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에서 찾은 ‘첨단 반사망원경’…가리비의 비밀

조홍섭 2017. 12. 01
조회수 6771 추천수 0
좁쌀 크기 눈 안에 수백만개 거울
이중 망막으로 선명한 상 확보

s1.jpg » 가리비의 촉수 일부에 검은 점처럼 보이는 것이 눈이다. 모두 200개에 이르는 이 눈이 합쳐 반사망원경처럼 작동하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리 존스, 하벤 잠수 서비스 제공.

세계 전역에 분포하는 가리비는 조개 가운데 특별하다. 다른 조개들이 땅속에 묻혀 있거나 바위 등에 들러붙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데 반해 대부분의 가리비는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자유로운 존재다. 불가사리 같은 포식자가 접근하면 물을 일시에 뿜어내 그 반동으로 재빨리 움직인다. 종종 포식자가 닿기도 전에 알아차리고 달아난다.
 
가리비에 다른 조개와 달리 눈이 있다는 사실은 200년 전부터 알려졌다. 가리비가 위·아래 조가비를 살짝 벌리면 외투막에 수많은 촉수가 달린 것이 보인다. 일부 촉수에는 1㎜ 이하의 작은 점 같은 눈이 달려 있는데, 그 수는 약 200개에 이른다. 이 눈으로 포식자를 감지한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그 구조와 원리는 수수께끼였다.

s2.jpg » 가리비 눈을 확대한 모습. 단-에릭 닐손, 룬드대 제공.

벤저민 팔머 이스라엘 바이즈만 과학연구소 박사 등 이스라엘 연구자들은 저온전자현미경이란 첨단 장비를 이용해 가리비 눈의 미세구조를 분석해 작동원리를 찾아냈다고 과학저널 ‘사이언스’ 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조사 결과 가리비의 눈에는 렌즈 대신 거울이 있었다. 나노미터 크기의 사각형 거울 수백만개가 타일을 발라놓은 것처럼 배치된 눈은 “반사망원경과 놀랍게 비슷했다”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우리 눈이 들어오는 빛을 수정체로 조절해 눈 뒤 망막에 상이 맺히도록 하는 카메라라면, 가리비는 빛을 수많은 거울에서 반사해 통합된 전체상을 얻는 반사망원경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s3.jpg » 가리비 눈의 확대 모습(왼쪽). (ⅰ) 각막 (ⅱ) 수정체 (ⅲ) 바깥망막 (ⅳ) 안쪽망막 (ⅴ) 오목거울. 오른쪽은 붉은 네모 부분을 확대한 타일 모습. 팔머 외(2017)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좁쌀 크기인 가리비의 눈을 얼려 잘게 썰어 가면서 그 원리를 찾아냈다. 눈은 각막, 렌즈, 그리고 뜻밖에 이중 망막으로 이뤄졌다. 눈 뒤에는 오목거울이 있는데, 이를 확대해 보니 구아닌 결정이 20∼30층으로 쌓인 모습이었다. 구아닌 결정은 투명하지만, 타일과 타일 사이가 유체로 둘러싸여 있어 타일을 통과한 빛이 굴절되면서 전체적으로는 빛의 방향이 바뀌어 거울 구실을 하는 얼개였다. 두 개의 망막은 각각 피사체의 중앙과 테두리를 감지하는데, 모든 눈에서 얻은 정보는 한 묶음의 뉴런으로 전달돼 전체적인 상을 감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가리비는 왜 200개나 되는 눈을 약 250도 각도로 배치할 필요가 있을까. 연구자들은 “개별 눈의 상에서 초점이 잘 맞는 부위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수의 눈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아마도 가리비는 눈앞의 포식자를 더 잘 파악하고 주변에 있는 바다 밑바닥의 먹이를 탐색하느라 이들 눈을 활용할 것이다. 하지만 가리비가 어떻게 이런 첨단 우주기술을 구사하게 됐는지는 앞으로 규명할 과제로 남았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enjamin A. Palmer et al, The image-forming mirror in the eye of the scallop, Science  01 Dec 2017: Vol. 358, Issue 6367, pp. 1172-1175. DOI: 10.1126/science.aam950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하마 배설물은 강 생태계에 보물일까 재앙일까하마 배설물은 강 생태계에 보물일까 재앙일까

    조홍섭 | 2018. 05. 21

    물고기 주요 먹이지만 건기 오염 축적되만 ‘오염 폭탄’자연스런 현상이었지만 인위적 요인 겹치면 회복 불능몸무게가 1t이 넘어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코뿔소와 함께 가장 큰 초식동물인 하마는 밤 동안 초원지대를 돌아다니며 하루에 50㎏에 이르...

  • 바퀴벌레 무서워? 당신 몸속에 ‘곤충 먹는 유전자’ 있다바퀴벌레 무서워? 당신 몸속에 ‘곤충 먹는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18. 05. 18

    곤충 키틴질 겉껍질 분해 효소 유전자 4종 보유공룡시대 곤충 먹던 흔적, 모든 포유류에 남아곤충은 기후변화와 인구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미래 식량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사람의 곤충 먹기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어서 이미 세...

  • ‘침팬지 침대’는 사람 것보다 깨끗해~‘침팬지 침대’는 사람 것보다 깨끗해~

    조홍섭 | 2018. 05. 17

    매일 나무 위에 새로 짓는 둥지, 세균·벌레 축적 안 돼사람 집은 외부 생태계 차단…침대 세균 35%가 몸에서 비롯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는 공통으로 매일 잠자리를 새로 만든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엮어 받침을 만든 뒤 ...

  • 백두산호랑이 주 먹이는 멧돼지, 겨울엔 절반 차지백두산호랑이 주 먹이는 멧돼지, 겨울엔 절반 차지

    조홍섭 | 2018. 05. 16

    한국표범은 주로 사슴 사냥…두만강 건너 중국 동북부 조사 결과멧돼지와 사슴 주 먹이지만 호랑이는 반달곰, 표범은 수달도 사냥 한 세기 전만 해도 한반도 전역과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에 걸쳐 3000마리 이상이 살았던 아무르호랑이(백...

  • ‘둑중개’는 강마다 달라요…보호종 재지정 시급‘둑중개’는 강마다 달라요…보호종 재지정 시급

    조홍섭 | 2018. 05. 14

    ‘개체수 많다’며 보호종에서 해제…유전연구 결과, 하천별 차이 커보호종 한둑중개는 오히려 유전다양성 8배 높아…생활사 차이서 비롯강원도와 경기도 하천 최상류에 둑중개란 물고기가 산다. 한반도에만 분포하는 고유종으로, 한여름에도 수온이 20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