왜’ 그런지 드러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논문은 여러 가설을 소개했다.
 

암탉이 생식기가 작은 수컷을 선택함으로써 수컷에 대한 통제력을 높였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다. 돌출한 생식기가 없는 새들은 ‘배설강 키스’라고 불리는 교미 행동을 한다. 암컷과 수컷이 배설강을 맞대고 정액을 전달하는 짧고 어설픈 동작이다. 효과적인 짝짓기를 위해선 암컷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반면 돌출된 생식기를 지닌 오리는 암컷의 협조가 필요 없다. 일부 오리는 자기 몸보다 긴 포도주 따개처럼 구불구불하게 감긴 생식기를 지녔는데, 원하지 않는 암컷에게 교미를 강제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이런 성 선택 가설 이외에 다른 설명도 제시했다. 생식기의 축소가 새들이 진화하면서 일어난 몸의 변화의 일종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깃털 형성, 이빨 상실, 부리 형성은 주요한 새들의 특징인데, 모두 Bmp4 단백질과 관련이 있다. 결국 3%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들은 하늘을 나는 월등한 변화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수컷의 돌출 생식기를 잃었다는 설명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errera et al., Developmental Basis of Phallus Reduction during Bird Evolution, Current Biology (2013), http://dx.doi.org/10.1016/j.cub.2013.04.06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큰코영양 20만 떼죽음 원인은 세균 감염큰코영양 20만 떼죽음 원인은 세균 감염

    조홍섭 | 2018. 01. 19

    2015년 전체 62%인 20만마리 떼죽음혹한 뒤 고온다습 기상이 면역약화 불러세계적 멸종위기종인 큰코영양이 떼죽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2015년 5월 중순 카자흐스탄 초원지대를 둘러본 수의학자들은 경악했다. 이제까지 간혹 벌어진 떼죽음과는 차...

  • 벌새 깃털 닮은 ‘무지개 공룡’ 중국서 발굴벌새 깃털 닮은 ‘무지개 공룡’ 중국서 발굴

    조홍섭 | 2018. 01. 17

    벌새와 깃털 색소체 구조 유사1억6천만년 전 오리 크기 공룡새들이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비결은 깃털에 있다. 깃털의 색소체 구조 덕분에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빛깔로 보이기 때문이다. 공작의 꼬리나 벌새의 머리, 비...

  • 물고기도 고통에 빠져 모르핀을 찾는다물고기도 고통에 빠져 모르핀을 찾는다

    조홍섭 | 2018. 01. 15

    단순 반사행동 넘어 통증인지 확인, 학계는 이미 합의…정책 대응 시작돼한국 ‘산천어축제' 열풍에 빠진 사이 영국, 다른 가축 수준의 복지 기준 적용양식장에서 기른 산천어, 송어, 빙어를 풀어놓고 얼음낚시나 맨손으로 잡는 겨울축제가 대표적인...

  • 불나면 불씨 옮겨  사냥하는 ‘불새' 있다불나면 불씨 옮겨 사냥하는 ‘불새' 있다

    조홍섭 | 2018. 01. 14

    불붙은 나뭇가지 다른 곳 옮겨 도망치는 쥐·도마뱀 등 사냥원주민 불놓기 여기서 배웠나, 노래와 전통의식에 들어있어덤불과 풀로 덮인 열대 사바나의 초원지대에 들불이 나면 동물들은 불꽃과 연기를 피해 혼비백산 달아난다. 일부 포식자들에겐 뛰...

  • 꽃보다 나비가 7천만년 먼저 진화했다꽃보다 나비가 7천만년 먼저 진화했다

    조홍섭 | 2018. 01. 11

    2억년 전 가장 오랜 나방 비늘화석 발견수분 섭취 위해 이미 긴 대롱 입 지녀 나비와 꽃은 서로를 돕는 대표적인 공생 생물이다. 나비는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고 대신 영양가 풍부한 꽃꿀을 먹는다. 나비와 나방은 꽃꿀을 효과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