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을 다시 개펄로, 역간척 사업 추진
전남 장흥 역간척 예정지
40여년 방조제 허물어 ‘역간척’…정부 첫 추진
‘간척’이란 말은 1990년대 중반까지도 자랑스러운 단어였다. 좁은 땅을 한 뼘이라도 늘려 귀한 쌀을 생산하고, 난공사를 불굴의 의지와 첨단공법으로 극복하는 대견한 일이었다. 농림부에는 간척 담당부서가 있어, 간척을 하지 않으면 정부의 직무유기가 되는 나라였다.
특히 1990년대 동안 무려 7만㏊의 개펄이 메워졌다. 새만금, 영종도 신공항, 시화, 화옹, 영산강 영암지구 등 대규모 건설 사업은 모두 개펄 위에 자리 잡았다. 고철환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개펄의 약 40%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중반까지의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런 도도한 간척의 흐름에 첫 공식적인 브레이크가 걸렸다.
정부가 전남 장흥에서 40여 년 전 간척사업으로 조성한 논을 다시 개펄로 돌리는 역간척 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는 13일 개펄복원사업을 포함한 ‘득량만 환경보전해역관리 기본계획’을 해양수산부 등 5개 부처와 전남도가 참여해 마련했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간척지를 개펄로 복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역간척 대상지는 전남 장흥군 회진면 일대로, 1965년 조성한 방조제를 허물고 간척지에 바닷물을 끌어들여 52만㎡의 논을 개펄로 되돌리게 된다.
이를 위해 간척지인 회진면과 신상리 사이에 길이 3500m의 물길을 내 바닷물이 득량만에서 간척지 안쪽으로 드나들도록 할 예정이다. 이곳엔 과거 개펄이던 곳이 방조제를 쌓아 논으로 개간된 곳이다. 방조제를 허물면 논은 다시 개펄로 돌아가게 된다.
신상리는 현재 회진면과 육지로 붙어 있지만 1965년 간척사업 이전까지만 해도 덕도란 이름의 섬이었다. 바다의 흔적은 회진항을 거쳐 수동저수지까지 남아 있는 물골에서 겨우 찾을 수 있다. 그 물골마저 회진여객선터미널 근처에서 가로막아 배수구로 바닷물이 겨우 드나들고 있다.
장흥군은 통수시설 건설로 퇴적물이 쌓여 잃어가던 회진항의 어항 기능을 되살리고 복원된 개펄에 친수공간을 조성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 최초로 간척지를 개펄로 복원하는 사업으로 생태계 보전과 어장 생산성 향상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는 현재 하고 있는 타당성 조사가 끝나는 대로 지반과 수심을 측량하는 등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전남 득량만은 해양환경이 좋아 예로부터 키조개, 피조개, 새조개 등 조개가 많이 나고 어류 등 수산생물들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곳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간척과 매립, 담수호 조성 등 연안개발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데다 축산폐수와 농업폐수가 늘어나 해양오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득량만 기본계획을 세운 것도 이런 위기의식의 발로이다. 정부는 이 기본계획에 따라 2012년까지 득량만 일대의 오염물질의 적정관리와 해양생태계 보전과 복원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22개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득량만 잘피군락의 보전이다. 수생식물인 잘피는 해양생물의 산란·서식지로서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기존 잘피밭 보전을 물론 사라진 곳엔 복원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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