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모성애와 지능…낙지가 고통을 모를까?

조홍섭 2018. 11. 06
조회수 8621 추천수 0
낙지의 비밀 밝히는 사람들

뇌 지도 작성·유전체 해독한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팀

번식 뒤 죽는 한해살이…암컷은 식음전폐하고 알 돌봐

무척추동물 최대·최고 두뇌…“극심한 통증 느낄 게 분명”


o6.jpg » 낙지는 중요한 수산자원이지만 탐구할 여지가 큰 신비로운 동물이기도 하다. 낙지의 생명 현상을 규명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조선미 박사 제공.

낙지 부화실은 이중으로 친 담요가 실험실 불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담요를 들추자 양파망마다 낙지의 흰 알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알은 손가락 끝 마디 크기로 예상보다 컸다. 젤리 과자 형태였고 끄트머리의 실로 접착 물질에 매달려 있다. 자세히 보면 알 속에 어린 낙지의 눈인 까만 작은 점 두 개가 보인다. 팔과 흡반으로 알 사이를 어루만지며 물을 뿜어 알을 청결하게 하던 어미 낙지가 인기척에 놀란 듯 피부색을 검게 바꾸었다.

지난 10월31일 찾아간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유전자원연구실에서는 “해양생물의 특이한 구조와 기능을 결정짓는 유전자의 활용”을 목표로 낙지를 기르면서 다양한 기초 연구를 하고 있었다. 낙지를 수산물로서 많이 잡고 양식하기 위한 연구는 이뤄지고 있지만, 순전히 동물로서 낙지의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일이다.

o2.jpg » 알에서 깬 지 1주일 된 낙지는 성체와 형태는 물론 주위 환경에 맞춰 피부색을 바꾸는 등 행동도 똑같다. 알 속에서 석 달 동안 어미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태어난 덕분이다. 조홍섭 기자

o3.jpg » 낙지 부화 상태를 살펴보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유전자원연구실 낙지 연구팀의 정승현(왼쪽) 박사와 조선미 박사. 조홍섭 기자

삶의 4분의 1이 ‘양육기간’

어미 낙지의 포란 행동을 연구하는 이 연구실 조선미 박사는 “낙지 암컷은 문어나 주꾸미보다 훨씬 적은 약 100개의 알을 낳고 약 석 달 동안 먹이도 먹지 않고 극진하게 돌보다 알이 깨어난 뒤 탈진해 죽는다”며 “이런 행동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지의 수명은 대개 1년이다. 암컷은 알을 돌보는 데 삶의 4분의 1을 바치는 셈이다. 수컷도 교미 뒤 죽는다.

그렇다면 왜 하필 연구 대상이 낙지일까. 조 박사는 “낙지는 세계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에만 서식하는 생물인데다 연중 언제나 시료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중요한 건 “(낙지를 비롯한) 문어과 동물이 지구에서 가장 뇌가 크고 지능이 높으며 재빠른 무척추동물이어서 비교신경과학의 훌륭한 연구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어과에는 세계적으로 200여 종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낙지를 비롯해 참문어, 대문어, 주꾸미가 여기에 속한다. 낙지와 참문어는 종이 다르지만 유전적으로 매우 가깝다. 세발낙지, 꽃낙지 등은 모두 낙지와 같은 종이다. 

o4.jpg » 양파망 속에 붙여놓은 낙지의 알을 돌보는 어미 낙지. 수십 개에 불과하지만 어미가 정성껏 보살펴 부화율이 높다. 조홍섭 기자

이 연구실에서는 지난 4년 동안의 연구를 통해 낙지에 관한 두 가지 굵직한 기초 연구 성과를 잇달아 냈다. 조선미 박사 등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실험 신경생물학’ 최근호에 성체 두족류 동물 가운데 처음으로 낙지의 뇌 지도를 발표했다. 또 안혜숙·정승현 해양생물자원관 박사 등은 ‘기가 사이언스’ 최근호에 낙지 유전체(게놈)를 해독해 발표했다. 낙지의 뇌 지도와 유전체를 규명한 것은, 무척추동물로는 특이한 생명 현상의 비밀을 밝힐 토대를 갖춘 셈이다. 조 박사는 “앞으로 10년은 낙지에 관해 연구할 거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낙지는 사람과 닮았다

사람을 비롯한 척추동물의 가장 먼 조상과 낙지·문어 등 연체동물의 먼 조상이 진화 계통에서 각기 등장한 것은 약 5억 년 전이다. 그런데도 문어나 낙지는 놀라울 정도로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 기르는 문어는 수족관 탱크의 잠긴 마개를 열어 탈출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생쥐 수준의 미로 학습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줄 안다. 자연계에서도 다른 동물을 흉내내고 주변 환경에 맞춰 피부색과 무늬를 자유자재로 바꾼다. 

최근에는 엑스터시로 알려진 향정신성 의약품인 엠디엠에이(MDMA)에 노출된 문어가 사회성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문어의 뇌 속에는 사람처럼 행복감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을 분비하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o5.jpg » 낙지 뇌의 위치(위)와 형태. 날개처럼 보이는 부위의 가장자리는 시신경이다. 정승현 외 (2018) ‘실험 신경생물학’ 제공.

이번에 작성된 낙지의 뇌 지도를 보면, 몸통과 다리 사이에 있는 0.3∼0.4g 크기의 뇌는 날개를 펼친 풍뎅이처럼 생겼으며, 70여개의 구역으로 나뉜 매우 복잡한 형태였다. 조 박사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보면 낙지의 뇌는 달팽이에 더 가깝지만, 사람과 비슷한 기능을 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낙지의 유전체는 사람 것보다 컸고 유전자의 수도 사람이 2만1000개인데 견줘 3만10개로 더 많았다. 연구에 참여한 정승현 해양생물자원관 박사는 “생쥐가 사람보다 유전자 수가 많은 것처럼 유전자 수가 많다고 머리가 좋은 건 아니”라며 “환경 변화가 심하고 거친 갯벌에서 살아가느라 적응하기 위한 면역 반응, 고온 스트레스 방어 등에 관한 유전자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또 낙지의 심장은 몸 전체로 피를 보내는 ‘체심장’ 1개과 아가미로 피를 보내는 2개의 ‘아가미심장’ 등 3개로 이뤄져 있어, 환경 변화에 따라 피 공급을 조절하고 때로는 멈추기도 한다. 실제로 연구자들은 실험실에서 낙지가 물 밖에서 한 시간이 지나도 끄떡 없는 등 강인한 생명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o1.jpg »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낙지 연구실 모습. 낙지를 실험할 때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도록 하는 유럽의 연구윤리 규정을 적용한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제공.

유럽에선 실험 전 마취 필수

이번 연구는 낙지의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출발점인 동시에 이미 기존의 세계적 연구 성과를 통해 드러난, 문어과 연체동물이 게와 랍스터 같은 갑각류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고 회피하는 능력을 지닌 지각 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정 박사는 “낙지는 양파망의 작은 구멍으로 손을 내어 구멍을 크게 만들어 종종 탈출하는 영리한 동물”이라고 말했다. 

조선미 박사도 “유럽에선 2010년께부터 문어 실험을 할 때 마취를 하도록 하는 연구 윤리 규정이 있다”며 “실험 때 0.2% 알코올로 마취를 하며 죽여야 할 때도 신속하게 고통을 최소화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산낙지 요리의 잘린 팔이 꿈틀거리는 이유가 고통 때문인지 신호 전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낙지를 통째로 삶거나 씹어먹을 때 낙지는 극심한 통증을 느낄 것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eung-Hyun Jung et al, A Brain Atlas of the Long Arm Octopus,
Octopus minor, Exp Neurobiol. 2018 Aug;27(4):257-266., https://doi.org/10.5607/en.2018.27.4.257

Bo-Mi Kim et al, The genome of common long-arm octopus Octopus
minor. Gigascience, doi/10.1093/gigascience/giy119/5106932

서천/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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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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