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보다 더 두려운것

김정수 2016. 0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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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인간 고수가 인공지능에 연패하는 모습을 보던 아이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태어난 지 100일이 안 된 딸을 둔 김모씨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아이에게 부모가 짐만 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구글이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의 마지막 대국을 보도한 신문 기사 일부다. 인터넷과 에스엔에스를 둘러보면 이 엄마만이 아니다. 이른바 ‘세기의 대국’이 시작된 지난 9일 이후 10여일 동안 많은 한국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머지않아 자신의 삶을 파괴하러 올 것처럼 느끼도록 요구받았다.

인공지능 관련 전문가들은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이 체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바둑 고수를 꺾는 것도 시간문제로 여기고 있었다. 지난 10일 미국 <뉴욕 타임스> 보도를 보면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대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했다. 미국 시애틀의 한 인공지능연구소가 관련 분야 전문가 55명에게 대국 전망을 물었더니, 알파고의 승리를 점친 전문가(69%)가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상한 전문가(31%)보다 두 배 많았다. 이런 객관적 평가는 무시됐다.

그 결과 일주일 사이 인류는 ‘인공지능에 졌다’가, ‘인공지능의 항복을 받아냈다’가, 결국엔 ‘컴퓨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라는 숙제’를 받아 들고 기계를 따라잡으려 노력해야 할 존재로 파도타기를 했다. 신중한 일부 전문가들이 대국 전부터 경계했던 상황이 그대로 벌어진 것이다. 다른 인류는 태평한데 유독 한국의 인류만 불필요한 불안에 시달려야 했던 이유다.

알파고는 본질적으로 정해진 범위 안에서 주어진 문제를 풀도록 설계된 ‘약한 인공지능’이다. 고차원적인 사고로 복잡한 판단을 내리는 ‘강한 인공지능’으로 가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이 대다수 인공지능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는 알파고를 만든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바다. 이런 단계의 인공지능이 어느 순간 ‘자아’ 개념을 형성한다? 그러곤 인류의 통제를 벗어나, 인류를 지배하거나 멸종으로 이끈다? 언제 올지 모를 상상 속의 위험이다.

우리 앞에는 사실 인공지능보다 더 두렵고 시급히 대처해야 할 현실 속 위험이 널렸다. 대표적인 것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가 지구촌 최대의 위험이라는 데는 국가와 종교와 이념이 따로 없다. 이달 초 미국 정부가 공개한 자료를 소개한 외신 보도를 보면, 9·11 테러를 기획했던 오사마 빈라덴조차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을 정도다.

인공지능이 양날의 칼과 같은 먼 미래 위험이라면, 기후변화는 누구도 부정적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재진행형 위험이다. 인류는 세계 곳곳에서 해수면 상승, 전에 없던 전염병의 확산, 가뭄과 홍수 등 점점 강력해지는 재해 앞에 노출돼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구 기온이 상승하면서 바닷물 온도도 따라 올라가, 지금까지 한반도에는 한 번도 도달하지 못했던 슈퍼태풍의 내습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지구 온도는 월평균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미국 항공우주국의 측정 결과, 기준치인 1951~1980년 30년 평균 기온보다 무려 1.35도 높은 것으로 집계된 것이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은 “엘니뇨 영향을 고려해도 지구가 ‘기후 비상사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평가했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진행되던 지난 14일 외신이 전해온 이 소식은 그러나 국내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갔다.

1426675223_00500918201_20150319.JPG 김정수 라이프 에디터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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