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잇과의 마지막 자존심, 삵

김성호 2011. 0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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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변에 움막 하나를 짓고 잠복을 시작한 지 33일째, 삵이 얼어붙은 강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옵니다. 움막 바로 정면에서 멈춰서더니 고개까지 내가 있는 쪽을 향해 제대로 돌려줍니다."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옛날이야기는 으레“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했으며, 그 한 구절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은 한 순간에 수 백 년을 뛰어 넘어 단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아득한 옛날로 되돌려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옛날에는 호랑이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과 꽤 친했나 보다.”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두려운 대상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호랑이는 두려움과 친근함의 양면을 함께 품은 채 조상들의 삶 속에 아주 가까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고양잇과에 속하는 호랑이는 우리나라에 실제로 살았던 동물입니다. 그러나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혀 일본 순사에게 사살된 것이 우리나라의 마지막 호랑이에 대한 공식 기록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우리가 처절하게 짓밟힌 것은 민족의 영혼만이 아닙니다. 깊은 산 속에 숨어든 뭇짐승마저 온전히 남아나지를 못합니다. 일제는 주민이나 가축에게 피해를 준다는 명분을 내걸고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을 ‘해로운 짐승’으로 몰아세워 닥치는 대로 죽였습니다. 1915년에는 10만여 명을 동원하여 호랑이 11 마리, 표범 41 마리, 곰 261 마리, 늑대 122마리를 사살했으며, 이듬해에는 4만여 명을 동원하여 호랑이 13 마리, 표범 95 마리, 곰 168 마리, 늑대 106 마리를 사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 것 한 마리조차 직접 보지를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한국호랑이는 왜 사라졌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멸종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한국의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을 수없이 오가며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묻혀버린 자료들을 빠짐없이 찾아내 한국호랑이를 멸종시킨 일제의 잔학성과 폭력성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사람 ‘엔도 키미오’입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일본의 한국 침략이 야생의 동물까지 말살시킬 정도로 극악했다는 사실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준 것이니 고맙지만 자존심은 무척 상합니다.

그렇다고 호랑이 멸종의 책임을 일제의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이미 호랑이의 개체수는 호랑이 포획 정책을 체계적으로 편 조선시대부터 급감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호랑이를 잡은 사람에게 적장을 베는 것에 버금가는 상을 내렸고, 호랑이와 표범의 가죽은 진상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착호갑사(捉虎甲士) ’라는 호랑이 포획 전문 병과를 만들고, 호랑이 포획활동을 전문적으로 지휘하는 장수인 ‘착호장’을 두는 등 제도까지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조선 후기에 도입된 조총은 호랑이와 표범의 포획을 가속화했습니다. 그 결과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한반도 대부분 지역의 최상위 포식자는 호랑이와 표범에서 늑대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절멸에 이르도록 산속의 호랑이를 모조리 잡아버렸으면서 박제는 딱 하나만 남아있습니다.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남아있는 한국호랑이 표본의 주인공은 1908년 영광 불갑산에서 주민들에게 잡힌 것입니다. 덫에 빠진 호랑이를 창으로 찔러 죽인 주민들은 이 호랑이를 들쳐 메고 며칠을 걸어 부유한 일본인 상인들이 많은 목포에 가서 팔게 됩니다. 일본의 상인 ‘쇼지로’는 이 호랑이를 구입해 일본에서 박제한 뒤 유달초등학교에 기증하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유일의 한국호랑이 박제입니다. 역시 자존심이 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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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의 땅에서 호랑이는 살지 않습니다. 호랑이뿐만이 아닙니다. 표범도 없고, 곰도 없고, 늑대도 없습니다. 곰의 복원사업은 현재 진행 중이니 추이를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호랑이, 표범, 늑대의 경우는 복원사업 자체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물론 호랑이와 표범의 서식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더러 들리고는 있습니다. 정말 그들이 아직 살아남아 있는 것이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호랑이와 표범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니라 흔적을 통한 추정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눈이나 진흙에 찍힌 소형 고양잇과 동물의 발자국이 물이 고이는 등의 이유로 커지면서 호랑이나 표범의 발자국으로 오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들을 잃어 만날 수 없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는 천적이 없는 산에 넘쳐나는 멧돼지와 고라니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이제 고양잇과 동물의 희망은 삵 하나뿐입니다. 호랑이, 표범, 곰, 늑대 등이 멸종한 현재 삵은 우리나라 최상위 포식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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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쾡이라고도 불리는 삵은 고양이와 비슷하지만 몸집이 크고, 몸에 진한 갈색의 부정형 반점이 많으며, 양쪽 눈 사이로 머리 위쪽에서부터 코까지 흰 무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점이 다릅니다. 다른 고양잇과 동물처럼 주로 밤에 활동하지만 먹이가 부족할 때는 낮에 먹이 사냥을 나서기도 합니다. 주요 서식지는 삼림지대의 계곡과 암석층 가까운 곳, 하천 주변의 초지 등이며 나무도 잘 타고 오릅니다. 1950년대 이전까지 삵은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 이후 쥐약이 대대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쥐약을 먹고 죽은 동물을 삵이 다시 먹는 2차 중독에 의해 개체수가 급감하였으며, 지금은 멸종위기야생동‧식물 Ⅱ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습니다.

국내 삵의 서식밀도와 개체군 변화에 대하여 아직 알려진 것이 없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면에서만 본다면 우리나라는 참으로 인색하고 가난한 나라입니다. 서식밀도를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자료가 있습니다. 한 논문에 의하면 지리산권의 119㎞에 이르는 도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년 6개월 동안 차량사고로 인해 발생한 삵의 사체가 103 개체였다고 합니다. 차량사고를 당한 개체가 그 정도면 실제 서식 개체는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체가 차량 사고를 당하고 있다면 사정은 다릅니다. 5 개체를 대상으로 원격무선추적 장치를 부착하여 동선 파악을 시도한 다른 논문을 보면 3 개체가 차량 사고를 당했으며, 남은 2 개체 또한 발신기 파손과 발신기 신호 미약으로 지속적인 추적이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추적이 가능했던 기간 동안 5 개체의 삵 모두 도로를 자주 횡단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장치 부착 후 5일 만에 차량사고로 사망한 개체도 있었습니다. 그 5일 동안 삵은 2차선 도로를 9회, 4차선 산업도로 3회, 고속도로를 3회 건넌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삵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보다 도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삵뿐만 아니라 도로를 지나다보면 차량 사고를 당한 야생동물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됩니다. 야생동물이 숲이나 산에서 살 것이지 왜 도로에 뛰어들어 사고를 당하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들과 산과 강을 가로질러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놓은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저들은 그저 먹이를 구하거나 짝을 찾기 위해 다니던 길을, 지나야만 하는 길을 지나는 것뿐입니다. 직접적인 차량 사고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도로는 결국 생태계의 단절을 초래하고, 생태계의 단절은 서식지의 격리로 이어지며, 서식지의 격리는 근친교배를 조장하여 끝내 종을 소멸의 길로 몰아갑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도로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상생의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동물 이동통로의 설치입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모니터링을 하여 생태축의 단절이 심각하고, 실제로 야생동물의 이동이 빈번하여 차량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에 적절한 이동통로를 마련해 주는 것은 인간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삵을 만나기 위해 섬진강변에 움막 하나를 짓고 잠복을 시작한 지 33일째를 맞습니다. 삵의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는 곳이라 자리를 잡았는데, 한 달이 더 지나도록 삵은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허술하게 짓기도 했지만 어제는 움막이 무너지기 직전에 이를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눈 위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이동할 방법은 없습니다. 움막 주위에 쌓인 눈 위로 삵의 발자국이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삵이 근처를 자주 지나다니는 것은 분명한데 어두움에 기대서만 움직이는지 긴 기다림마저 차갑게 외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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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추운 날인데도 해가 뜨면서 움막에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하며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어제 눈이 오기 시작할 때 뭐라도 덮었어야 했으나 게으름을 피웠으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생겼습니다. 장비야 덮을 것이 있지만 추운 날 옷으로 물까지 스며드니 무척 심란합니다. 움막을 허물고 제대로 다시 만들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갈등하고 있을 때입니다. 삵이 얼어붙은 강의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오는 것이 보입니다. 아직 셔터를 누르기에는 너무 멀지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삵을 만난 증거 샷으로 몇 컷 눌러봅니다. 한참을 더 내려와 주어야 하는데 갑자기 멈춰서더니 눈 덮인 덤불 쪽을 향해 몸을 돌려 앉은 뒤 꼼짝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두꺼운 눈 속으로도 먹잇감의 움직임을 감지한 모양입니다. 얼어붙은 듯 앉은 자세로 10분이 고스란히 흐릅니다. 드디어 등을 산 모양으로 굽히고 다리를 쭉 펴며 도약했다 곧바로 목표지점을 향해 몸을 덮칩니다. 사냥감은 눈 아래 덤불에 숨어든 설치류였을 것 같은데 입에 물린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육식동물의 사냥 성공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습니다. 환경과 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20%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삵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삵이 다시 이동을 시작합니다. 쉬지 않고 걸음을 옮기다 정확히 움막 바로 정면에서 다시 멈춰서더니 눈 덮인 경사면을 향해 앉습니다. 수상할 움막은 고마울 정도로 무시해버립니다. 게다가 고개까지 내가 있는 쪽을 향해 제대로 돌려줍니다. 33일 동안 텅 빈 강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선 눈앞에 나타나 준 것만으로도 고맙고, 또한 무수히 많은 이동로 중에 내 앞을 지나다 정확히 정면에 앉아까지 있어주니 더 이상의 바람이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언 강을 지나 내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와 줄 수는 없겠니?”하는 간절한 바람마저 생깁니다. 이런 날도 있습니다. 삵이 드디어 강을 건너옵니다.

우리의 땅에 호랑이가 한 마리도 없던 시절인 1988년, 우리나라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습니다. 기억하시는 것처럼 88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는 ‘호돌이’였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삵에게 만큼은 떳떳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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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이메일 : genexp@cho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phil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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