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 잃은 너구리 7형제, 제발 정들지 말아야 할 텐데
김영준의 야생동물 구조 24시 ① 너구리 7형제
번식기 맞아 어린 너구리, 고라니, 삵 등 잇따라 구조
'얼마나 아팠을까'…구멍난 상처, 저절로 붙은 골절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근무하는 수의사 김영준입니다. 물바람숲의 새로운 필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야생동물 구조라는 것이 피상적인 상황만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실제로 매우 중요한 일인지라 작게나마 현장에서 일어난 일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구조센터에 실려온 새끼 너구리. 호기심에 눈망울이 반짝이지만 심한 피부병에 걸려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은 충남 아산에서 새끼 너구리가 7마리나 한꺼번에 센터에 들어왔고 서천과 논산에서는 솔부엉이와 삵이 구조되었습니다. 이밖에도 고라니와 너구리가 또 신고되었지요. 이번 달 들어 센터에 들어온 야생동물이 벌써 80마리가 넘습니다. 동물들의 번식기인 5월은 정말 잔인한 달인 것 같습니다.
너구리 7형제는 개선충이란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너구리나 여우 등 개과 동물에 유행하는 병인데, 이 병에 걸리면 너무 가려워 먹이 먹는 것을 포기하기 때문에 털이 빠지고 영양실조에 걸립니다.
새끼를 발견하면 어미에게 맡기는 게 정석이지만, 이런 경우 방치하면 바로 죽음으로 연결되기에 회수했습니다. 잘 살아야 할 텐데. 사람을 따르는 게 제일 겁납니다. 야생으로 복귀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이럴 땐 멧비둘기같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 녀석들이 차라리 고맙습니다.
새끼 너구리는 강아지와 비슷합니다. 낑낑대고 서로 물며 장난치는 모습이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짚북더미를 넣어주었더니 그 속에 파고 들며 놀기도 합니다. 털이 빠질 만큼 심한 피부병이 안쓰럽습니다.
너구리들은 개선충에 걸렸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다른 동물들과 격리해야 합니다. 개선충은 접촉성 피부염입니다. 그래서 임시로 격리장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동물구조센터는 필요한 비품은 거의 다 직접 만들어 씁니다. 특수한 목적의 제품이 나와 있는데 드물기도 하지만 적은 예산을 아껴 쓰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조센터는 웬만한 목공소와 철공소를 합쳐놓은 곳 같습니다.
다소 좁지만, 이러한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햇빛을 받는 것이 중요하고, 또 성장기 동물에게는 야외의 우리가 꼭 필요합니다. 임시장에서 새끼 너구리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니 보람을 느낍니다.
▲너구리 7형제. 이들은 모두 개선충에 감염돼 있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다 키워낼지 구조센터 직원들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 [동영상] 개선충에 걸린 너구리 7형제
▶ [동영상] 너구리와 임시 운동장
어쨋거나 우리에게 온 동물이니 만큼 잘 살려내야겠죠. 하지만 오늘 또 다른 지역에서 구조된 솔부엉이와 삵은 좀 다릅니다. 솔부엉이는 서천에서 발견됐는데, 오른쪽 날개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오래 전에 부러졌는지 구멍 난 상처가 드러나 있고 체중까지 무척이나 줄어들어 있었죠. 회복이 불가능한 개체라 안락사시켰습니다.
▲솔부엉이는 오른족 날개가 부러졌습니다만 부러진 지 오래 되어서 수술이 불가능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솔부엉이의 상처가 심하게 나있고 부러진 뼈가 다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얼마나 아팠을까요?
▲엑스선 사진을 보면 우측 상완골(사진 왼쪽)이 골절된 것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입니다.
논산에서 구조된 삵 새끼는 어린 녀석인데 벌써 다리가 부러졌고 게다가 그것도 이미 붙어서 왔습니다. 같은 쪽 다리의 발달이 무척이나 더딥니다. 야생에서 살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무슨 일은 겪었을까요죠?
논산에서 온 삵은 엑스선 촬영을 위해 태어난 지 한달밖에 안 됐는데 마취를 당합니다. 미안해서 마취를 안하려 했지만 반항이 심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취를 피하려 안간힘을 쓰던 어린 삵이 마침내 호흡마취로 전신마취에 들어갔습니다.
글·사진 김영준/ 물바람숲 필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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