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최북단 바닷가 장식한 화강암의 최후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11-2> 강원평화권-능파대, 서낭바위
세월이 빚은 화강암 조각품의 ‘백화점’
벌집처럼 구멍 숭숭, 항아리처럼 움푹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암석은 화강암이다. 특히 2억1000만~1억5000만년 전 사이에 만들어진 쥐라기 화강암(대보 화강암)은 남한 면적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화강암은 쉽게 보는 돌이지만 그 탄생과 우리 곁에 나타나기까지의 과정은 간단치 않다. 화강암은 대륙충돌과 같은 큰 지각변동이 일어날 때 지하 수십㎞에서 형성된 심성암이다.

마그마가 어떻게 화강암이 되는지 길영우 전남대 교수(지질학)의 설명을 들어보자.
“땅속 깊은 곳의 마그마는 주변의 밀도가 낮아지면 지표를 향해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풍선을 떠올리면 된다. 풍선 안에는 주변 공기보다 가벼운 공기가 들어있어 떠오른다. 주변과 밀도가 비슷해지면 풍선은 상승을 멈춘다. 화강암의 거대한 덩어리가 지하에서 상승을 멈춘 뒤 서서히 식어 굳으면서 안에 든 석영, 장석, 운모 등의 광물 입자가 자란다. 그러다 지각이 솟아오르거나 지표가 오랜 세월에 걸쳐 깎여나가면 화강암 덩어리는 지표로 드러난다.”
고온 고압 환경에서 태어난 화강암은 온도와 압력이 낮은 지표에 나오면 수분 등의 영향으로 쉽사리 풍화된다. 바닷가에서는 소금기가 풍화를 더욱 가속한다. 암석 광물 사이에 낀 소금 결정이 수분을 흡수해 팽창했다가 수분을 잃으며 수축하는 과정에서 단단해 보이던 화강암은 빵조각처럼 부풀어 오르고 떨어져 나간다.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진리에 있는 능파대는 화강암이 모래가 되기 전 마지막으로 빚어내는 기기묘묘한 풍화 산물의 전시장이다. 애초 섬이다가 문암천에 쓸어온 퇴적물로 육지와 연결된 능파대는 ‘파도를 이기는 바위’란 이름대로 화강암 암반이 파도와 소금기와 맞선 흔적이 1.5㎞ 범위에 걸쳐 펼쳐져 있다.
특히, 이곳에는 암석이 풍화돼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타포니’와 항아리처럼 구멍이 움푹 파인 ‘나마’ 지형이 다양한 크기와 형태로 나타나 있다. 타포니 등 화강암의 풍화 지형은 서울 인왕산 선바위, 목포 갓바위, 진안 마이산 등 전국에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성의 타포니처럼 넓은 지역에 걸쳐 다양하게 펼쳐진 곳은 드물다.

이곳에서 화강암은 푸석돌이 돼 풍화에 굴복하지 않는다. 소금기와 안개에 조금씩 무너져내리고 난 고갱이는 끝까지 견뎌 주름지고 패인 모습이지만 바닷가에 전시장에 마지막 화강암 조각품을 빚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최돈원 박사(강원도 환경과)는 “수중에서 이곳 암반을 보면 타포니와 나마가 나타나지 않아 공기 속의 파도와 소금기가 원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며 “안개가 자주 끼는 이 지역의 기상도 소금 풍화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능파대에서 10㎞ 북쪽인 송지호 해안에도 ‘서낭바위’란 이름의 비슷한 화강암 지대가 펼쳐진다. 화강암의 틈이 두부 모처럼 갈라지거나 밀가루 반죽처럼 긴 고랑을 이루는 등 다양한 풍화 지형이 드러나 있다.
특히, 이곳에는 풍화된 화강암을 뚫고 들어온 규장암의 적갈색 암맥이 눈길을 끈다. 약 8300만년 전 이미 굳은 화강암의 틈새로 마그마가 뚫고 들어왔다. 화강암보다는 얕은 지하에서 관입해 비교적 빨리 식은 이 암석에는 석영이 많이 포함돼 있어 화강암보다 단단하다.

주민들이 당제를 지내는 독특한 모양의 부채바위가 형성된 것도 화강암을 파고든 규장암 덕분이다. 사람 머리 모양의 커다란 화강암 바위를 가는 규장암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길영우 교수는 “규장암이 화강암보다 침식에 잘 견뎌 가는 목으로 부채바위를 지탱하고 있다”며 “만일 규장암 암맥이 없었다면 머리 부분의 화강암은 화강암 암반에 놓인 흔들바위가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성(강원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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