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은 -5도 안은 20도, 체온으로 ‘난방’

조홍섭 200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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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연하천 첫 ‘생태친화’ 대피소 가보니

“석유난로 땔 때보다 더 따뜻”…‘산맛’ 그대로
열교환기로 탁한 공기 내보내고 찬 공기 덥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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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봄기운이 완연한 날이었지만 지리산 해발 1500m 산악지대는 무릎까지 차는 눈으로 덮여 있었다.

 

저녁이 되자 지리산 주능선을 종주하던 탐방객들이 하나 둘 연하천대피소로 찾아들었다.

 

바깥 기온은 영하 5도. 대피소 안 숙소에 들어가자 한결 따뜻했지만 기온은 10도 정도였다. 그러나 탐방객들이 나무 침대를 빼곡히 채우고 코 고는 소리가 요란할 즈음 실내온도는 20도까지 올라갔다.

 

그렇지만 다른 대피소처럼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음도 냄새도 나지 않았다. 한 겨울 고산지대에서 석유 한 방울 태우지 않고 포근한 잠자리를 만드는 비결은, 체온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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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체와 천장 두께 두배, 창문은 복층유리 이중으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 8~11월 1억5천만원을 들여 지리산에서 가장 낡은 연하천대피소를 생태친화적으로 리모델링했다. 전국에서 처음 시도한 국립공원 대피소의 ‘에너지 전환’ 시도였다. 화석연료를 일체 쓰지 않고 과연 단열과 열교환 기술만으로 겨울을 날 수 있을지가 열쇠였다.

 

숙소 벽은 둔하다 싶을 정도로 두꺼웠다. 벽체와 천장을 이전의 두 배인 200㎜ 두께로 단열처리했기 때문이다. 열이 많이 빠져나가는 창문은 복층유리를 이중으로 달고 창과 벽체 사이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마감했다.

 

이 정도로도 넓지 않은 방은 금세 체온으로 달궈진다. 문제는 후텁지근한 습기와 탁한 공기의 처리다. 환풍기를 달았다간 애써 모아놓은 열이 순식간에 달아난다. 숙소 천장에 설치된 열교환기가 그 해법이다. 이중으로 된 긴 관에서 방안의 더운 공기는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들어오는 찬 바깥 공기에 열을 전달한다. 그러면 밖의 찬 공기는 관을 통해 실내공기 온도로 덥혀진 뒤에야 방안으로 들어오는 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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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광 전지판으로 전기…분뇨·쓰레기로 바이오가스 만들 채비

 

이 대피소를 3년째 관리하고 있는 김병관(47)씨는 “석유난로로 난방하던 때보다 더 따뜻해졌다”고 말했다.

 

아주 추운 날에는 압축한 톱밥으로 만든 우드칩 보일러를 때 열을 보충한다. 나무는 자라면서 축적한 햇빛에너지를 탈 때 내놓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다.

 

건물 옥상에 설치한 13개의 태양광 전지판은 대피소에 필요한 전기를 생산한다. 안개가 많이 끼고 해가 짧은 곳이어서 열흘치 전기를 축전지에 저장해 쓴다.

 

“아직 없지만 냉장고와 세탁기도 돌릴 수 있는 전력이 나온다”고 대피소 직원은 설명했다.

 

그러나 대피소의 본래 기능에 어울리지 않는 전자렌지 등 편의시설은 갖춰놓지 않았다.

 

화장실은 배설물을 퇴비로 만드는 발효식이지만 성수기 때 밀어닥칠 탐방객을 감당하지 못한다. 공단은 분뇨와 음식쓰레기로 바이오가스를 만들어 연료로 쓰는 공사를 올해 벌일 예정이다.

 

연료와 폐기물을 에너지로 모두 활용해야 헬기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대피소는 해마다 두 차례 헬기로 석유는 물론이고 연간 10t이 넘는 분뇨와 쓰레기를 산 아래로 실어나른다.

 

설악산 대피소쪽에서도 들러 리모델링 가능성 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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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객 오선아(서울·30)씨는 “국립공원의 시설을 친환경적으로 운영한다면 불편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며 “대피소를 콘도로 아는 이들도 있으니 미리 대비할 정보를 제공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악산 대피소에서도 최근 연하천을 들러 친환경적 리모델링의 가능성을 타진해 갔다. 그러나 탐방객과 요구와 대피소 관리인의 불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공단은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김칠남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공원행정팀장은 “올 여름 성수기까지 운영 실태를 지켜보고 친환경 리모델링을 다른 대피소로 확대할지가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남원/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대피소는 펜션이나 콘도가 아닙니다

 

11곳 자가발전, 매연 소음 그을음 등 환경오염
등산객, 전자렌지로 데우고 샤워시설 요구까지

 

국립공원 대피소는 악천후나 조난사고 때 응급대피를 하기 위한 시설이지만 종주산행이 대중화하면서 ‘숙소’로 변모하고 있다.

 

물품과 에너지 조달이 어렵고 환경파괴 우려가 큰 고산지대 대피소에서도 탐방객들이 펜션이나 콘도에 온 것처럼 더 나은 편의시설과 서비스를 요구해 갈등을 빚는 일이 종종 있다.

 

지리산 장터목 대피소 등 전기를 끌어들여 쓰는 곳에서는 전자렌지로 밥을 조리하고 캔커피를 데우며 휴대폰을 충전하고 한겨울에도 25도가 넘는 실내온도를 유지한다. 샤워시설을 갖춰달라는 등 새로운 요구도 이어진다.

 

현재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관리하는 대피소는 모두 19곳으로 지리산 8곳, 설악산 5곳 등 장거리 산행을 하는 곳에 주로 설치돼 있다. 이 가운데 발전기로 자가발전을 하는 곳은 지리산 세석·장터목 대피소, 설악산 중청·소청 대피소, 덕유산 삿갓골재 대피소, 북한산 백운 대피소 등 11곳이다. 한전에서 전기를 끌어와 쓰는 곳은 지리산 로타리·벽소령·노고단 대피소, 덕유산 향적봉 대피소, 북한산 도봉 대피소 등 5곳이다.

 

자가발전을 하는 대피소에선 매연·소음·그을음 등 환경오염 외에도 헬기로 기름을 사 옮기는 데 연간 4천만~5천만원을 지출하는 부담을 진다.

 

한전에서 전기를 끌어오려면 전선을 땅에 묻는 공사로 환경파괴가 불가피해 산악·환경단체와 마찰을 빚곤 한다. 또 에너지를 비교적 풍족하게 쓰면서 대피소의 정체성 혼란이 심한 편이다.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은 “대피소의 어려운 여건에서 일하는 근무자에게 어느 정도 불편이 있겠지만 대피소를 재생가능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생태순환형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원/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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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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