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동굴 속 눈 잃은 물고기의 하루는 47시간
소말리아 사막 지하에서 140만~260만년 동안 고립돼 진화
빛 인식 못하지만 먹이 공급으로 재보니 생체시계 느릿느릿
▶소말리아 지하 동굴에 200만년 동안 고립돼 시각을 완전히 잃은 물고기. 출처=<플로스 바이올로지>
빛 한 줄기 없는 캄캄한 동굴 속에서 시간이 가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게다가 그런 환경에서 200만년 동안 살아 눈이 완전히 퇴화했다면.
소말리아 사막 지하의 동굴에서 140만~260만년 동안 고립돼 진화한 동굴 물고기를 대상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새벽 여명이 비치면 새들은 지저귀기 시작하고 동굴 속의 박쥐도 저녁 때가 되면 먹이를 잡으러 외출을 한다. 이처럼 하루 단위로 생물들이 보이는 반응을 일주기 생체리듬이라고 한다.
일주기 리듬은 대개 24시간을 주기로 되풀이 되며 리듬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환경요인은 빛이다. 생물의 몸 속에는 '시계 유전자'가 있어 하루에도 시간에 따라 켜졌다 꺼졌다를 자동적으로 수행하는데, 빛에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따라 생체리듬을 밤낮 주기에 동기화한다. 장거리 여행을 한 뒤 몸의 시계를 현지의 빛 시계와 맞추느라 시차를 겪는 것은 이 때문이다.
빛을 주로 감지하는 기관은 포유류에게 눈이지만 물고기는 몸 옆에 나 있는 옆줄이다. 따라서 동굴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눈을 완전히 잃은 동굴 물고기라도 몸으로 빛을 느낄 수는 있다.
닉 풀케스 독일 칼스루에 공대 교수는 소말리아 동굴 물고기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옆줄로도 외부 빛의 변화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생체 시계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풀케스 교수는 주기적으로 먹이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이 물고기에게 여전히 시계가 째깍이고 있음을 알아냈다. 자연적인 리듬에 따라 체내 시계를 다시 맞추도록 했더니 하루의 리듬은 47시간 주기로 나타났다. 이 암흑 세계 물고기에게 하루는 지상보다 약 2배 가까이 긴 셈이다.
풀케스 교수는 논문에서 "완전한 어둠과 일정한 온도의 환경 속에서 사는 동물에게 일주기 변화 리듬을 알려주는 기능은 진화 과정에서 아무런 이득도 줄 수 없기 때문에 차츰 그런 기능을 상실하는 쪽으로 자연선택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예상이 맞다면 앞으로 수백만년이 더 흐르면 이 동굴 물고기는 완전히 시간 관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풀케스 교수는 먹이를 가끔씩밖에 구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일주기 변화 리듬이 이렇게 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 연구결과는 온라인 공개 학술지인 <플로스 바이올로지> 최근호에 실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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