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피폭국 벨라루스
초기 오염 자료 ’쉬쉬’, 피폭 후유증 연구도 부실
▲키예프 체르노빌 박물관에 전시된 사고처리 대원의 모형
야간 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 벨라루스에 다녀왔습니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우크라이나에 있지만 대부분의 방사성 물질은 벨라루스에 떨어졌습니다. 발전소는 ‘펑’ 터지면서 방사성 물질이 위로 솟구쳤고 상당 분량이 대기 고층으로 올라가 곧바로 제트기류를 탔습니다. 그렇지 않은 나머지는 고도가 낮은 지상풍을 타고 스멀스멀 확산됐고요.
제트기류를 탄 물질이 가깝게는 벨라루스의 민스크 주변이나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으로 흘러갔다면(한국에도 왔었습니다), 지상풍을 타고 퍼진 방사능은 우쿠라이나의 국경 근처와 벨라루스의 고멜 지역에 집적됐습니다.
키예프의 체르노빌 박물관에 전시된 당시 바람 방향의 시뮬레이션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서 이동 경로가 달라지지만, 바람은 벨라루스를 거의 항상 통과하고 지나갑니다. 벨라루스의 방사능 피해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바람은 벨라루스 대기 위를 그냥 지나가기도 했을테고, 일부는 지상으로 떨어지기도 했을 겁니다.
아직까지 체르노빌 발전소에 나온 물질이 언제 어디에 갔는지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고 합니다. 옛 소련 정부가 처음부터 폭발 사고를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방사능 낙진이 일어났는지, 초기 관측 자료가 부실하다는 겁니다. 만약 초기에 알려졌다면 유럽의 주변국들은, 지금 한국이 하는 것처럼 곳곳의 계측기를 통해 자주 측정했을 겁니다.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국가별 피폭량 수준
체르노빌 사고는 스웨덴의 과학자들이 방사성 물질을 확인해 스웨덴 정부가 옛 소련 정부에 확인을 요청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전세계 언론에 보도된 건 사고가 지난 사흘 뒤인 4월29일입니다. 그러니까 주변국이 모르는 사이 방사성 물질이 제트기류를 타고 스웨덴까지 간 거죠. 위 동영상은 당시 기상 조건을 가지고 시뮬레이션한 것입니다.
바람을 타고 번진 방사성 물질은 어떻게 될까요? 비를 맞고 떨어져 토양과 하천에 흡수됩니다. 공기를 마시고 흙을 만지거나 농작물이나 수산물을 섭취하면서 방사성 물질은 인체에 들어옵니다. 유럽은 방사능에 오염됐고, 사람들은 평상시보다 더 많은 방사능에 피폭됐습니다.
도표를 보면 벨라루스(BY)와 우크라이나(UA) 그리고 핀란드(FI)의 사람들은 1986년에서 2005년까지 20년 동안 1~3m㏜에 피폭됐습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이탈리아, 그리스 등 남부 유럽도 피폭량도 결코 적지 않습니다.
위 도표는 2008년 유엔전리방사선방호위원회의 보고서 중 하나인데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체르노빌 보고서 중 하나입니다. 체르노빌 보고서는 20주년인 2006년에 ‘우르르’ 나왔다가 그 이후에는 새로 나온 게 드둘더군요. 유럽 등에서 지원하던 연구예산이 줄었기 때문이라네요.
전리방사선의 인체 영향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 주민들의 건강 조사를 통해 일부분 밝혀졌습니다만, 저선량 노출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유출된 방사능을 엑스레이 노출량과 비교하며 안전하다고 강조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럴수록 체르노빌의 영향에 대해 연구해야 합니다.
민스크(벨라루스)/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관련 기사
어릴적 피폭당한 엄마 이어 딸까지…“매년 방사능 치료”
‘방사능 낙진’ 황사 날아오듯 반나절만에 한반도에 우수수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