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나무는 ‘돈 나무’, 지구온난화 지킴이도

조홍섭 2009. 04. 08
조회수 80777 추천수 0
  
 ‘전도사’ 유근욱 박사 숨은 공로자
   쓸모 80여가지 “50만㏊ 심으면 목재 자급률 100%”
 목기 장인도 재질에 놀래…CO₂ 흡수 능력 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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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각종 식목행사에서 가장 많이 심어진 나무에는 소나무, 상수리나무와 함께 백합나무가 들어있어 눈길을 끈다.


최근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흡수능력이 탁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미 원산의 백합나무는 묘목이 모자라 심지 못할 만큼 인기가 높다. 여기엔 일찍이 이 나무의 가치에 눈떠 냉담한 주변을 설득하고 양묘 기술을 개발해 온 연구자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다.


유근욱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박사는 ‘백합나무 전도사’로 불린다. 그는 1984년 백합나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곧 이 나무를 떠났다. 조림수종으로 전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부처럼 부드럽지만 비틀리지 않고…, 뭔 나무요?”
 

우리나라의 조림사업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엔 산사태를 막고 땔나무를 공급하기 위해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 오리나무 등을 주로 심었고, 1980년대와 1990년대엔 경제림을 조성한다며 낙엽송과 잣나무를 많이 심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1970년대에 춘천 등 전국 6곳에 백합나무 시험림을 조성했지만, 평판이 좋지 않았다.



qqq2.jpg“당시엔 조림한 나무의 활착률이 낮으면 담당자가 혹독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하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백합나무를 좋아해, 청와대 지시로 전국에 보급하려고 했는데 묘목생산과 양육이 어려워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유 박사는 이런 나쁜 기억이 백합나무 보급에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기억했다. 백합나무는 묘목을 심으면 먼저 뿌리가 50㎝쯤 자란 뒤 줄기가 생장하는 특징이 있다. 4월에 조림한 뒤 6월 활착률을 조사하면 모조리 말라죽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1998년 전기가 찾아왔다. 전남 강진의 사유림에서 1970년대부터 백합나무를 조림해 온 백제약품㈜ 김동구 회장이 백합나무의 우수성을 확인해 산림청에 경제조림 수종으로 추천해 달라고 건의해 온 것이다.


“14년 만에 조사차 찾은 전북 완주와 강원 춘천 등의 백합나무 조림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새 아름드리로 자랐더군요.”


백합나무는 20년 이후 폭발적으로 자란다. 수원시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시험림에는 27년생 백합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가슴높이 지름은 45㎝로 해마다 나이테가 2㎝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나무가 잘 자란다는 것은 증명됐지만, 과연 목재로 쓸 만할지가 걱정거리였다. 주무부처인 산림청은 물론이고 임학 교수들도 대부분 백합나무 조림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생각 끝에 유 박사는 전북 남원의 목기 장인 박수태씨를 찾았다. 반 트럭의 원목을 부려놓고 목기를 만들어 달라고 청했다. 한 달 뒤 박씨는 “두부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비틀리거나 쪼개지지 않는 이 나무가 무슨 나무냐”며 놀라워했다.


나머지 반 트럭은 동대구의 가구상에 맡겨 장롱과 책상을 만들어 달라고 해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 거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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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 말고도 유 박사가 풀어야 할 숙제는 많았다. 종묘 확보가 난제였다. 그는 “씨앗을 뿌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싹이 나오지 않아 난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백합나무 씨앗은 땅속에 묻힌 채 4~7년 동안 적당한 조건이 갖춰지길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묘포에 톱밥을 덮고 1달을 기다린 끝에 일제히 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침내 산림청은 백합나무의 우수성을 인정해 2001년부터 전국에 조림을 시작했고, 기후변화에 대응할 대표 나무로 선정했다.


백합나무가 외래종이라는 점은 끈질긴 회의론을 낳았다. 거목으로 크는 백합나무가 외래종 잡초 같은 문제를 일으키지야 않겠지만, 자생 수목이 들어설 자리를 오랜 세월 차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유 박사는 “소나무를 좋아하면서도 수입 참나무 가구를 쓰는” 현실을 들었다.
“산에 나무를 심어 50년을 기르고서도 낙엽송은 ㏊당 300만 원을, 잣나무는 기껏 100만 원을 받고, 리기다소나무는 50만 원을 오히려 줘야 가져갑니다. 국토의 63%가 산림이고, 산림의 70%가 사유림이라면 산주가 나무를 심어 돈이 돼야 합니다.”


그는 백합나무를 ‘돈 나무’라고 부른다. 생산성 높고 병충해가 거의 없으며 관리비가 덜 들면서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이다.


“외래종인 백합나무를 전국에 심자는 게 아닙니다. 리기다소나무 조림면적이 48만㏊에 이르는데, 이제 수종갱신할 때가 됐습니다. 그 자리에 백합나무를 심자는 겁니다. 백합나무를 50만㏊만 심어도 6%인 목재 자급률을 100%로 끌어올릴 수 있지요.”
 수원/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백합나무란
 은행·메타세쿼이어와 함께 ‘살아있는 화석’
 아까시나무 버금가는 ‘꿀단지’로도 뛰어나

 

목련과의 큰키나무로 북미 동부지역에 자생하는 백합나무와 중국 중부에 자생하는 중국백합나무 2종이 있다. 두 백합나무의 조상은 공룡이 살던 중생대 백악기까지 거슬러 오른다. 은행나무, 메타세쿼이어와 함께 화석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살아있는 화석’ 식물이다. 백합나무는 4~6월에 황색 띠가 있는 튤립 모양의 녹황색 꽃을 피운다.

 
백합나무는 대개 높이 30~45m, 가슴높이 지름 0.6~1.5m까지 자라는 거대목이며, 목재가 80가지 이상의 용도를 지녀 미국에서 참나무 다음으로 중요한 상업 수종이다.

 
우리나라에는 1925년과 1929년 처음으로 소량의 종자가 도입됐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수종개발을 목적으로 1970~1973년 완주, 광릉, 춘천 등 전국 6곳에 시험림을 조성해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우수성이 입증돼 2001년부터 조림을 시작해 2008년까지 4500㏊에 심었다.

 
특히 산림청은 화석연료를 대체할 바이오매스 생산용 바이오순환림을 2020년까지 10만㏊에 조성하기로 하고, 그 대표수종으로 백합나무를 선정했다. 30년생 백합나무 1㏊는 연간 6.8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소나무나 잣나무보다 1.6~2.2배 높은 탄소흡수능력을 보인다. 앞으로 해마다 1만㏊에 백합나무가 조림될 예정이며, 묘목 공급을 위해 체세포배양 등 우량개체의 대량복제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백합나무는 습기가 많고 토심이 깊은 곳을 좋아하고 바람받이를 싫어하는데, 대체로 경사지 등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병충해에 강하며 아까시나무에 버금가는 꿀을 생산하는 밀원수종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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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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