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달인들’, 자연 속 숨은 그림 찾기

김성호 2011. 06. 17
조회수 131085 추천수 2

바꾸고, 흉내내고…, 이끼 낀 바위인지 개구리인지
오징어는 몽환적 색‘뱅뱅’, 꽃게 최면 걸어 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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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개구리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다가서기로 다짐한 삶이기에, 미끄러운 길을 간신히 기어 올라보니 자연 속에 숨은 그림 하나가 있습니다.


제 몸에 이끼와 바위의 색깔을 덜함도 더함도 없이 두둘두둘 적절히 두른 무당개구리가 폭염을 피해 폭포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보호색이라면 이 동네 뱀도 새도 오늘은 배를 좀 곯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동물의 세계는 먹고 먹히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쉼없이 일어나는 세계입니다. 강자는 이미 강자이고 약자는 어쩔 수 없는 약자입니다. 그렇지만 강자라 하여 영원히 강자일 수 없으며, 약자라 하여 언제나 약자가 아닌 것이 또한 동물의 세계입니다. 결국 누가 승자가 되느냐의 문제인데, 동물 세계에서의 승자는 강한 자가 아니라 살아남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규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 중 위장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위장술이 뛰어난 친구들은 살아 남았고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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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색과 어두운 색 얼룩나방. 매연이 심할 때는 어두운 나방이, 공해가 사라지면 밝은 나방이 생존할 확률이 높아진다. 


동물이 선택하는 위장의 방법 중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는 보호색을 들 수 있습니다. 환경의 변화 속에서 보호색이 생존과 어떻게 직결되는지는 영국에 서식하는 얼룩나방(peppered moth)의 사례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나무에 지의류가 많이 피어 있었습니다. 지의류는 균류(菌類)와 조류(藻類)의 공생체로 깨끗한 환경에서 서식하며 나무나 바위에 달라붙어 희끗희끗하게 보입니다. 얼룩나방은 두 가지 품종이 있는데 하나는 희끗희끗한 색을 띄고 또 하나는 어두운 색을 띄고 있습니다. 지의류가 많이 핀 나무에 앉아 있을 때 새를 비롯한 포식자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희끗희끗한 색의 얼룩나방입니다. 이것이 산업혁명 이전에는 어두운 색 얼룩나방의 수가 극히 적었고 밝은 색의 얼룩나방이 대세를 이루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으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산업화와 더불어 공장이 속속 들어서고 화석연료의 사용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기오염이 심각해져 나무에 붙어있던 지의류는 죽고 그 자리에 검댕이 앉아 나무들이 검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밝은 색의 얼룩나방은 보기 힘들어지고 어두운 색의 얼룩나방이 대세를 이루게 됩니다. 또한, 1960년대부터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기오염이 점차 수습되고 자연환경보호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어두운 색의 얼룩나방보다 밝은 색 얼룩나방의 개체수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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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환경에 따른 넙치의 보호색 변화.


이처럼 동물의 생과 사를 갈라놓을 수 있는 보호색의 유형은 무척 다양합니다. 주로 잡아 먹히는 입장에 있는 동물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몸 색깔을 하고 있으며, 이것이 일반적인 의미의 보호색입니다. 예를 들어 사막에 사는 동물들은 대부분 모래의 색깔을 닮은 갈색에 가깝습니다. 또한 북극에 사는 동물들은 극지의 하얀 주위 환경을 따라 순백색의 깃털이나 털가죽으로 덮여 있습니다. 


물속의 동물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면에 가깝게 사는 물고기들의 은빛 비늘은 물빛과 비슷해 새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줍니다. 산호초 사이의 물고기들은 산호의 화려한 색깔과 몸 색깔을 맞추고, 바다 밑바닥에 사는 가자미와 넙치는 모래바닥이나 펄의 색과 같으며, 더 깊은 심해에 사는 물고기들은 몸 색깔이 대체로 어둡습니다. 고등어와 꽁치처럼 계절마다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물고기들의 경우 등 쪽은 바다의 물색을 닮은 짙은 푸른색이고, 배 쪽은 바다 밑에서 올려다 본 반짝이는 수면과 같이 은백색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보호색이 생태학적 지위가 주로 먹히는 위치에 있는 친구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포식자 또한 피식자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먹잇감의 획득에 유리하므로 역시 보호색을 갖춥니다. 포유류 가운데는 얼룩무늬나 줄무늬의 가죽으로 덮여 있는 종류가 많습니다. 얼룩무늬나 줄무늬의 경우 밝은 색 부분이 강렬하게 대상의 시선을 끌어당겨 몸 전체의 형태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러한 보호색은 일종의 교란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포식자가 가장 싫어하는 색깔을 띠어 자신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려 경계하여 피해가도록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의 보호색은 경계색에 해당합니다. 칠성무당벌레는 등 쪽 날개가 빨갛고, 위협을 느끼면 몸에서 노란 진물을 내기 때문에 천적들이 쉽게 단념합니다. 화려한 색의 동물들은 대부분 지독한 냄새를 풍기거나 독을 뿜는 종류여서 맛이 고약하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이런 동물을 먹어 본 포식자들은 웬만해서는 또 다시 이들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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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온


정해진 보호색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있지만 주위 환경에 따라 그 색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보호색을 통한 위장술의 대가는 카멜레온입니다. 카멜레온은 사는 장소에 따라 몸의 색깔을 그때그때 바꿀 수 있습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녹색을 띠며 나뭇가지에 천연덕스럽게 매달려 있습니다. 천적인 새들이 옆에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나뭇잎과 똑같은 색으로 변신할 수 있습니다. 사막 같은 곳에서는 모래 배경과 아주 잘 섞인 갈색으로 변장할 수 있습니다.


문어 또한 바다의 카멜레온으로도 통할 만큼 보호색의 달인입니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몸 표면에 분포한 색소 세포가 주변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수시로 몸 색깔을 바꿀 수 있습니다.


보호색이 언제나 방어의 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공격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꽃게는 오징어가 무척 좋아하는 먹잇감이지만 꽃게의 강력한 집게 때문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습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자신의 다리를 순식간에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오징어는 보호색을 이용합니다. 몸의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해 꽃게의 눈앞에서 몽환적인 색을 이리저리 비추면 꽃게는 일종의 최면 상태에 빠져 완전히 넋이 나가버리고 맙니다. 꽃게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오징어의 두 다리에 꼼짝없이 잡혀버린 다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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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들의 다양한 의태.


동물이 취하는 위장술에는 보호색 말고도 의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의태란 동물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위의 물체나 다른 동물과 아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와 꼭 닮은 대벌레, 작은 돌과 비슷한 메뚜기, 해조류의 모습과 흡사한 해마 등이 그 예로 유명한 것들입니다. 


실제로 자신은 그렇지 않지만 독침, 악취, 특별한 무기 등을 갖춘 다른 동물과 흡사한 모양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심지어 새의 배설물 모양을 닮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태를 통한 위장술의 진수는 가짜 눈을 이용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먹잇감을 잡을 때 머리 쪽을 공격합니다. 정면에서 공격하면 먹잇감이 도망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단번에 공격해서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피하고자 곤충 중에는 큰 눈동자 모양을 꼬리에 새겨 꼬리를 머리처럼 보이게 할 때가 많습니다. 공격을 당해 꼬리가 좀 뜯겨나가더라도 목숨은 건지겠다는 전략입니다. 애벌레들은 작은 새를 잡아먹는 매와 부엉이를 비롯한 맹금류의 눈을 연상시키는 무늬를 떡하니 등 쪽에 그려 넣기도 합니다.


동물이 살아남기 위해 저마다 펼치는 전략은 동물의 종수 만큼 다양하다 해도 틀린 말을 아닐 것입니다. 그 중 몇 가지를 떠올려본 것이지만 생각은 바로 나 자신으로 돌아와 멈춥니다. 나 역시 살아남아야 하겠는데, 어떠한 길을 택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나무늘보의 방법을 따르기로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라질까를 고민하는 세상이니 어떻게 하면 더 느려질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것도 길이겠다 싶습니다.


김성호/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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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서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큰오색딱따구리 육아일기><동고비와 함께한 80일><까막딱따구리의 숲>의 저자로서 새가 둥지를 틀고 어린 새들을 키워내는 번식일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인내로 세세히 기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지리산과 섬진강에서 만난 생명들의 20년 이야기를 담은 생태에세이 <나의 생명수업>을 펴냈다.
이메일 : genexp@chol.com      
블로그 : http://plug.hani.co.kr/phil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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